엄마, 칠순 축하해. 엄마가 칠순이라니 기분이 이상하네. 엄마는 더 이상하지?
이건 칠순을 맞이한 엄마께 드리는 편지 모음이야. 사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적을지는 정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엄마에게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얼마 전에 권세연 작가님의 <고부공감>이란 책을 읽었어. 83년생 며느리 권세연 작가와 57년생 시어머니가 함께 쓴 책이야. 권세연 작가의 시어머니 황영자 님은 부안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자식들을 키우셨어. 황영자 님은 글을 써본 적 없다가 며느리의 권유로 돌아가신 친정 엄마께 편지를 써. 돌아가신 엄마께 편지를 쓰면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전해.
엄마, 요양원에 계실 때 장사 끝내고 엄마한테 가면
다른 할머니들이 나한테 그랬어.
“엄마가 딸내미 기다렸어. 저녁 먹자마자
나가서 한참을 기다리시더라고.”
그런데 엄마는 늘 거짓말 했어.
“힘든데 뭐 하러 자꾸 와?”
엄마가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났어.
나도 나이 더 먹고 아프면 내 자식들한테 그럴 거 같아서.
- <고부공감>, p. 18
황영자 님이 엄마에게 쓴 편지들을 읽고 있노라니 나도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더라. 엄마가 가까이 있지만 막상 엄마한테 마음을 표현할 기회는 없는 것 같아. 퇴근하고서 엄마 얼굴을 보면 늘 그렇듯이 “엄마 빨리 집에 가”란 말밖에 안 나와. 하루종일 우리 애들 봐주느라 엄마가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시간도 늦었고 집엔 몸이 불편한 아빠가 있으니 그런 거였어. 그렇다고 통화할 땐 마음을 표현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 서로 용건에 대해서만 전하고 끊기 바쁘잖아.
가끔 시간이 있어서 대화를 할 때조차 옛날에 나 자랄 때 엄마한테 서운했던 얘기가 툭툭 나와. 옛날에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 그땐 왜 그랬냐 뭐 그런 얘기. 아직까지 서운한 건 아닌데 그냥 얘기하다 보면 다 그런 얘기들이네. 엄마한테 상처를 주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미안한 마음도 표현 못 해서 그냥 그렇게 끝나. 엄마가 곁에 있을 때 사랑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건, 그런 방식의 소통을 그동안 잘 안 해봐서가 아닐까. 은연중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걸 알겠거니 믿고 있어서.
그래서 엄마한테 편지를 쓰기로 한 거야. 말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거든.
엄마, 황영자 님은 돌아가신 엄마께 편지를 쓰면서 속에 있는 말을 시원하게 하니 속이 후련해졌다고 해.
“속이 후련해졌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내 속에 있는 말을 이렇게 시원하게 할 기회가 없었어요. 며느리가 판을 펼쳐 주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정말 신나게 두서없이 말해봤어요. 사실 나이가 들수록 외롭거든요. 글을 쓰고 며느리와 대화하며 밋밋했던 내 인생에 불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것 같아 정말 좋았어요.”
- <고부공감>, p. 4
엄마도 가끔 속이 답답하면 글을 써봐. 엄마는 위트 있는 사람이라 재미있는 글을 쓸 거 같아.
“야 엄마가 무슨!”이라며 정색하고 손사래 칠 엄마 모습이 그려지네. 엄마에게 부담 주는 건 아니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엄마 편한 대로 해. 난 말 잘 듣는 딸이니까.
옛날에 그랬잖아. 엄마가 뭐 밖에서 밥을 먹냐고 하면 말 잘 듣는 큰딸은 “알았어” 하고 집으로 가고 작은딸은 “내가 산다니까! 예약도 해놨어!”라고 고집부려서, 결국 밥이고 커피고 얻어먹어본 건 작은딸한테밖에 없다고.
어쨌든 글은 내가 이제부터 써서 엄마한테 줄게.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엄마에 대해 더 생각하고 엄마를 이해하고 싶네.
얼굴은 하나도 칠순같지 않은 우리 엄마, 칠순 축하해. 앞으로도 건강하고 편안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