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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y 23. 2024

걱정과 기우 사이

애벌레가 고치가 되기까지

지난 일요일 아이가 숲체험 선생님에게 4령 누에애벌레를 받아왔다. 며칠 있으면 누에고치가 된다고 한다. 애벌레가 징그러워서 고개를 내저었지만 아이는 이미 애벌레에게 '루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줬다. 누에애벌레는 유기농 뽕잎만 먹기 때문에 선생님과 아이들은 애벌레들이 며칠 동안 먹을 뽕잎을 산에서 따왔다. 루이가 뽕잎을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물멍 아닌, 불멍도 아닌 벌레멍인가 싶게 한참을 들여다봤다.


혹시나 뽕잎이 모자랄까 봐 걱정했는데, 루이는 집에 다음날부터 입에서 거미줄 같은 실을 내뿜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출근했고, 아이는 루이에게 새 뽕잎을 넣어주었다. 퇴근해서 보니 실로 만든 이불이 뽕잎을 살짝 덮었다. 누에애벌레는 촉촉한 잎만 먹고 마른 뽕잎은 안 먹으므로 아이는 새 잎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루이가 새 잎에는 관심이 없다.


마른 잎을 꺼내줘야 하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그래야 하는데. 저기 실이 있어서..."라고 답한다.

"앗! 얘 고치 짓는 거 아니야? 고치 만드는 거였네. 아이고 이를 어째. 기껏 실 뿜어서 집 지을 준비해놨는데 우리가 잎으로 덮어버렸네."

"엄마 어떡해? 미안해 루이야."


실로 만든 이불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루이는 다른 곳에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먹지도 않고 열심히 실을 내뿜었다.


하얗던 몸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면 나무젓가락 하나 넣어주고 건드리지 말라고 하신 숲체험 선생님의 말이 생각나서 뒤늦게 나무젓가락을 넣었다. 나무젓가락이 실을 끊을까 봐 루이의 작업 공간에서 멀찍이 놔뒀다.


그런데 뽕잎이 말랑말랑하다 보니 뽕잎에 걸쳐진 실이 뽕잎을 잡아당겨 이파리에 루이가 자꾸만 뒤덮인다. 나무젓가락을 가까이에 넣어줬어야 지탱이 됐으려나 마음에 걸린다. 괜히 도와주면 안 될 것 같아서 안타깝게 보다가 그냥 자기로 했다. 자고 일어나면 고치가 되어 있겠지, 뭐.


아이는 잠들었고 나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루이가 이파리에 쌓인 채 고치를 만들다가 결국  아늑한 고치를 제대로 못 만들 것 같은 불안이 찾아왔다. 나무젓가락을 이제라도 루이 근처에 놔줘야 하나? 이파리를 들춰줘야 하나? 너무 걱정이 되어 잠이 안 오는 지경에 이르자 문득 깨달았다.


세상에, 나는 걱정이 참 많구나. 하다 하다 이젠 저 애벌레까지 걱정하는구나.


병아리가 계란을 깨고 나올 때 계란 껍데기를 힘겹게 들어올리는 게 안쓰러워 사람이 도와주면 안 된다고 한다. 스스로 알에서 나오지 못한 병아리는 결국 약해서 금방 죽는다고. 그 생각이 나서 나도 누에애벌레를 도와주려는 마음을 꾹 참았다. 자기가 스스로 하겠지. 내일이 되면 고치가 되어 있겠지.




나는 사실 어릴 적부터 걱정이 많았다. '~하면 어떡해?'라며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꼭 자려고 누우면 더욱 그랬다. 내일 학교 가는데 준비물이 없으면 어쩌지? 선풍기 틀고 자다가 죽으면 어쩌지? 혹시나 엄마나 아빠가 죽으면 어쩌지? 나는 그래도 잘 살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과도한 불안과 걱정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에 의식적으로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했다. 덜 예민하게 살려고, 덜 불안하게 살려고. 나의 노력에다 사회화까지 더해져 많이 나아졌다. 사람들은 내가 담대해 보인다고 한다.


예전보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해도 일과 관련해서는 걱정병을 놓을 수가 없다. 회사에서 안 해 본 새로운 일들을 맞닥뜨리면 여지없이 긴장하고 걱정한다. 정해진 시간까지 이 일을 못할 것 같아, 내가 이 일을 망쳐서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 등등의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되어진다. 어찌어찌 골머리를 싸매고 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


일 걱정, 루이 걱정에 한참 만에 잠든 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루이의 몸을 감싼 옅은 하얀색이 보였다. 그 안에서 루이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부지런히 고치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보니 루이는 아주 튼튼하고 동그란 하얀 고치가 되었다. 이파리에 덮여 고치를 못 만들 거라는 건 나의 기우였다.


대부분의 걱정은 기우,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이란 걸 누에애벌레 루이가 알려주었다.

 

루이가 고치에서 무사히 나방이 되기를. 그나저나 쟤 저기서 못 깨어나고 죽는 거 아니야? 그럼 아이는 상심할 거고 나도 속상할 텐데.


, 또 걱정 시작이다. 걱정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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