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PD] 오늘을 온전히 살기
오늘도 정신없이 음악을 찾고, 찾은 리스트를 조연출에게 보내고 동시에 오늘 생방 원고를 수정하고, 원고를 뽑는다. 여유가 없다. 일찍 출근했다고 생각했는데, 밀린 서류작업에 방송 준비까지 하려면 작가님, 출연자, 조연출, 동료 피디 그리고 CP님까지 연락해야 할 곳이 5군데나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다. 7년동안 해왔던 일이다.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외부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방송국에서 뭐하는거야?"
"방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거야?"
"잘 상상이 안돼"
나도 그랬었다.
방송국에 대한 환상, 피디라는 직업에 대한 왠지모를 동경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입사하고 딱 6개월이었다.
6개월이 지나자 환상과 동경 그 모든게 한톨도 남지않았다.
난 내가 하는 일이 좋다.
내가 일하는 곳은 라디오인데,
TV와는 다르게 가족같은 분위기가 있다.
정말 그렇다.
프로그램을 함께 오래하다보면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나는 이들과 제일 친한 친구가 된다.
이 말은 바꿔말하면, 스탭중에 안맞는 친구가 있으면 정말 괴롭다는 말이다.
코드가(성격) 잘 맞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않더라도 일하는 스타일이 비슷하면 된다.
예를 들어, 빨리 빨리 일을 처리하는 피디라면 원고가 늦고 꼼꼼한 작가님보다는 좀 비더라도 원고를 빨리 올려주는 작가님이 더 일하기 편하다고 느낀다. 물론 빠르고 완벽한 원고를 써주신다면 떙큐다.
우리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낀다.
정신없이 생방이 매일 있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음 달의 개편 코너를 기획하고, 앞으로 섭외해볼 진행자를 찾고, 설이나 추석같은 연휴가 있을때면 2~3주 녹음을 미리해놓기 때문에 연휴가 오기전에 이미 지나간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싫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4월 10일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3월 10일인것 처럼,
한 달을 번 느낌이 든다.
미국에 여행을 가면 하루를 버는 것 같은 느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미래를 살기때문에 오늘에 더 감사할 수 있다.
방송국은 오늘도 분주하다. 생방송에서는 철저하게 모든 것을 확인하고 긴장감마저 감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스탭들의 따뜻한 배려가 있고 동료의 위로가 있다.
자신이 마실 커피를 가져가다가 피곤해보인다며 건네주는 작가님,
오늘 입은 옷이 멋지다며 엄지를 날려주는 조연출,
생방전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아재 농담을 날리시는 감독님.
(이건 종종 힘들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나의 오늘은 더 소중해진다.
내일은 1달뒤 개편을 앞둔 프로그램의 기획 회의가 있다.
내일도 나는 여전히 미래를 살고 있겠지만, 오늘의 감사함을 꼭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