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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훈 Jul 07. 2023

이들은 왜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함께 뛰는가? (3)

동갑내기 러닝크루 관찰기 마지막 편 : 왜 하필 동갑친구들과 '뛰는가'?

2.3. 동갑 친구들 속에서 파악하는 나의 모습


(1) 사색하기 좋은 운동, 러닝


  이제 마지막 질문, 동갑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많고 많은 활동 중에서 “왜 하필이면 '달리기'를 하는가?"를 들여다보자. 크루원들이 말한 동갑내기 러닝크루의 장점은 바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러닝은 Door-To-Door 운동이다. 축구나 농구처럼 처럼 경기장소가 필요하지 않다. 달리고 싶은 곳 어디든 달리면 된다. 때문에 시설 이용 시간에도 제약이 없으며, 같이 운동할 인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또한 러닝은 별다른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옷만 입고, 신발만 신고, 원하는 시간에, 그저 문만 열고 나가면 시작할 수 있다. 즉, 다른 운동에 비해 시공간의 제약이 적다.


  러닝에는 경쟁이 없다. 경쟁은 동일한 목표를 두고 서로 겨루는 행위이나, 러닝 자체는 타인과 기록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뛸 뿐인, 개인의 운동이다. 더구나 사람마다 러닝의 목적과 목표가 다르다. 따라서 ‘동일한 목표가 성립하지 않는다. ‘동일한 목표를 지닌 상대방’의 존재도 성립하지 않는다. 경쟁에 대한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에 일상적인 러닝에서 경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러닝은 경쟁이 아니다. 나와 함께 뛰는 이도 나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한 크루원은 러닝은 오히려 달리기는 명상과 가깝다고 비유한다.

 

    G : 달리기는 뭔가 명상 같은 느낌? 제가 요가 강사거든요. 그거와 비슷한 것 같아요. 뛰면서 땀 흘리고 나면 정화되는 느낌이죠. 뛰고 나면 힘들지만, 그 안에서 생겨나는 맑음이 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러닝에서 흘리는 땀은 축구나 복싱처럼 치열한 사투 끝에 흘린 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타인과의 치열한 대결보다는 오히려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한 치열한 고민의 땀, ‘정화’와 ‘맑음’의 땀에 가깝다. 즉,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고 수행의 성격을 띠는 러닝은 사색에 적합한 운동이며, 같이 뛰는 친구들은 각자의 수행을 위해 함께 명상하는 동료인 셈이다.

 


 (2) 남을 관찰하기 좋은 집단, 러닝크루


  러닝이 사색하기 좋은 운동이라면, 러닝크루는 타인을 관찰하기 좋은 집단이다. 러닝의 목적이 사람에 따라 천태만상이기에, 러닝크루에서의 러닝은 나에 대한 생각을 타자에까지 확장해 나가는 활동이 된다. 

 

    E : 주변에 잘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그 친구들이 자신들만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나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요.

 

    B : 정기적 혹은 즉흥적으로 러닝 모임에 참석하고 운동하면서 대회도 나가면 학교, 직장 등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져요.

 

  크루에서 러닝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크루원을 관찰한다. 이들은 다른 크루원의 달리기 자체보다는 타인의 삶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다른 크루원들과 함께 달리면서 이들이 달리는 방법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다른 크루원과 함께 소통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서로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서로의 관심사이자 대화 주제가 된다.

 

     A : ‘갓생’ 사는 분들 되게 많아요. 저는 아닌데. 다른 분들 진짜 멋있어요.

 

     K : 저는 체력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못한데, 다른 친구들이 정규런, 번개런 하는 모습을 보고 ‘열심히 사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크루원들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레 다른 크루원들을 자신의 비교대상으로 삼는다. 이 지점에서 크루원들의 시선은 단순 관찰을 넘어선다. 자신에 대한 사색에서 시작해 타자로 확장되었던 시선이 다시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순간인 셈이다.



 (3)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동갑내기 러닝크루'


동갑의 가장 큰 장점은 ‘나는 잘 살고 있는가’의 기준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타인과 함께하며 자신에 대해 사색할 수 있다는 러닝크루의 특징은 ‘동갑’을 만날 때 상승효과를 지닌다. 비교의 객체가 동갑일 경우, 타인과 자신을 보다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다. 같은 나이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다를 경우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나이 차이 때문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동갑끼리만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그럴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는 다른 크루원을 거쳐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시선은 자기객관화와 자아 성찰, 동기부여 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크루원들은 한 단계 성장한다고 느낀다.

 

    H : 동갑 친구들을 보면서 ‘이 정도면 잘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고, 자기 객관화가 될 수 있는 느낌이에요.

 

    G : 특징은 같은 나이 또래인데, 다양한 일을 하고 다양한 성취를 이룬 친구들이 있고, 따라서 평범함에 갇히지 않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자기객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일생을 ‘나’로 살아오며 지녀오던 주관적 시선은, 자신과 동일한 시간을 살았지만 다른 경험을 해온 이들을 만나며 다양화된다. 그리고 이는 이는 평범함에 갇히지 않는 사고를 가능케 한다. 크루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비교군을 넓히고, 다양한 사람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며,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나간다고 여기는 것이다.

 

    H : 나이가 다르면 나와 달라도 ‘나이가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다양한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저를 돌아보게 돼요.

 

    C : 같은 나이라 살아온 시간은 같은데, 누군가는 공모전, 학회 등 한 게 많아 보이는데 그게 비해 저는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D : 나와 같은 시간대에 살아온 동갑 친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느꼈어요. 나랑 똑같은 해를 살았는데, 저 친구는 저렇게 살고 있고, 어떤 친구는 이렇게 살고 있고. 이런 다양한 게 신기하고, 스스로 자극이 됐어요.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런 자극?

 

    L : 누가 어디 취업하고, 인턴 한다는 얘기가 들리면 진로에 대해 더 생각하게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들은 많고 많은 러닝크루들 중 왜 하필 ‘동갑’ 크루를 골랐는가? 동갑의 가장 큰 장점은 ‘나는 잘 살고 있는가’의 기준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동갑과의 비교에서는 나와 타인의 차이를 나이와 경험의 차이 탓으로 돌릴 수 없다. 동갑은 타인과 자신과 동일한 시간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들기에, 결국 동갑 친구는 비교의 적절한 대상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크루원들은 타 크루원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동기부여를 받으며, 열심히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이러한 점에서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크루원들에게 자기 인생의 평가 기준을 제공하고 있었다



 (4) 열등감 대신 성장으로


나에게서 타인으로, 타인에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시선  

  

  그러나 타인과의 비교는 걸핏하면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동갑내기 크루원들에게서는 열등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갑 크루의 밝은 분위기와 에너지가 비교의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시키고, 비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라는 크루의 특성은 장점으로 거듭난다. 

 

    C : 만나는 사람들이 각각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어서 내 또래는 어떻게 사는지 보고, 같은 고민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B : 엄청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돼서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세상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밝은 에너지를 가진 친구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크루원들은 좋은 분위기와 좋은 사람들 덕분에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말한다. 어쩌면, 비교가 열등감으로 이어지는 사람은 이미 러닝크루에서 탈퇴했을 수도 있다. 러닝크루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비교를 서로 우열을 가리는 수단보다는 자신을 성장시킬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크루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고, 더 나아가 ‘함께’ 성장해나가고 있다고 여겼다. 




3. 나오며

 

  각자의 이유로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은 ‘나와의 약속’을 이어가기 러닝크루에 가입했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는 행위는 나와의 약속을 타인과의 약속으로 전이시킴으로써 달릴 의지를 증진시켰고, 개인의 달리기 수행 능력을 높였으며, 함께 달리는 이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케 하였다. 또한 ‘동갑’은 이러한 유대를 강화했다. 나이가 같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거리낌 없이 평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빠르게 친밀감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이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던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 신뢰는 크루 전체를 결속시켰다.  

 

  이렇게 강한 유대로 결속된 형성된 동갑내기 모임은 일반적인 러닝크루의 개념을 넘어, 또래 친목 모임으로 확장되었다.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교류와 활동 양상에 자유롭게 열린 집단으로 거듭났고, 크루원들은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며 서로를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다시 크루원들로 하여금 동갑내기 러닝크루를 강한 애정과 책임감의 대상이자 유지해야 할 소중한 또래집단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크루 내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단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갑 친구에서 그치지 않고, 같은 세대에서 공감 가능한 고민을 나누는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친구들의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는 촉매로 기능했고, 이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단순히 함께 달리는 집단이 아니라, 동갑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친구들과 함께 성장해나갈 집단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현세대가, 상대적 구속력이 약한 '크루’에서, 혼자 하는 운동의 성격이 강한 ‘러닝’을 매개로 보여주는 동갑내기 러닝크루의 이러한 양상은 독특한 문화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해당 조사에 흔쾌히 인터뷰와 참여관찰을 응해주신 94, 96, 00러너스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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