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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훈 Oct 28. 2024

에너지젤과 카보로딩, 꼭 필요할까?

에너지젤 섭취와 카보로딩에 대한 오해

세줄 요약은 맨 밑에 있습니다. 최대한 쉽게 쓰려던 탓에, 기전의 일부가 생략되어 서술되었을 수 있습니다.



들어가며


최근 러닝 및 마라톤 붐과 함께 카보로딩과 에너지젤 섭취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회 전날 탄수화물을 먹네 마네, 대회 도중 에너지젤 섭취가 효과가 있네 마네 등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집니다.  대회를 앞두고 카보로딩이 필요할지, 에너지젤을 몇 개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에너지 대사 기전을 이해하고 자신의 식습관과 생활패턴을 되돌아보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옵니다.



체내 에너지 대사


우리 몸의 에너지 대사는 크게 세 가지 과정으로 나누어집니다.


(1) ATP-PCr (인원질 시스템)

(2) 해당과정(Glycolysis)

(3) 미토콘드리아의 호기성 대사(TCA 회로, 산화적 인산화 등)


우리가 운동을 시작하면 몸은 위의 순서대로 에너지 대사 시스템을 작동시킵니다.  ATP-PCr 시스템은 15초 이내의 운동에서, 해당과정은 1분 이내의 운동에서, 미토콘드리아 대사는 1분 이상의 운동에서 가장 주요한 에너지 대사 시스템으로 기능합니다.  


우리가 달릴 때 주요하게 보아야 하는 과정은 2번과 3번, 해당과정과 미토콘드리아의 호기성 대사입니다. 쉽게 말해 해당과정은 당을 분해하여, 미토콘드리아 대사는 TCA 회로와 산화적 인산화 등을 거쳐 에너지를 생성하는 과정입니다.


해당과정을 통해 포도당이 분해되고 이에 따라 피루브산이 생성됩니다. 생성된 피루브산은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는 상황에서는 미토콘드리아 대사에 활용되어 에너지를 생성하고, 산소가 불충분한 상황에서는 젖산으로 전환됩니다. 한편 피루브산 외의 다양한 물질, 즉 아미노산과 지방산 등이 미토콘드리아 대사원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달리기가 유산소 운동이라고 해서 소위 ‘유산소 대사’, 즉 미토콘드리아 대사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과정과 TCA 회로, 산화적 인산화가 끊임없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에너지원으로 쓰는지, 그 에너지원이 어떤 시스템을 거쳐 에너지를 전환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체내 글리코겐의 한계


우리 몸에는 간에 약 100g, 근육에 약 400g, 총 500g 정도의 글리코겐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간의 글리코겐은 주로 뇌의 작동에 사용되기 때문에 근육을 통해 낼 수 있는 에너지는 실질적으로 약 1600kcal입니다. 그리고 풀코스 마라톤을 뛸 경우 약 2000~3000kcal가 소모됩니다. 즉, 우리 몸에 저장되어 있는 글리코겐은 풀코스 마라톤을 뛰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론 글리코겐뿐만 아니라 지방산도 에너지원으로 동원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리코겐은 부족합니다. 우리 몸은 글리코겐을 최대한 절약하려는 기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사바나 초원에서 살았을 당시, 만일 근육 내 글리코겐을 다 써버렸다면 사자가 쫓아왔을 때 절대 도망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글리코겐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글리코겐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아미노산을 분해하고 지방산을 동원하고 혈당을 활용하면서, 다른 온갖 곳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그래서 에너지젤 먹어야 해?


결론적으로 ‘근손실’ 방지를 위해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마라톤은 ‘레이스’를 펼칠 경우 자신의 젖산 및 환기 역치에 가까운 페이스로 뛰게 됩니다. 글리코겐 사용 비중이 높아질뿐더러 글리코겐 자체도 부족하고, 그마저도 최대한 아껴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차라리 근육 자체를 분해하고 생성된 아미노산을 대사에 이용합니다. 근손실이 발생하는 순간입니다.


에너지젤을 넣어주면 혈당 수치가 올라갑니다. 레이스 중 에너지젤을 섭취하면 굳이 근육을 분해할 필요 없이 혈당에서 바로 당을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측면뿐만 아니라 근손실을 방지하는 측면에서도 에너지젤은 효과적입니다. 대회 끝나고 많이 먹기보다는 대회 중에 많이 먹으면서, 에너지젤을 한 움큼 쥐어들고 뛰면서, 나의 소중한 근육들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는 레이스 페이스 기준입니다. 글리코겐 연소비중이 낮아지는 LSD에서는 꼭 에너지젤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카보로딩에 관한 오해


앞서 서술했듯 몸은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글리코겐을 절약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또한 에너지 과잉의 시대를 맞아 우리 몸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에너지 과잉에 저항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 않다면, 선수 수준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즉 섭취 칼로리 대비 소비 칼로리가 더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몸에 글리코겐이 부족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취미 러너일 것입니다. 또한 음식에 굶주리며 살아가는 러너는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인의 주식은 쌀, 탄수화물입니다. 카보로딩이 필요할 만큼 평소에 에너지를 많이 쓰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로딩은 충분히 되고 있습니다. 삼시세끼 잘 먹는 것으로도 충분하며, 걱정된다면 식사 때 밥 반 공기 더 먹거나 간식으로 빵 하나 더 먹으면 됩니다.


포도당이 들어가면 혈당이 상승하고 인슐린 작용을 통해 근육으로 이동하며, 글리코겐이 합성되는 시간은 대략 24~72시간입니다. 포도당이 근육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혈액에 남아있으며, 근육으로 이동하지 못할 경우 지방으로 전환되어 축적됩니다. 그러나 운동 직후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의 근육은 글리코겐으로 차있습니다. 곳간이 꽉 차 있어 들어갈 공간이 없는 데도 곳간에 쌀을 더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카보로딩? 배를 먼저 만져보자


물론 월 300km 이상 뛰거나 주 15시간 이상 고강도로 운동하시는 분은 로딩을 고민해볼 필요는 있겠으나, 운동 강도와 에너지 저장, 식이습관은 별개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나의 소중한 배를 쓰다듬는 더 간단한 방법으로도 로딩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방이 얼마나 쌓였는가를 통해 체내 글리코겐의 양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가 말랑하고 물컹하고 툭 튀어나와 있다면 이미 지방이 축적된 상태입니다. 에너지 과잉 상태이며 글리코겐이 충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굳이 로딩할 필요 없이 이미 가지고 있는 에너지로도 레이스를 충분히 펼칠. 수 있습니다. 구태여 몸이 더 무거워지게 지방을 더 저장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반면에 배가 울퉁불퉁하고 탄탄하거나 배에 빨래판 하나가 놓여있다면, 카보로딩을 고민해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때에도 밥을 잘 먹고 간식을 조금 더 챙기는 것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나오며


소중한 근육이 걱정될 경우 에너지젤 충분히 들고뛰면 됩니다. 스스로 취미러너라 생각한다면, 구태여 돈을 들여 지방을 축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어봅시다, 카보로딩을 핑계로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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