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빈 화면 앞에 선 아이
그 교실에서 나는 실력과 가짜 명성을 쌓았다.
신문 1면에는 '밀레니엄'이란 단어가 번쩍거렸고 TV에서는 'Y2K'가 세상을 멈출지도 모른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어른들은 불안을 팔았고, 동시에 'IT 강국'이라는 희망도 걸어두었다.
골목마다 PC방 간판이 새로 올라갔고, 그 안에서는 스타크래프트의 키보드 소리가 밤새 쏟아졌다.
대구에서도 'IT'라는 두 글자는, 누군가에게는 미래였고 누군가에게는 거품이었다.
다만 고3 진학을 앞둔 나에게 그런 거대 담론은, 먼 도시의 날씨 예보처럼 실감이 없었다.
내가 매일 마주해야 했던 건 더 가까운 현실이었다.
아침이면 도시 중심에서 버스를 탔다.
대구 외곽의 작은 읍까지는 한참을 달려야 했다.
버스가 출발할 때마다 차체가 크게 한 번 떨렸다.
덜컹거림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등뼈를 두드렸다.
창문에는 밤새 식지 않은 숨이 희뿌옇게 붙었고,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 위에 무심히 선을 그어놓았다.
시내를 벗어날수록 풍경은 낮아졌다.
건물이 사라지고 논이 나왔다. 간판 대신 전봇대가 서 있었다.
가방 속에는 입시용 문제집 대신, 자격증 책과 공모전 안내서가 들어 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직업반'은 애매한 위치였다.
대학 입시라는 단일한 목적지로 달리는 열차에서, 중간 정류장에서 내린 사람들을 모아둔 칸 같은 곳.
대구 외곽의 직업학교 컴퓨터산업디자인학과에 모인 친구들의 사정은 제각각이었지만, 교실 공기는 비슷했다.
대부분은 지긋지긋한 야간 자습과 0교시에서 빠져나온 아이들이었다.
그들에게 교실은 배움의 장이라기보다, 합법적으로 졸고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커다란 대피소였다.
하지만 나에게 그곳은 퇴로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도망칠 곳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이곳이 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문이었다.
실습실에 들어서면 오래된 본체들이 내는 묵직한 진동부터 달랐다.
컴퓨터 팬이 웅성거렸고, CRT 모니터는 묵직한 빛으로 책상을 눌렀다.
전자파가 '치익' 하고 새는 느낌까지도, 이상하게 나를 깨웠다.
펜티엄 III가 버거운 숨을 쉬는 동안, 나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만졌다.
툴바의 아이콘을 하나씩 눌러보고, 취소하고, 다시 눌렀다.
마우스 볼에 먼지가 끼면 분해해서 닦았다.
레이어는 내게 보이지 않는 질서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질서를 하루치씩, 조용히 쌓아 올렸다.
쉬는 시간에도 나는 자리를 오래 비우지 않았다.
누군가는 PC방으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갔고, 누군가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나는 문제집을 펼쳤다.
자격증 예상문제를 풀고, 공모전 주제를 곱씹었다.
그런 내 몰입은 교실 안에서 이상한 소문을 만들었다.
처음 들은 건 복도였다.
뒤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말끝이 내 쪽으로 휘어오는 걸 느꼈다.
목 뒤가 뜨거워졌다.
나는 모르는 척,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야, 저 사람 원래 시내에서 전교권이라 카던데?"
잠깐의 정적이 있다가, 누군가가 더 크게 받았다.
"진짜가? 근데 와 여기 왔노?"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이야기들이, 내 이름을 달고 돌아다녔다.
"집안 사정 땜시 대학 포기하고 실력 쌓으러 왔다 카더라."
"이미 대학은 골라 가는 수준이라 카던데."
사실무근이었다.
나는 전교권도 아니었고, 대학을 골라 갈 처지도 아니었다.
다만 조금 더 절박했을 뿐이었다.
복도에서 그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천천히 풀렸다.
그 오해는 나를 괴롭히기보다 조용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천재의 외도' 같은 이야기를 믿는 동안, 나는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가짜 명성은 보호막이 됐다.
나는 그 안에서, 내 방식대로 조용히 쌓아 올렸다.
가을이 올 무렵, 나는 자격증 몇 개를 손에 쥐었다.
공모전에서도 입상했다.
친구들이 수능 모의고사 점수에 울고 웃을 때, 나는 인쇄된 결과물을 가슴 가까이 당겨 쥐며 안도했다.
서울의 명문대 합격증은 아니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나를 굶어 죽지는 않게 할 기술이라는 증명서였다.
2000년 11월, 대구는 다시 수능의 계절에 잠겼다.
학교에서 원서를 접수하고 돌아오는 길.
내 손에는 접수증이 남았고, 내 속에는 불안이 남았다.
실습실에서 보낸 1년은 뜨거웠다.
마우스를 쥔 손은 단단해졌고, 눈은 화면의 픽셀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수능이 요구하는 건 그런 손의 기억이 아니라, 종이 위의 숫자였다.
내가 쌓아 올린 기술은 입시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답답했지만 누구에게도 티를 낼 수 없었다.
이 길은 누가 떠밀어 준 길이 아니었다.
입시반을 박차고 나온 것도, 0과 1의 세계를 선택한 것도, 모두 내 선택이었다.
스스로 고른 길 위의 두려움은 결국 내 몫이어야 했다.
수능 접수증을 들고 돌아온 저녁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신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평소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는데, 그날은 무엇에 홀린 듯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어머니 옷자락에서 배어 나온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둑이 터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불안해서.
미안해서.
내가 선택한 길이 너무 험할 것 같아서.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당황하셨을 법도 한데, 그저 내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셨다.
수능 성적표는 결국 도착했다.
종이를 펼쳤다.
숫자들이 눈에 박혔고, 과목명은 그 뒤를 따랐다.
나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방 안에는 종이 넘기는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TV 소리만 남았다.
자격증과 공모전 입상 실적은 내가 바라던 학교의 문턱을 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세상의 잣대는 여전히 차가웠고, 내가 보낸 1년의 가치를 누군가가 알아주지는 않았다.
봄이 왔을 때, 또래 친구들은 '01학번'이라는 빛나는 훈장을 달고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했다.
나는 그 행렬에서 이탈해 있었다.
재수를 하러 학원가로 나가는 것도,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도 아닌 시간이었다.
대구의 작은 아파트.
아침이면 부엌에서 어머니가 그릇 닦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소리가 멈출 때까지 이불속에서 천장을 바라봤다.
나의 2001년은 멈춰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들의 단체 사진이 올라온 게시판을 무심히 클릭했다가, 화면을 바로 닫아버렸다.
축하와 시작의 표정들 사이에서, 나만 시간이 멈춰 있다는 사실이 너무 선명해서.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본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팬이 낮게 울고, 모니터가 천천히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