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빈 화면 앞에 선 아이 - 벽 너머 들리던 한숨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고 집안을 지탱한 것은, 어머니의 작은 두 어깨였다.
우리 가족은 네 명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나.
기억 속의 집에는 늘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재봉틀이 책상 위에서 쿵쿵 울리면 바닥까지 같이 떨렸고, 실밥이 바람처럼 날려 발목에 달라붙었다.
한쪽 벽에는 다리미가 김을 뿜었고, 어머니는 손가락 끝으로 옷감을 펴고, 초크로 선을 긋고, 다시 접어 박음을 넣었다.
어머니가 바느질을 할수록 손마디는 굵어졌고, 거칠어진 손등의 주름만큼 우리 집 형편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혼자 이 집을 지탱하고 있었다.
백화점의 말단 판매원으로 시작해, 시장 구석의 한 평 남짓한 옷 수선가게를 일궈냈고, 마침내 브랜드 의류 대리점의 사장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한평 남짓한 공간을 매일 지켜내셨다.
아파트를 분양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주변에서는 모두가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물러서지 않으셨다.
"이 집만큼은 지켜야 한데이."
뼈를 깎는 시간을 견뎌낸 끝에, 우리는 마침내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안의 모든 경제적 여력을 쏟아부은 탓에 입주 이후의 삶은 오히려 더 삭막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맞은 일상은 숨이 막히도록 정적이었다.
번듯한 아파트 안에서, 나는 지독한 고립을 배웠다.
현관문이 "철컥" 하고 닫히면, 집 안은 한순간에 다른 세계가 됐다.
벽은 새 하얬고, 바닥은 차가웠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내 숨소리가 거실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귀로 돌아왔다.
한국의 인터넷은 전환점을 지나고 있었다.
전화 모뎀의 '삐익' 소리가 사라지고, ADSL 초고속 인터넷이 집집마다 깔렸다.
하이텔과 천리안의 텍스트 창은 조용히 묻혔고, 웹 브라우저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세상은 싸이월드라는 새로운 문법에 열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토리를 사고, 작은 가상의 공간에 자신을 전시했다.
하지만 나는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내 사진을 채워 넣는 것보다, 그 '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더 큰 호기심이 갔다.
'왜 남이 만든 홈페이지를 써야 하지? 내가 직접 만들면 안 될까?'
그 질문 하나가 나를 웹 개발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당시 한국 웹의 바다를 지배하던 설치형 오픈소스, 제로보드(Zeroboard)가 내 첫 번째 교과서였다.
처음엔 남들이 만든 게시판을 내 컴퓨터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그런데 곧 욕심이 생겼다.
배경색을 바꾸고 싶었고, 버튼 위치를 옮기고 싶었다.
나중에는 제로보드라는 엔진 자체를 내 입맛대로 고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서버와 코드와 데이터베이스가 한꺼번에 맞물리는 웹 개발의 산을 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서 건물을 짓고 있었다.
Apache를 깔고 이것저것 붙여 보기 시작했다.
PHP로 화면을 바꾸고, MySQL에 데이터를 남기고, JavaScript로 움직임을 얹자 브라우저가 내가 손댄 만큼 달라졌다.
PHP 코드 한 줄을 고치고, 저장하고, 새로고침을 누른다.
화면이 달라져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엇보다 직업학교 시절 익혀 둔 포토샵과 디자인의 눈은 나에게 강력한 무기가 됐다.
나는 단순히 코드만 짜는 사람이 아니었다.
포토샵으로 UI를 직접 그리고, 그것을 HTML과 CSS로 옮기고, PHP와 JS로 기능을 붙이고, DB를 설계해 서버에 올리는 과정까지.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CRT의 푸른빛만 방 안에 어른거렸다.
본체에서 빠져나온 열기가 무릎을 덥혔고, 식은 라면 냄새가 책상 모서리에 얇게 남아 있었다.
창밖이 조용해질수록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더 크게 방 안을 튕겨 다녔다.
하루 종일 모니터와 씨름하며 에러 메시지를 하나씩 지워 나가던 시간은, 더 이상 입시 실패의 우울함에 젖어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밤공기가 어느새 서늘해질 무렵이었다.
직업학교 시절 같이 다녔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성로 지하상가에 사진 편집하는 매장 있는데, 포토샵 잘하는 사람 구한다 카더라. 니 잘한다 아이가. 관심 있나?"
수화기 너머로 번화가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잠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모니터의 불빛, 키보드 위의 손가락 자국.
벽에 기댄 채 늘어선 철 지난 참고서들.
이 방이 나를 키워냈지만, 여기서 더 이상 자랄 수 없다는 것 도 알고 있었다.
"진짜가. 알았다."
현관문이 '철컥' 하고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