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빈 화면 앞에 선 아이 - 0과 1의 세계로
나는 열일곱에 인생을 포맷했다.
대구의 여름은 숨이 막혔다.
분지의 열기가 도로 위에서 끓어오르고, 뜨거운 바람이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그런데 그 무더위보다 더 끈적하게 사람들을 붙잡고 있던 건, IMF가 남기고 간 불안이었다.
TV에서는 매일 실업률 그래프가 올라갔고, 라디오에서는 '명예퇴직'이라는 단어가 날씨만큼이나 자주 흘러나왔다.
아파트 단지 앞 부동산에는 '급매'라고 적힌 종이가 유리창을 빼곡히 덮었다.
저녁 무렵이면 동네 상가의 셔터가 일찍 내려갔다.
누군가는 자리를 접었고, 누군가는 버텼다.
집집마다 사정이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내일'이라는 단어가 어제보다 가벼워졌다는 것.
나는 그 시절의 대구에서 고등학생이었다.
학교에서는 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다.
명문고, 수성구 학원가, 족집게 과외. 그리고 '인서울'.
그 줄 위에 내 자리는 없었다.
우리 집은 남들 다 하는 사교육을 뒷바라지할 형편이 못 됐다.
어머니는 백화점 판매원으로 시작해, 한 평 남짓한 옷 수선가게를 거쳐, 브랜드 대리점 사장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해내며 우리 남매를 키워냈다.
1999년, 대구의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던 날도 마냥 기쁘기만 하진 않았다.
입주의 설렘 앞에, IMF가 남긴 가혹한 중도금 이자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학원 버스에 올라타는 시간.
나는 혼자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면 새 아파트 특유의 시멘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거실은 넓었고, 그 넓이는 나에게 위로가 아니라 증폭기였다.
내 숨소리가 빈 벽에 부딪혀 돌아올 때마다, 아직 정하지 못한 미래가 한 뼘씩 더 커졌다.
나는 자주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남들과 똑같은 공부를 해서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나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노력'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남들과 같은 트랙이 아니라, 내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트랙으로.
그때 내 시선이 멈춘 곳이 방 한구석의 컴퓨터였다.
전원을 누르면 본체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낡은 CRT 모니터가 어둠을 밀어내며 켜졌다.
그리고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모뎀은, "삐-익… 삐-익…" 하는 연결음으로 작은 의식을 치르듯 시간을 끌었다.
그 소리는 대구의 열기 속에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생겼다는 신호 같았다.
나는 키보드 앞에 가만히 앉았다.
무언가를 눌러보고, 지워보고, 다시 눌렀다.
몇 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몇 번은 화면이 엉뚱하게 깨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실패는 억울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는 규칙이 있었다.
내가 잘못하면 틀린 결과가 돌아왔고, 맞게 하면 그 즉시 정답이 돌아왔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돈이 없으면 기회가 줄었고, 어른들의 배경이 내 성적표의 일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컴퓨터 앞에서는 달랐다.
내가 입력한 것이 정확하다면, 컴퓨터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아주 현실적인 다짐을 하나 만들었다.
'어떤 일이든 좋다. 컴퓨터를 다루는 일로 먹고살 수만 있다면, 적어도 이 세상에서 불행해지지는 않겠지.'
당장 내일을 버틸 기술 하나를 붙들자는 마음이었다.
남들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정석을 펼칠 때, 나는 방향을 다시 정하기로 했다.
대입을 위한 입시반 대신 직업반을 선택하겠다고 마음먹은 날, 나는 처음으로 '내가 갈 길'을 내가 골랐다는 안도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