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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긍정 Feb 27. 2021

퇴사, 그것은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용기.


아주 조금은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저는 지난 10년 동안 8개의 회사를 다녔습니다. 프로 퇴사러이자 프로 입사러라고 불리지요.

잦은 이직은 면접 때마다 따라붙는 제 꼬리표예요. 잦은 이직은 재취업마다 제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세상이 조금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잦은 이직은 무조건 나쁘게 평가되었습니다. 굳이 이력서에 잦은 퇴사가 다 쓰여있는데 면접에 불러다가 그렇게 자주 이직하면 누가 좋게 보겠냐, 우리 회사라고 오래 다닌다고 믿을 수 있겠냐. 이런 얘기를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의심되면 면접 안 부르면 되는 걸...

여러 번의 면접에서 제 능력이나 가능성이 아닌 잦은 이직에 대해서만 지적을 받는 경험을 많이 했었고, 그런 날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는 취업할 수 없겠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홀로 슬퍼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본 면접에서 잦은 이직으로 인한 다양한 경험이 통찰력을 가져왔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잦은 이직을 좋지 않게 보겠지만, 이직을 많이 했다는 것은 그만큼 취업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는 것이고, 다양한 조건에서 근무해보면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 경험을 재조합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신다고요. 결과적으로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서 그 분과는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말이 제게 정말 많은 힘이 되었어요. 재취업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좌절감 속에서 홀로 마음속에 깊은 터널을 파고 들어가 있었는데, 그 짧은 대화가 제 마음에 불을 켜고 다시 또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시 또 일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고요.


잦은 이직은 제 나름대로의 콤플렉스이기 때문에 누구와도 얘기 나누고 싶지 않아 겉으로는 적당한 핑계를 대면서, 진실은 제 마음속에 혼자 묻어두곤 했어요. 하지만 제 경험을 회사 생활에 힘겨워하거나, 이직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 그리고 취업의 문 앞에 절망하고 계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얘기를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왜 자주 이직하는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남들이 좋다고 하고, 저도 만족할 수 있는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제대로 취업하기 위해 몇 년이고 스펙을 쌓고 준비하면서 크고 체계적인 회사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될 준비를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바로 생활비를 벌어서 생활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은 시작한 공부를 마치고 싶었고, 그렇게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30살이었습니다. 30살의 나이에 또 취업을 준비하겠다며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그 시기에 입사 지원이 가능한 회사들에 입사지원을 했고, 그중 저를 선택해 준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입사 후 한 달이 지날 때 까지는 급여가 연체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한 달 분의 월급은 한 번도 제 날짜에 약속한 금액이 입금되지 않았습니다. 10만 원, 100만 원, 50만 원씩 쪼개서 입금되었고 그 마저도 약속된 날이 아닌 예상할 수 없는 어느 날 불쑥 들어오거나, 약속된 날에는 입금이 되지 않고 그러더라고요. 잠깐이라는 말을 믿었고, 상황이 나아질 줄 알고 버티며 제 업무를 수행했지만, 다른 곳에 입사할 재주가 있는데 굳이 오래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 월급이 밀리는 회사에서는 제 월급만 밀리는 것이 아니거든요. 수시로 쏟아지는 외상 독촉 전화, 엘리베이터에는 잔뜩 밀린 관리비 내용이 붙어있고 일은 열심히 하는데 제 생활은 쪼들리고 제 잘못은 아닌데 주변 눈치까지 보느라 생활이 많이 힘겨웠어요. 저는 수 천 번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어도 퇴사할 거고, 후회되는 건 더 빨리 퇴사했어야 했다는 것뿐인데, 면접 과정에서는 그 회사 아직 운영하던데요? 하는 말로 의심의 눈초리를 삽니다. 월급도 못 주면서 회사를 계속 경영하시는 것은 그 대표님의 능력인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계속 참고 버티는 것은 그들의 사정일 뿐 저와는 관계가 없는데도요.


그 후에 옮긴 두 번째 회사는 새로 창립하는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만든다던 연구소가 여러 사정으로 없어졌어요. 없어지는 과정을 함께 했기에, 회사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식물 소재 개발 연구원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입사했는데, 연구원이 아닌 상품기획자로 강제 전향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하지만, 역시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더니, 제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때의 상품 기획 경험은 제 업무 역량에 큰 자산이 되긴 했지요.


회사라는 것이 그렇더라고요. 면접을 아무리 길게 보더라도 입사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어요. 그리고 회사에 대해 알아가는데 약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요. 상황에 쫓겨 잘 모르고 입사한 회사가 저에게 안 맞을 때도 있었고, 작은 회사에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면서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너무 맞지 않는 직장 상사와의 불화로 인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위기에서 저를 구하기 위해 그만 두기도 했어요. 퇴근길 버스에서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줄줄 흐르던 회사도 있었고, 퇴근하고 나면 오늘 내가 처리한 업무 때문에 죽어서 지옥에 갈까 봐 혼자 방에서 울곤 하던 회사도 있었고, 직장 상사와의 불화가 깊어지던 어느 날 길에 지나가는 노인분을 그냥 때리고 싶은 충동이 들어서 그만둔 회사도 있었습니다. 퇴사를 결정했던 이유는 언제나 내 인생의 우선 수위는 나고, 나는 내가 지킨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 마음이 썩어 나서 제가 변하기 전에 저를 구해야만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퇴사를 멈춰야 할 때 멈춘 거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적정 근무시간은 8시간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들이 8시간 이상의 근무를 강요하곤 합니다. 강요는 말로 할 수도, 문서로 명시할 수도 있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도할 수도 있지요. 오랜 시간 근무하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지곤 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동료들의 판단력도 모두 흐려지지요. 그래서 근무시간이 긴 회사에서는 사내 갈등이 심각하곤 합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저와 불화가 깊었던 상사 분은 객관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분이셨습니다. 젊어서는 뛰어나고 우수한 연구성과로 빠른 승진을 경험하신 분이고, 이름만 대면 우리 할머니와 옆집 할아버지도 다 아실 정도로 크고 훌륭한 기업의 임원까지 하셨던 분이지요. 연세는 많으셨지만 총명하셨고 기억력도 뛰어나셨으며, 연구 결과를 잘 해석하고 연구 방향도 잘 잡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출근해서 밤 8시 10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길게 하나 보니 굉장히 예민해지셨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가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어요. 법은 문서이지만, 사람과 함께 생존해나가는 생명체와 같아서 수시로 변하곤 합니다. 그런데 제 상사 분은 시대의 상황에 맞춰 달라진 법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어요. 달라진 법에 의해 변경해야 하는 법을 말씀드리면 불같이 화를 내고 때로는 크게 소리치시거나 아주 매섭게 노려보시곤 했습니다. 그 분야는 내가 너보다 더 잘 안다고! 네. 이 분야는 더 많이 아시지만, 그때와 오늘의 법이 달라졌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드려야 화를 내지 않으실지 저는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법에 맞춰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갈등을 피할 수 없었고,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서 그 눈, 그 손가락, 그 목소리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저는 그때 그 회사의 업무들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눈, 그 목소리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네 잘못 아니라는 거 다 안다. 잘하고 있다. 괜찮다. 잠시 지나면 또 괜찮아지고 이해하실 거다. 잘 참는 것도 네 능력이다. 이런 동료들의 위로도 어느 시간부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제 안에는 길에 지나는 노인만 봐도 해코지하고 싶은 마음을 품을 제가 있었어요. 굉장히 짧은 시간에 마음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돌아보면 몇 달 되지도 않았던 시간인데, 그 짧은 사이에 제 마음 안에서는 수 십 번의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왔고, 몇 천 번의 천둥번개가 치고 불이 나면서 제 생각과 마음이 달라졌어요. 저는 그때 멈춰야만 했습니다. 원래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요. 조금 더 참다가는 제가 사라질 것 같았어요. 남들에게는 짧은 시간이라는 걸 알지만, 제 안에서는 강산이 수십 번 바뀌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퇴사 전 날 그분께서 따로 불러 말씀하셨어요. 그동안 열심히 했고, 잘하려고 하는 모습이 대견했고 때로는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은 미안하고 앞으로 더 성장하길 바라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더 좋은 회사 추천서도 써줄 수 있고, 소개가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나서 주신다고. 그 말이 진심이었던 것과 저를 좋게 봐주셨던 것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불화가 깊긴 했지만 그 안에서 주고받은 연구적 교류도 있었도 때로는 그분의 조언에 힘입어 더 좋은 성과를 했던 적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멈춰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일화는 면접을 통하게 되면, 상사 말에 잘 수긍하지 않고 조직에 잘 어울리기 힘든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되곤 합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일과 삶 중 무언가를 놓아야 끝이 난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지요. 일과 삶은 모두 유지해야 하는 것이며, 모두가 함께 영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에 몰리거나 심각한 압박감이 들 때에는 판단력이 흐려져요. 내 삶이 끝나야 이 일을 멈출 수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왜냐면 IMF를 겪으며 오랜 취업난을 겪으며 성장한 우리 세대는 직장이 없다는 것은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며, 직장이 없는 내 삶은 끝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많이 하거든요. 이 일로 그만두면 이렇게 자주 퇴사하는 나를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공포, 이렇게 직장을 그만 두면 패배자가 된다는 자괴감, 이 나이에는 아무도 나를 뽑아 주지 않을 거니까 그냥 참아야만 한다는 무기력함, 내가 그만두면 주변 모두가 실망할 거라는 두려움, 이렇게 직장을 그만 두면 그동안 힘들게 키워 공부시켜 주신 부모님께 불효하는 거라는 사회의 시선, 나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 이런 마음들은 한 번 싹트기 시작하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요. 밝은 마음은 쉽게 전파되지 않는데, 어우운 마음은 한 번 작은 싹을 틔우면 끝도 없이 굵고 깊은 뿌리를 내딛고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심각해지기 전에 우리는 멈춰야 합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는 용기를 참아야 할 때 도망가는 비겁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남에게는 짧은 시간이 당사자에겐 천년의 시간보다 길게 흐르면서 어둡고 무거운 마음이 수천만 번 되풀이된다는 것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도 지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 있지요.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모든 노력이 그 순간에 인정받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요즘 애들은 너무 쉽게 그만둔다. 이 얘기는 남의 시선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일은 쉽고, 내 일은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더 많이 경험했을 어른들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만두는 것 또한 쉬운 것은 아닙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쉽게 보지 말고, 또 다른 시도를 하려는 용기도 진지하게 받아주었으면 합니다.


업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시는 분들의 기사를 종종 접하곤 합니다.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을 참 쉽게도 하더군요. 저는 일과 삶 중 삶을 놓는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든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멈출 수 있을 때 멈추는 용기를 높게 평가하고, 한 번 멈춰본 사람은 또 다른 시작도 용기 있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기회를 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은 현대인이라면 꼭 가져야 할 필수 요소이지요. 하지만 직장이라는 것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을 수 있으며 내가 하는 일의 표현이자 나의 한 부분일 뿐이지 직장이 내 모든 것을 표현한다는 인식을 가지지 않도록 퇴사와 입사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원의 퇴사는 회사의 손해라고 합니다. 직원을 가르치는데 시간과 돈이 소요되니까요. 저도 이 점은 깊이 공감하지만, 직장에서 일방적인 교육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직원의 새로운 시선에 의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도출되기도 하고, 새로운 직원의 사소한 실수를 통해 회사의 문제점을 고칠 수도 있으니까요. 기존 직원들도 누군가를 가르쳐주면서 자신의 업무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정리하면서 업무 능력이 향상되기도 합니다. 물론 인원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은 회사의 큰 손실이기는 하지요.


입사도 하지 않았는데 퇴사할 것을 걱정하며 채용을 거절하시는 심리를 아직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좋은 회사를 다니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데 왜 직원들이 다니기 싫어하는 회사임을 알면서 분위기를 바꾸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경영자가 아니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겠지만, 저는 구성원의 잦은 퇴사는 개인들의 문제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원이 자꾸 도망가는 것은 이제 회사가 바뀌어야 한다는 신호라고 생각해요. 직원은 퇴사하면 고객이 됩니다.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하고 있고, 기업은 언제나 변화에 적응하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이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직원조차 버티지 못하는 회사를 그대로 방치하기보다는 조직의 체질을 바꿔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만족해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더 빨리 적응하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얘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새 버렸네요.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멈춰야 할 때를 인지하고 멈추는 것도 용기이며, 용기 있는 자는 언제든지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퇴사는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용기의 표현이지요. 일와 삶 중 무언가를 놓아야 하면 언제든지 일을 놓아야 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증명이니까요. 퇴사는 실패가 아닌 새로운 기회를 향한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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