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학과를 전공해야 테크니션이 될 수 있나요?”
고객분들을 상담하다 보면 가끔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전자기기를 다루고 제품을 정밀하게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아마도 기계공학을 전공했거나 전기를 전문적으로 다룰 것 같다는 이미지가 강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실상의 저는 이런 일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 커리어의 시작은 지금처럼 글을 쓰는 '기자'였습니다. 방송국이나 신문사의 기자와는 조금 다르게, 잡지사에서 근무하며 특정 주제에 대해 호흡이 긴 칼럼이나 기사를 작성하곤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생생한 현장에서 느낀 점을 정제된 글에 담아내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새로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하고 취재하며,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저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는 자부심도 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기획과 창작에 대한 스스로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마음은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매일같이 새로운 이야기와 인터뷰이를 찾아내어 빈 페이지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은 어느새 즐거움보다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직업은 바뀌었어도,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고민은 지금도 비슷하지만 말이죠.- 결국 매일같이 반복되는 '새로움'에 대한 강박은 저를 점차 잠식해 갔습니다.
결국 저는 펜을 놓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을 '기자'라는 타이틀이 저에게는 매일 아침 목을 죄어오는 넥타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읽는 기사의 뒤편에서 저는 매일 밤 하얀 모니터 커서를 바라보며 마감의 압박에 시달렸고, 창의성의 샘이 바닥난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렇게 도망치듯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 후 1년을 거의 넘은 시간 동안 저는 '백수'라는 이름의 긴 터널을 지났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해방감에 젖어 있었지만,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와 비례해 자존감도 깎여 나갔습니다. '기자가 아니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1년이라는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금 다니는 회사의 채용 공고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직이 아니라 리테일 매장의 근무였고, 지원할 수 있는 직책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것들뿐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테크니션이라는 구체적인 직무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막연한 동경을 가졌던 브랜드의 공고를 보며,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습니다.
기계공학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문과생, 평생 글만 쓰던 내가 전혀 다른 결의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이상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글자로 세상을 설명하던 방식 대신, 새로운 방법을 통해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입사 후의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생소한 기술 용어들과 씨름하고, 직원보다 더 제품을 잘 아는 고객들을 만나면서 기자 시절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땀을 흘렸습니다. 매일 퇴근하고 나면 지쳐서 잠드는게 일상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고객들을 마주하며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미래가 불안합니다. 기자 시절에는 마감이 불안했고, 지금은 제가 내린 진단이 틀리지는 않았을지, 혹은 이 선택이 나중에 어떤 파도로 몰려올지 문득문득 막막해지곤 합니다.
제 인생은 늘 불안의 연속이었고, 그 불안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자시절보다 더 힘든 직장생활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남의 성취 뒤에서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밤잠 설치고, 현실적인 문제로 어떻게든 버티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요. 1년의 공백기 끝에 낯선 세계에 발을 들였듯, 저는 앞으로도 여전히 불안해하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 막막한 불안의 한복판에서, 저는 무작정 짐을 챙겨 떠나기로 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이 거창한 결론은 아니었지만, 그 막막함을 달래주었던 나만의 아지트로 출발했습니다.
-Conti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