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다.
시간이 갈 수록 기억은 가물거리며 사라져갔다.
급기야 딸들도 못 알아보신다.
엄마 표현대로 목소리는 여시같고, 눈꼬리는 올라가고 표정은 아이같다.
본디 성품이 선하고 온유해 웃음 많고, 해맑던 분이시다.
평생 근면성실. 뼈 부서지게 일하며 사셨건만
현실은 권선징악 소설처럼 시원치 않다.
운명이 야속하다.
그러다가도 아기처럼 해맑은 웃음,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지금 이 모습이 정상같다.
화내고 싸우고 지지고볶고... 우리네 삶이 비정상이지 싶다.
낯선 모습을 보며, 과연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억이 남아있을 때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더라면..,
손주들을 보면 "이쁘다 이쁘다 아고 이쁘다" 하시며 함박웃으신다.
이런 변화를 유독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다.
일곱살 딸아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고 들이대는 사람을 싫어한다. 가끔 새초롬하여 찬바람이 싸할 때가 있다.
아이가 볼때 할아버지는 이상하다. 품새가 자기보다 어리게 느껴져서 일까? '고거 이쁘다' 하며 쳐다봐서 일까...
외할아버지는 싫다고 한다.
자꾸 피하고, 멀리 떨어져 앉곤 한다.
누구나 할아버지처럼 될 수 있어 '나무처럼 자연스러운거야'라고 말해도 어린아이 눈에도 어색한가보다
아이들 여름방학이라 외가에 왔다.
책을 읽어주고, 함께 얘기하는데 잘도 말한다.
보석아 넌 어쩜 그리 기억도 잘하니??
"응~할아버지 머리 엔 지우개가 있고
내 머리엔 연필이 들어있어"
머리가 하얘지더니 웃음이 나왔다.
"어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보석이는 시인이구나"
웃는 와중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지금도 기억이 잘 안날때가 많은데
나이들어 어떨지...
머리속 연필이 다 닳기 전에 부지런히 삶을 기록해야 겠다.
매일 똑같은 일상과 자연...자세히 보아주고
이름 한번 불러주면 특별해지 듯.
자칫 지리해질수 있는 날. 연필로 기록하다보면
하루가 작품일테지...
글을 왜 써야하는지 잘 몰랐다. 어느날 갑자기
인연이 닿아 썼을 뿐.
하지만 이젠 써야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자식 손주 마음에 내 마음이 아로 새겨 남는다는 건 영광이니까...
그러기 위해 멋진 '나'로 살아가길 꿈궈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