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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발랄 Jun 06. 2022

복직 전 가방 점검

깨진 블러셔와 튤립송 사이에서 상념에 잠기다


복직이 일주일 남았다. 집안에서 아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발랄씨가, 이제 다시 오피스 생활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냉장고 정리, 집 청소, 아기 반찬 만들어 얼려두기 등등의 복직 전 해야 할 집안일을 생각하던 중- 이발랄씨는 문득 자신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튤립송이 방긋 웃고 있었다. 자주색 튤립 위에 눈코입이 그려진 귀여운 장난감.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동요가 자동으로 재생되고, 튤립을 흔들흔들하면 차라랑 차라랑 하는 예쁜 이펙트 사운드가 나오는 아주 멋진 녀석이지만, 차를  때마다 들려줘서인지 아가는 이제 질려버렸다. 육아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름도 몰랐던 녀석인데,  가방에서 산지도 한참 되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초록색 장난감 칫솔. 치카치카 차카차카 노래가 나오는, 양치질 호감도를 높이는 장난감으로 아가가 최근 마음에 들어 하는 녀석이다. 아가는 장난감으로 양치하는 시늉도 하고, 음악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기도 한다.  모습이 생각나 이발랄씨는 빙긋 웃다가, 꾸깃한 세탁소 영수증을 발견했다. 휴직 전에는 동네에 있는 줄도 몰랐던 세탁소인데, 지금은  세탁소에 나이가 무척 많은 슈나우저가 있다는 것까지도 안다. 주인아저씨가 일을  동안 개집에서 잠을 자고, 가끔 누군가가 먹을  던져줄  기대하고 길가에 앉아있다. 가방 앞주머니를 열자,   쓰지 않은 블러셔가 보인다. 그러나 블러셔를 열자,  안에 고체(뭐라고 불러야 하지) 산산조각 나있었고, 코랄빛 가루가 맥없이 날렸다.  옆에 있던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아이라이너는 바싹 말라서 기능을 잃은  오래였다. 코로나로,  육아로 인해 화장할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오래된 립스틱은 하나만 남기고 버려버렸지만, 아이섀도는 하나밖에 없어서 일단 남겨두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가방의 물건들이 왠지 거울 속에 비친 이발랄씨의 모습처럼 낯설고도 친숙하다. 지난    이발랄씨는 무척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졌고, 반면에 그전에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어쩐지 살짝 겁나는 것이 되어버렸고, 아가를 환영해주는 공동체 속의 여행 안에서는 편안함을 느낀다. 혼자 있는 시간은 마치 가져서는  되는 명품백처럼, 사치스럽고 귀하고 낯선 것이 되어버린  같다. 아냐, 이건 위험한 생각이야.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여전히, 엄마가 행복해야 아가도 행복하다고 믿고 싶다. 가방 속의 장난감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게 해주는 아이패드와 키보드도, 모두  소중하다. 아마도 출근날 차안에서 개봉하게 될 커버 쿠션과 아이라이너 펜슬(이건 오래둬도 굳진 않을 테니까) 구매하며, 다시 덤덤히 하루를 마감하는 이발랄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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