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뭘로 할까 하는 고민 끝에 끄적인 '박복한 X'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들 하니 어느 시인도 여덟 번이나 읊조렸나.
아빠의 장례식에서 충분히 슬퍼하지 않은 이유는 사는 것이 너무 바빠서였노라고 자백, 아니, 위로한다.
죽음 후에 정리해야 할 것들, 당장 배가 고프고 잠이 와서 울어대는 내 새끼가 있어 슬퍼할 시간에 닥친 일을 정리해야 한다고, 울 시간이 없는 거라고 되뇌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한 달이 지나서는 나는 또다시 웃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남편과 딸아이와 마주 보며 하하하 웃었다. 그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기 나는 천하의 박복한 X인 걸까, 아님 천하디 천한 박복한 X이라 슬퍼할 여유조차 없었던 걸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