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겨워진다. 취침시간이 늦어지고 있어서이다. 매일같이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또 글을 쓴다는 게 정말이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내가 얘기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여정도 Trail of Tears같다고
오늘은 마운드(Mound) 얘기로 시작해야겠다. 마운드는 흙을 쌓아 올린 구조물이다. 북미지역에서는 선사시대 원주민들에 의해 건설된 마운드들이 미시시피 강 연안의 중부지역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마운드들은 기원전 고대인들에 의해 건축된 것도 있고, 8세기 이후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건축된 것도 있다. 오늘은 미시시피 강 연안으로 이동하여 이들을 둘러볼 차례이다.
우선 기원전 유적지부터 방문한다.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 강변에 있는 파버티포인트(Poverty Point)는 기원전 1700년경부터 수백 년 동안 고대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던 유적지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다섯 개의 마운드(mound)와 반원 모양으로 구성된 여섯 줄의 둔덕이 남아 있다. 흙으로 된 구조물인데다가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얼핏 봐서는 고대 유적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고, 둔덕의 경우에는 너무 평평해져서 별도의 표시가 없으면 알아보기도 힘든 상황이다.
비지터 센터에 마련된 조그마한 박물관에는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유적들의 구조 및 당시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설명들이 있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트램을 타고 하는 가이드 투어가 있는데, 지금 시각은 12시, 다음 투어 시간은 1시이다. 점심을 해결하면서 기다리면 좋을 텐데 인근에 마땅한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며칠 전 샌드크릭을 방문했을 때와 동일한 상황이다. 어제 저녁으로 주문했다가 남아서 만약을 위해 챙겨두었던 피자를 꺼내온다. 간밤에 냉장고에 보관해 두어 차가워진 피자를 입에 넣는다. 콜라도 없이. Trail of Tears.
가이드 얘기에 의하면, 이곳에 마운드와 둔덕이 건설된 시기는 이집트에서 피라미드가 건설된 시기와 유사하단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당시 이곳 미시시피 지역은 농경문화가 보급되기 이전이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농경문화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하고 마을을 이루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수렵채집을 하던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살았다. 이는 아마도 주위에 식량자원이 워낙 풍부하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특히 미시시피강의 존재는 풍부한 생선의 확보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비지터센터의 파버티 포인트 안내자료
반원형으로 구성된 둔덕들에서는 많은 양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사람들의 주거활동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높은 마운드에서는 아무런 유물도 출토되지 않아서, 주거목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고 피라미드처럼 무덤 용도로 활용되지도 않았다(유골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가장 큰 마운드 A 같은 경우는 그 높이가 72피트(22미터)에 이르며, 3-4천년 전의 원래 높이는 100피트(30미터)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대규모 건축물을 3개월 정도 걸려 완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흙을 쌓아 올릴 경우 지표면 층층에 식물이 자라거나 그 밖의 다른 흔적들이 남는데, 이곳 마운드 지층에는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아서, 바로 바로 흙을 쌓아 올렸을 것으로 본단다.
그런데, 당시 고대인들이 흙을 운송하는 수단은 짚이나 가죽으로 만든 바구니밖에 없었을 것인데, 이정도 규모의 마운드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약 1550만번을 실어날라야 할 분량의 흙이 필요하고, 이를 3개월만에 마치기 위해서는 수천 명 혹은 만 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의 사회에서 이와 같은 수의 인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강력한 통치자가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파버티포인트에서 가장 큰 마운드 A - 꼭대기까지 탐사로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건축물을 무리해서 남겼을까? 정답은 아무도 모르는데, 가이드 본인은 단순한 과시목적이 유력하다고 생각한단다. 현대인들이 마천루를 지어 올리듯이, ‘나는 이렇게 엄청난 걸 지을 힘이 있어’라고.
지금은 형체 분간이 잘 되지 않는 둔덕들도 당시 높이는 4피트(1.2미터)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규모가 꽤 크고 위에서 항공사진으로 보면 매우 정교하게 줄을 잘 맞추어 건설되어 있어서, 고대인들이 이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 상황이다. 1950년대에 해당 지역을 발굴했던 고고학자는 특이한 모양의 마운드 A와 이들 둔덕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새가 날개를 편 모양이라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가이드 투어에 참가한 한 아이가 질문을 한다. ‘여기 말고 근처에 가까운 문명(civilization)은 어디가 또 있었나요?’ 어린 아이 같은데 사용하는 어휘며 질문솜씨가 제법이다. 가이드가 대답한다. ‘우선 이곳을 문명으로 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명으로 부르려면 뭔가 조직화된 사회구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곳은 당시 농사도 짓지 않던 수렵채집 사회였다. 하여간 미국 지역에서 기원전 수천 년 전에 이와 같은 구조물을 만든 곳은 여기 외에 발견되지 않았다.’
과연 문명의 정의는 무엇일까?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벗어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아무래도 농사가 핵심이 될 듯싶다. 농경을 하면서 정착이 이루어지고 협력이 이루어지면서 부락과 도시가 형성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수렵채집을 영위하는 집단이 이곳처럼 수천 명 규모로 한 곳에서 정착생활을 했다는 건, 참 이례적인 것 같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경우라고 가이드가 강조한다.
트램투어
이제 루지애나주에서 미시시피강을 건너 미시시피주로 향한다. 남부로 내려오면서 넓은 밭의 작물 구성이 변하는 것을 느낀다. 중부지방에서는 옥수수와 밀이 주로 보였는데, 이곳에는 목화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예전에는 이 넓은 곳에서 수많은 노예들이 뙤약볕 아래 작물을 가꾸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각종 농기계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고, 하늘에는 항공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무언가를 밭에 뿌리고 있다. 그 중 한대는 어찌나 낮게 날아오는지 우리 차와 부딪치는 줄 알았다. 아내는 조종사가 일부러 장난 삼아 그러는 것 같다고 화를 낸다.
미시시피에서의 첫 방문지는 에머랄드 마운드(Emerald Mound)이다. 파버티포인트 마운드가 기원전 수렵채집인들의 작품이라면, 에머랄드 마운드는 8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미시시피 강 연안을 따라 번성했던 미시시피 마운드 문명의 일부이다. 미국의 서남부에서 호호캄, 아나사지 문명이 번성하던 12세기에 미시시피강 유역에서는 마운드 문명이 출현했다.
파버티포인트 마운드의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오리무중인 반면, 미시시피 유역 마운드 모습은 역사 기록을 통해 남아있다. 1539년 플로리다에 상륙해서 미국 동남부 지역을 탐사한 데소토 부대의 기록을 보면, 높은 마운드 위에서 살고 있는 추장이 다스리는 큰 마을들에 대한 설명이 자주 등장한다. 마운드는 지배계급의 주거지, 그리고 종교적 목적의 행사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토목공사를 위한 도구가 별도로 없었다는 점에서는 기원전 수천 년 전에 지어진 파버티 포인트나 이들 마운드나 크게 다를 바가 없고, 결국 이러한 규모의 토목공사는 중앙집권적인 권력사회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미시시피강 유역에 거주했던 나체즈(Natchez)부족이 이러한 마운드 문명의 후예로 여겨지는데, 추장을 태양의 아들로 섬겨오는 전통이 있었던 이들 부족은 프랑스와의 전쟁 영향으로 노예로 팔리고, 뿔뿔이 흩어져서 오늘날 부족단위로서의 존립은 사라진 상태다.
에머랄드 마운드는 북미 지역에서는 일리노이주의 카호키아(Cahokia) 마운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거대한 규모의 일층 마운드가 있고, 그 위로 여덟 개의 마운드가 추가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두 개의 마운드만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파버티 포인트도 그렇고 에머랄드 마운드도 그렇고, 고고학자들이 이들의 연대를 측정해내고 유적으로 인정해주니 관심을 갖고 보게 되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특이한 언덕쯤으로 생각하고 지나칠만하다. 하지만, 여기에 이야기를 입히면 생생한 장면이 연출된다. 오늘 방문지들은 상상력을 요하는 곳들이다.
오늘은 일찌감치 Natchez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 한다. 동네가 고풍스럽고 깨끗하다. 체크인하던 중 수영장이 눈에 들어오는데, 아무도 없다. 여행 13일만에 처음으로 수영을 했다. 그간의 피곤이 싹 풀리는 듯 하다. 그늘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낙원이 따로 없다.
인근에 평점이 좋은 식당을 찾아 나섰는데, 바로 미시시피강가에 있다. 오 미시시피! 그 유명한 강을 처음 만난다. 가까이서 보니 물살이 장난이 아니다. 데소토의 부대가 미시시피강을 마주했을 때에도 이 급한 물살 때문에 건너는 데 고생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해가 간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아내가 음식을 간만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데, 한편으로 맘이 짠하다. 어떻게 보면, 지난 13일동안 산타페에서의 하루를 빼면, 우리가 다녔던 곳들은 일반적인 여행자들이 들르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곳 나체즈는 오늘 방문했던 에머랄드 마운드, 그리고 내일 방문할 나체즈 빌리지 때문에 들러서 하루 묵는 곳으로 생각했는데, 그 성과가 기대이상이다. 호텔 수영장에서의 여유, 멋진 식사, 그리고 미시시피강의 경치. 마침 석양이 빨갛게 지는 시간이었다. 아내가 얘기한다. ‘미시시피가 가장 아름다운 곳인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내일은 이곳 나체즈에 있는 나체즈 부족 마을을 둘러보고, 앨라바마주로 이동하여 마운드빌이라는 유적지를 방문한 뒤 몽고메리라는 곳에서 숙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