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Day 15 태양신을 섬기던 부족의 생생한 기록과 흔적

미시시피 나체즈 빌리지 그리고 앨라배마 마운드 빌

by Jaeho Lee
나체즈빌리지 재현 그림

나체즈 빌리지(Grand Village of Natchez)는 나체즈 시내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주택가 근처에 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그 안에 조그마한 박물관이 있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대신 방명록에 기재를 해 달란다. 국가별 또는 미국 각 주 별 방문객 숫자가 정리되어 있다. 중국, 일본, 대만은 있는데, 한국은 없다. 우리가 첫 발을 끊는 건가?

나체즈 부족은 기존에 우리가 방문했던 다른 미국 인디언 부족들과 좀 다른 특징이 있다. 이 부족은 미시시피 마운드 문명의 직접적인 후손들로 여겨진다. 대규모 노동력이 투입되는 거대한 마운드를 건설했다는 점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 존재했다는 것인데, 이는 미시시피강 유역과 미국 동남부에 거주했던 5개 부족 (크릭, 촉토, 치카소, 체로키, 세미뇰)의 분권적이고 수평적인 정치체계와는 차이가 난다.


오대호 연안을 따라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는 1700년대 초에 미시시피강을 따라 남하하여 멕시코 만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시시피강 연안에 살던 나체즈족을 만나게 되는데, 당시 이 부족은 수도를 에메랄드 마운드로부터 지금의 나체즈 그랜드 빌리지 인근으로 옮긴 상황이었다.


초기에 프랑스와 나체즈족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부족 마을 인근에 프랑스 요새도 건설하게 된다. 당시 이 부족의 생활상이 프랑스인들의 기록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마운드 문명을 유지하고 있던 부족으로서는 유일한 사례이다. 어쩌면 프랑스와 나체즈족의 이 만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마운드 주거지에서의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전적으로 상상에만 의존해야 했을 것이다.

나체즈 그랜드 빌리지의 경우, 두 개의 커다란 마운드가 있는데, 하나는 대추장의 주거지로 사용되었고, 또 하나는 종교적 의식이 거행되는 곳이었다(세 번째 마운드도 있는데 이는 그 이전에 사용되었던 작은 사이즈다). 부족민들은 인근 지역에 가족단위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고, 그랜드 빌리지에는 대추장의 가족과 귀족계급들이 거주하였다. 나체즈족 경우에도 다른 인디언들처럼 모계 승계가 이루어졌는데, 왕족 혈통인 태양신 후손가문의 최고 여인의 아들이 왕(대추장)의 자리를 받게 된다.


프랑스인들이 나체즈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시기에 프랑스인들은 이들의 큰 행사를 목격하게 되는데, 바로 대추장의 장례식이었다. 당시 이들 부족은 순장 풍습이 있어서 대추장이 죽으면 그 배우자와 시종들도 함께 죽여서 묻어 대추장의 사후세계를 보살피게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시스템에서 대추장에게 시집가는 일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듯 하다. 대추장과 함께 죽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대추장과 결혼한다고 해서 자신의 자식이 대추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는 고도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종합된 집안의 결정이었고 당사자는 그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었으리라. 어찌되었건, 순장이라는 풍습은 권력자가 자신의 배우자나 시종들이 권력자의 무사안위를 위해 몸 바쳐 헌신하도록 만드는데에는 최고의 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프랑스와의 좋은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이 지역에 부임한 새로운 총독이 나체즈족 땅을 강탈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이 지역에서 담배 플랜테이션을 시작했고, 서인도제도에서 흑인 노예들까지 수입해서 사업을 크게 확장하고자 했다. 이들은 플랜테이션 확장을 위해 나체즈족에게 마을을 비울 것을 요구하고, 이에 분노한 부족민들은 1729년 11월에 프랑스 요새를 기습 공격하여 2백여명의 프랑스인을 살해하고 또 50명의 여성들과 300명의 흑인 노예를 포로로 잡아간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는 군대를 파견하고, 또한 자신들과 동맹관계에 있는 촉토족을 동원하여 나체즈족 절멸작전을 전개한다. 1년여 동안 진행된 이 전쟁은 프랑스군이 나체즈족 요새를 포위하여 결국 항복을 받아내면서 마무리되고, 프랑스군은 500명의 나체즈족 포로들을 서인도 제도로 보내 노예로 팔아버린다. 일부 나체즈족이 이 과정에서 도망쳤지만,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붕괴된 후 이들 부족은 더 이상 독립적인 부족으로 건재하지 못하고, 촉토족과 대립관계에 있던 치카소, 크릭부족으로 흡수되고 만다.


이곳 나체즈 빌리지도 잔디로 덮여있는 마운드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래도 Lepage du Pratz라는 프랑스인이 당시 나체즈족 생활상을 묘사한 그림들이 박물관에 많이 소개되어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림을 잘 그려서인지 원주민들의 모습이 순수하고 아름답다.

평화의 담배대 행진 의식, Lepage du Platz의 그림(1758)
태양신의 행차
단체 무도 장면
농사짓는 모습

자동차를 많이 타는 관계로 기회가 되면 운동을 하고 싶어진다. 어제 파버티 포인트에서 너른 잔디밭을 겅중겅중 달리던 사슴들을 떠올리며 공원을 좀 달렸더니, 아내가 얘기한다.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게 붙여 줄 인디언 이름이 떠올랐단다. ‘Crazy Deer’. 내가 그럴듯하게 사슴 뛰는 흉내를 냈나 보다. 두 발로…


박물관 자료에 의하면 1521년에 미시시피강 유역을 탐사했던 데소토도 나체즈족을 접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데소토 탐사기록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데소토가 미시시피 강 너머에 강력한 인디언 마을이 있음을 확인하고 ‘여기에 태양의 아들이 왔으니 부족의 추장은 마중 나와서 예를 갖추라’라고 전령을 보낸다. 그러자, ‘네가 태양의 아들이면 이 강을 한 번 말려보거라. 그럼 내가 믿으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서 내게 예를 갖춘 적은 있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러 나가는 일은 없었다’라며 그 마을의 추장이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데소토와 스페인군에게 망신을 준다. 그 추장이 바로 나체즈족 추장이라는 것이다.


당시 데소토는 다른 인디언들과의 전투에서 전력소모가 심했던 상황이라 이런 수모를 받고도 응징을 하지 못했었다. 나체즈의 위치는 내가 이제껏 이해하고 있던 데소토가 방문했던 지역보다 훨씬 더 미시시피강 하류 쪽에 위치하고 있기에 이들이 만났다는 점은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하여간 데소토 얘기는 담에 더 자세히.


이제는 앨라바마주로 들어가서 마운드빌(Moundville Archaeology Park)을 찾아간다. 앨라바마주 초입 간판이 ‘Welcome to Sweet Home Alabama’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 추억 속에서 앨라바마주를 소환하고 있던 중이었다. ‘멀고 먼 앨라바마 나의 고향은 그 곳, 벤조를 매고 나는 너를 찾아왔노라. 떠나온 고향 하늘 가에 구름은 일어, 비끼는 저녁 햇살 그윽하게 비치네. 오 수재너야 노래 부르자. 멀고 먼 앨라바마 나의 고향은 그 곳’.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미국 가곡인데, 신기하게도 가사가 대부분 생각난다. 일부 소환되지 않는 가사는 아내의 도움으로 채워 넣은 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앨라바마 입성이다.


그런데, 왜 sweet home이라고 하는 걸까? Oh Susanna 노래 영어가사에도 sweet home은 안 나오는데… 궁금해하니, 아내가 검색한 결과를 알려준다. 유명한 록그룹의 노래 중 Sweet Home Alabama가 유명했었다고. 한 번 들어보니, 귀에 익숙한 노래이다.


네바다,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 콜로라도, 캔자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바마. 세어보니, 이제 여행에서 열 번째 주로 진입한다. 참 많이 다녔다.

마운드빌은 앨라바마 주립대학에서 관리하고 있고 박물관도 운영한다. 파버티포인트의 경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둔덕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고, 에메랄드 마운드는 산속에 달랑 하나, 나체즈 마을에는 3개의 마운드가 있는데 비하여, 이 곳에는 넓은 지역에 걸쳐 자그마치 28개의 마운드가 있다. 이 지역의 마운드들은 대략 1100년대부터 1200년대까지 건축되고 1400년대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공원으로 입장하니 이제껏 방문했던 마운드 유적지보다 그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다.

마운드빌의 마운드 배치도

박물관에 들어가니 이곳에 거주했던 사람들에 대한 소개가 되어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1540년에 데소토가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이미 이들 마운드들은 버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체즈 마을과 달리, 이곳의 생활상은 발굴된 유물에 근거하여 전적으로 상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곳 박물관에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도리어 억지스런 느낌이 있다.

마운드들의 크기는 제각각 인데, 아마도 부족 내에서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곳의 일부 마운드들은(주로 작은 마운드들) 매장지로도 사용되었는데, 원래 의도가 그러했던 것인지, 아니면 이곳이 버려진 이후에 다른 인디언들이 그렇게 사용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고학 조사 결과로 보면, 이들 마운드들은 나름대로 전체적인 배치에 대한 기본 설계가 된 상태에서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이들 마운드들을 둘러싸고 목책이 둘러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목책 내부의 인구는 1천여명, 인근 마을까지 합치면 대략 1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도시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당시 북미에서 일리노이주 카호키아 다음으로 큰 규모의 도시였음을 의미한다.


제일 높은 마운드에 올라 경치를 조망해본다. 다시 상상력을 소환한다. 나체즈 마을의 그림과 이곳 박물관 전시물을 잘 섞으면 생생한 모습의 구현이 가능하다. 마운드 위에 어떤 용도인지 모를 작은 건물이 하나 지어져 있는데, 너무 대충이다. 심지어 콘크리트가 사용되고 지붕은 철판으로 보인다. 이럴 바에는 아예 없는 편이 더 나을 듯 하다. 도리어 상상력 소환에 장애물만 된다. 대학에서 운영한다고 해서 나름 기대가 컸었는데…. 어제와 오늘에 걸쳐 마운드가 있는 유적지 네 곳을 방문한 셈인데, 이 곳은 기대에 비해, 그리고 그 규모에 비해 실망이 큰 곳이다.

마운드빌의 가장 높은 마운드

박물관 안내인의 말로는, 이 인근지역에 거주하던 크리크, 촉토, 체로키 등 여러 부족이 모두 자신들의 선조가 이 마운드의 주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단다. 이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곳에서 출토된 유골과 이들 부족의 DNA를 대조하는 방법일 텐데, 이 방법은 부족들의 반대로 실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부분은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오늘 숙박지인 몽고메리(Montgomery)에서 우리가 한식을 제대로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단지 다음 행선지인 플로리다로 가는 길에 있는 큰 도시라 이 곳에 숙소를 잡았을 뿐인데, 알고 보니, 이곳은 앨라바마주의 주도이고 현대자동차 미국 공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는 길에 아내가 이런 내용을 검색해서 알려 주길래, 그럼 한국 식당도 제대로 있겠네 했더니, 정말 그렇다. 소공동 순두부에서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잘 먹었다. Serendipity!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발견. 아내가 숙소를 잡을 때 그런 조사도 안 했냐고 하길래 대답한다. '난 인디언 관련 내용만 조사해'.


이제부터 당분간 먹는 걸로 고생하는 일은 없을 듯 하다. 나름 문명세계로 진입한 느낌이다. 여기부터 플로리다를 거쳐 뉴잉글랜드로 들어가는 여정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상상력을 발휘하는 여행을 진행했다. 내일은 플로리다를 향해 가는 날이다. 그냥 하루 종일 가.기.만.한.다. 512마일(824킬로미터)을 가는 여정에 어떤 Serendipity를 만날지 기대하면서. 도착지는 Bradenton. 이곳은 이전에 몇 번 언급한 적 있는 데소토가 1539년에 상륙했던 곳이다. 그 동안 데소토 얘기를 하지 못해 근질거렸다. 이제 코로나도와 동시대의 스페인 탐험가 데소토 얘기를 할 차례가 되었다.

keyword
이전 05화Day 14 미시시피 마운드, 인디언 계급 사회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