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우리가 방문하는 지역은 뉴욕주 북부로, 이로쿼아연맹(Iroquois Confederacy)에 속한 부족들의 주 근거지였던 곳이다. 오늘 첫 방문지는 뉴타운 전투(Newtown Battlefield) 기념공원이다. 미국 독립전쟁 기간 중인 1779년, 영국과 이로쿼아 인디언 연합군이 이곳에서 패배하면서 미국군대가 이로쿼아 연맹 부족 마을들을 초토화하는 통로가 열리게 된다.
기념공원은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뉴타운 지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정상에 자리잡고 있고 중앙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 새겨진 동판은 전투에서 숨진 미군뿐 아니라 영국군과 이로쿼아 인디언들을 함께 추모하고 있으며, 전망대에는 몇 개의 안내판으로 당시 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어제 언급했듯이 이로쿼아 연맹은 세네카, 카유가, 오논다가, 오네이다, 모호크의 다섯 부족으로 구성되었고, 나중에 투스카로라족이 합류하여 6개 부족의 연맹체로 확대되었다. 이로쿼아는 처음에 이들을 상대했던 프랑스가 붙여준 이름으로, 이들 부족은 스스로를 호데노소니(Haudenosaunee)라고 부르는데 이는 ‘롱하우스(longhouse)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1620년대부터 뉴욕에 진출한 네덜란드 및 뉴잉글랜드에 진출한 영국 식민지와 모피교역을 시작했는데, 모피 사냥터를 두고 오대호 북쪽 캐나다 지역에 거주하던 휴론(Huron)족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당시 휴론족은 세인트로렌스강(St. Lawrence River)을 따라 진출한 프랑스와 모피교역을 하고 있었고, 결국 프랑스는 휴론족, 영국은 이로쿼아족을 지원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휴관계가 어제 얘기한 바와 같이 이들 부족이 두 유럽국가의 전쟁에 참여하는 배경이 된다.
이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이후 이로쿼아 연맹은 미국식민지를 통치하는 영국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 다른 인디언 부족과의 전쟁에도 영국을 도와 참여한다. 하지만, 1775년부터 미국식민지가 영국과 독립전쟁을 하게 되면서 이로쿼아 연맹도 갈등에 빠지게 된다. 초기에 이로쿼아는 이 전쟁을 영국인들간의 내부 갈등으로 여기고 중립을 지키고자 했으나, 영국과 미국 양측은 자신들 편에 서지 않을 경우 적으로 간주함으로써 이들의 중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모호크족의 젊은 지도자 중에 조셉 브랜트(Joseph Brant)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영국의 인디언 감독관에게 발탁되어 영국식 교육을 받고, 영국군을 도와 다른 인디언과의 전투에도 참가하여 인정을 받는다. 또한 유력한 모호크 추장의 딸과 결혼하여 부족 내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다. 그는 1776년에 영국을 방문하여 조지국왕(King George)과 면담하고 정식으로 영국군 장교직급도 받는다.
영국방문시 그려진 조셉 브랜트의 초상화
영국과 미국식민지간의 전쟁에 대한 부족연맹의 입장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브랜트는, 영국이 승리해야만 이로쿼아 부족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4개 부족(세네카, 카유가, 오논다가, 모호크)으로부터는 동의를 얻어내지만, 나머지 2개 부족(오네이다, 투스카로라)은 결국 미국식민지 편에 붙게 된다. 원래 이로쿼아 연맹의 의사결정 원칙은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절충점을 찾는 것이었는데, 이 회의 후 이로쿼아 연맹의 합의전통은 깨지고 연맹 부족간에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 된다.
이러한 이로쿼아 연맹의 상황은 19세기 말 조선시대를 떠오르게 했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의 세력다툼 속에서 자주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와 손잡을지를 놓고 벌어지는 내부 갈등의 상황이 그러하다. 이로쿼아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에서, 그 다음에는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그리고 다시 영국과 미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했다. 하지만, 결국 운명은 이들이 어떤 결정을 하는가와 상관없이 주변 열강들간의 싸움과 절충의 결과로 결정된다.
전쟁 초기에 영국군과 인디언 연합군은 뉴욕주 북부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성공적인 공세를 전개하였고, 이에 미국의 조지워싱턴(George Washington) 장군은 설리번(Sullivan) 장군에게 대병력을 맡겨 이로쿼아 지역을 평정할 것을 명령한다. ‘모든 마을을 초토화하여 이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도록 하라’는 것이 당시 워싱턴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뉴타운에서 설리번 장군의 병력이 영국과 인디언 연합군을 격파함으로써 이 작전은 차질없이 완수된다.
살고 있던 마을, 경작지와 비축한 식량이 모두 불타버리면서, 많은 이로쿼아 연맹 부족민들은 영국 통치하에 있던 캐나다로 도피해야 했고, 남아있던 부족들의 경우 수 차례의 조약을 통해 대폭 축소된 뉴욕주 내의 보호구역에 머물다가 위스콘신이나 오클라호마 같은 먼 지역의 보호구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다음 방문지는 세네카(Seneca) 이로쿼아 뮤지엄이다. 세네카는 이로쿼아 연맹 5개 부족 중 가장 서쪽에 위치했던 부족이니(닉네임도 ‘서쪽 문을 지키는 부족’이다),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로쿼아 인디언연맹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부족이다. ‘지금 세네카 네이션(Seneca Nation)에 들어왔다’는 안내판과 함께 이정표, 교통 표지판이 영어와 세네카말로 동시에 표기되기 시작한다. 이전에 나바호 네이션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day 6).
뮤지엄의 전시내용은 이로쿼아 연맹 및 세네카 부족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좀 더 심도 깊은 자료를 기대했던 것에 비해 아쉬운 감이 있다. 안내인에게 이로쿼아 연맹에 대한 역사 등을 체계적으로 소개해 주는 박물관이 따로 있는지 물어보니, 자신도 잘 모르겠단다. 우리가 관람하는 동안 찾아서 알려주겠다고 하는데, 결국 확인해 준 장소는 어제 방문했었던 이로쿼아 인디언 박물관이다.
결국 6개 부족 연맹체로서의 이로쿼아는, 각 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린 이후에는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아버렸고, 이로쿼아 박물관 같은 것을 운영할 수 있는 주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 같아 많이 씁쓸하다. 한 때는 13개 주가 연합하여 탄생한 신생국가 미국의 정치체제 시스템 설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던 존재였었는데....
그런데 박물관 전시물 중에서 확인하게 된 한가지 특이한 사안이 있었는데, 라크로스(Lacrosse)와 관련한 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인데, 막대기 끝에 그물이 달린 채를 이용하여 공을 잡고 패스하거나 던져서 골에 집어 넣는 경기이다. 미국에서는 학교 스포츠로 활성화되어 있는데, 이 스포츠가 인디언들의 운동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로쿼아 연맹부족민들 사이에서도 라크로스는 인기이고 선수들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근래 들어 국제경기에 이로쿼아 연맹의 이름으로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해당 운동의 원조임을 감안한 국제사회의 배려로 보인다.
라크로스 세계 선수권대회에 이로쿼아내이션 이름으로 깃발을 달고 참여하는 이로쿼아 연맹 대표선수들
1980년대에 이로쿼아네이션(Iroquois Nation)이 공식적으로 설립(엄밀히 말하면 선언)된 이후, 선수들은 이로쿼아네이션에서 발행한 여권을 이용해서 해외 여행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영국에서 개최된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러 갔을 때, 영국이 이로쿼아네이션 여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통보함으로써 입국이 무산되었던 상황을 박물관 전시물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20년간 국제경기 참가시 입국이 허용되었던 아로쿼아 여권이 2010년 영국 대회때 거부되었던 사건 관련 전시물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최근에 이스라엘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경기 시작 몇 시간 전에야 승인이 나서 입국할 수 있었단다. 그럼에도 동메달을 땄다고 하니 이들의 실력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딸 아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라크로스팀에서 활동해서 나도 여러 차례 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 내게는 관전하기에 그다지 흥미진진한 스포츠는 아니었다.
미국 내에서 인디언 자치권의 범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영국 및 이를 승계한 미국이 이들 부족과 각종 조약으로 영토 및 보상문제를 해결했다는 면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국가로 인정을 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디언 부족들의 모든 자치권은 연방정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행사가 가능하다는 면에서, 나는 인디언 네이션의 위상을 미국의 50개 주와 동등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체적인 여권으로 해외 여행을 한다는 새로운 뉴스를 접하니 인디언네이션 자치권의 범위에 대해 궁금해진다.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이들 이로쿼아 연맹 공동체는 이미 1923년부터 여권을 발행해 오고 있었고, 제 1,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을 상대로 선전포고도 한 적이 있었다. 독자적인 주권국가로서의 행위를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미국정부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에 한해서만 인정된 것으로 보이며, 지금까지는 미국 정부가 우려할 만한 사항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로쿼아 연맹의 다른 부족들은 대다수가 캐나다로 쫓겨나거나(모호크족), 위스콘신주에 영토를 확보하여 이주하거나(오네이다족), 혹은 반강제적으로 오클라호마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게 되고, 남아 있던 부족민들도 미국인들에게 보호구역 땅의 대부분을 헐값에 매각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세네카족의 경우, 부족 영토를 빼앗기게 된 각종 조약의 부당함에 대한 소송에서 승리하면서 일부 영토를 되찾아 지금의 보호구역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뉴욕주 북부를 여행하면서 세네카 네이션만 표지판에 등장하는 이유가 이해되는 장면이다.
박물관의 모든 안내자료는 세네카 언어가 우선, 영어가 나중에 적혀 있다. 안내인은 많은 세네카 부족민들이 아직 세네카 말을 쓰고 있으며, 6개 부족연맹의 언어들은 서로 유사한 단어가 많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대화는 어렵고 통역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고 설명해준다. 이런 부족들끼리 수백 년 동안 전원합의제의 연맹 의사결정 체제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오늘은 서쪽으로 이동해서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Cleveland)로 진입했다. 이곳 야구팀 이름이 인디언(Indians)이다! 추신수 선수가 처음 뛰었던 팀이기도 하다.원래 예정했던 몇 개의 방문을 취소하고 나니 여유가 좀 생겨서 내일은 클리블랜드를 좀 둘러보고 서쪽의 톨리도(Toledo)로 이동해서 묵을 예정이다.
오하이오 지역은 미국이 독립전쟁(1775-1783)에서 승리하여 독립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인디언 부족 땅에 대한 착취가 전개된 곳이다. 그리고 그 결과, 1812년에 영국과 미국간 전쟁이 또 다시 벌어지자, 인디언 부족들이 대거 영국군과 연합하여 전투를 벌인다. 유명한 인디언 전사 테쿰셰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내일이 아빠 생일이라고 딸 아이가 저녁 먹을 장소를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고민을 많이 한다. 톨리도가 특별한 관광지도 아니고 대도시도 아니라 뭔가 애매 하단다. 게다가 범죄 발생율도 높은 도시라고. 여행을 계획하면서 생일날 어디서 지낼지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사랑하고 축하해 주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즐겁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