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밭골샌님 May 18. 2024

골목길 야생화 39 돌나물

돌에서도 황금빛 꽃을 피우는 생명력의 화신


굳이 산에 오르거나 들로 나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야생화가 널려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어딘가로부터 이동해 온 것도 있고, 사람 손에 이끌려 화단에 심어진 것도 있고, 그러다가 내팽개쳐진 것도 있습니다.


우리 동네 어귀의 골목길과 이웃 동네 산책길, 근처의 작은 공원만 해도 매년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의외로 많습니다.

잡초  취급을 받아 순식간에 제거되기도 하지만, 언제 그런 재난을 당했나 싶게 굳건히 자리를 지키지요.


서양민들레, 괭이밥, 씀바귀, 고들빼기, 꽃마리, 별꽃, 애기똥풀은 무리 지어 피어 있고요. 제비꽃, 꿩의밥, 할미꽃, 지칭개, 갈퀴나물, 살갈퀴, 얼치기완두, 긴병꽃풀, 개망초, 점나도나물, 토끼풀, 벼룩이자리, 콩다닥냉이, 메꽃, 깽깽이풀, 금낭화, 돌단풍, 끈끈이대나물ᆢ.

그 밖에 이름 모르는 풀들, 그리하여 오고 갈 때마다 이름을 부를 수 없어 답답한 친구들이 상당수 있어요. 개인 주택과 빌라, 아파트로 이루어진 평범한 도심 한적한 동네인데도 말이지요.

오늘 주인공은 '돌나물'입니다.
황금빛 별들이 초록색 잎들과 어울려 힘찬 기운을 내뿜고 있어요.
이른 봄 우리의 입맛을 돋워주는 돌나물은 생명력 하나만큼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해요.


생명력으로 따지면 으뜸인 돌나물.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이 밭을 이뤘나 싶게 화사한 꽃이 무리지어 핀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다가 다듬고 남은 자투리 돌나물, 화분이나 맨땅에 던져놓아 보세요. 시들시들 마르다가도  차례의 비에 모두 살아납니다. 생존율 거의 100%. 심지어 신문지에 싸 냉장고에 보관한 것 한 동안은 자라기를 멈추지 않죠. 줄기와 잎이 퉁퉁한 다육질로 수분이 많아, 어지간한 가뭄에도 말라죽않아요.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서서히 기 시작하는데, 줄기의 각 마디에서 뿌리가 나와 땅을 기며 벋어나갑니다.
이런 방식으로 번식할 수 있는데도 굳이 꽃을 피워 후손을 남기는 걸 보면, 자식 욕심이 엄청나다고 볼 수  있겠어요.


초고추장을 끼얹초무침, 겉절이, 물김치는 봄철 입맛을 돋우는 대표적인 음식이지요. 비빔밥, 샐러드, 비빔국수, 잡채, 된장국, 피자 토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습니다.

아삭거리는 식감과 돌나물만의 향긋하고 독특한 맛으로 단박에 알아볼 수 있지요.

우리 동네표 돌나물. 양지바른 곳, 습한 곳 어느곳에서나 잘 자란다. 돌담에 붙어 있는 친구들은 올라가기 보다는 내려가는 쪽이 더 좋은가 보다.

요즘은 돌나물이 인기라는군요.

생즙을 내어 먹으면 다이어트에도 좋고, 특히 회복기 환자들에게는 더없이 좋답니다. 1년 내내 재배하는 전문 농원들 덕분에 사시사철 즐길 수 있어요.


사시는 곳 가까이의 화단이나 담장 밑을 둘러보셔요.
양지바른 쪽에는 무더기로 있고, 조금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도 드문드문 자랍니다. 지금은 금빛 별들이 한창 잔치를 벌이고 있을 겁니다.


돌나물 설명 시작합니다.


학명은 세둠 사르멘토숨(Sedum sarmentosum). Sedum은 라틴어로 앉다(sedeo)에서 유래된 말, 종명 sarmentosum은 덩굴줄기를 뜻한답니다.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전국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야산의 바위틈에도 밭둑에도 습지에서도 길가에서도 잘 자라요.

15cm 정도 높이로 자라면 바로 서지 않고 땅 위로 길게 뻗어나갑니다. 땅에 닿은 마디마디에서 뿌리를 내려 번식해요.
줄기와 잎 전체가 다육질. 물기가 많고 통통히 살진 잎의 촉감은 매우 부드럽지요.



수술 머리에 있는 꽃밥이 처음의노란색에서 갈색, 다음으로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래도 아름답다.

늦봄인 5월에 개화하여 6월까지 내내 꽃을 피웁니다. 별 모양의 노란 꽃이 무리를 이뤄, 앞서 보았던 '별꽃'과는 또 다른 화사한 별밭을 연출해 내지요.
꽃받침과 꽃잎이 각각 5개라 별 모양인데요. 꽃은 끝이 뾰족한 피침형, 꽃잎 사이사이로 짧은 꽃받침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수술은 10개, 암술은 5개. 수술대는 길게 위로 뻗어요. 끝 부위에 붙어 있는 노란 꽃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검게 변합니다.

처음 필 때의 화사한 노란색도 좋고, 시간이 지나 꽃밥이 검은색으로 변해도 노란색 꽃잎과 대비를 이뤄 아름답습니다.

처음 필 때의 화사한 노란색도 좋고, 시간이 지나 꽃밥이 갈색으로 변해도 아름답다.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지역에 따라 돈나물, 돗나물, 돋나물, 돈내이로 불렸고요.

한자로는 석상채, 석지갑, 석지초, 수분초, 와경경천(臥莖景天), 석련화(石蓮花), 화건초(火建草), 토삼칠(土三七)이라고도 합니다.
석상채(石上菜) ‘돌 위에 자라는 채소’라는 뜻이죠?  돌 위에서 자라 우리말 이름도 돌나물.


불갑초(佛甲草)라고도 불리는데요.

어느 절에 목이 없는 불상인 무두불(無頭佛)이 쓰러진 채 버려져 있었대요. 그렇게 버려진 불상을 돌나물이 온통 노란 꽃으로 덮어, 금빛 갑옷을 입은 부처님으로 만들었답니다.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펼친 조선시대 때 이야기라고 전해지는데요.

이보다 훨씬 앞선 840년 무렵, 중국의 당나라 무종(武宗)이 도교를 숭상해 불교를 탄압했을 때의 이야기라는 게 정설로 보입니다.


화분에 심어 매달아 놓으면 밑으로 길게 늘어지면서 자라요. 한자로 수분초(垂盆草)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줄기가 아래로 늘어져 있다. 수분초, 현수화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말린 것을 석지갑(石指甲) 또는 석지초(石指草)라고 해요. 피를 맑게 하고 염증을 완화시, 해독제로 사용한답니다.

편도선염, 간염, 소변 곤란과 화상, 벌레나 뱀에 물린 데도 처방한답니다.


비타민C가 풍부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는 칼슘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갱년기 여성들에게 적합한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답니다.

달래, 냉이와 함께 봄철 3대 나물로 꼽는 분도 있더군요.


꽃말은 '근면'.


■ 동네 골목길에서조차 이름 모를 과 나무가 많다고 서두에서 말씀드렸는데요.

'아는 것''모르는 것', '안다고 한다''모른다고 한다'의 차이를 통해,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을 분별한 동서양 철학의 대가들이 있습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먼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여건이 허락하면, 윗글을 큰 소리로 읽어보십시오.

제비가 지지배배 우는 듯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아는 것을 '안다'라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용감하고 직선적인 인물로  정치에 능한 자로(子路)에게 훈계한 말씀이지요.


제가 골목길에서조차 이름 모르는 꽃이나 나무가 많다고 고백한 변명으로 이해해 주셔요. 실제로 모르는 걸 아는 척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우리 산과 들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가 5천 종쯤 된대요. 그 모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사람? 거의 없을 겁니다. 600종 안팎의 나무 역시 그 이름을 죄다 알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모르는 걸 모른다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울 이유는 없다는 거죠.


변명도 길어지면 좀 지루하죠?

가벼운 화제로 넘어갈게요.

우리나라 속담에 '제비도 <논어>를 읽고, 개구리도 <맹자>를 읽는다'는 말이 있답니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앞서 본 이 구절이 특히나 제비 지저귀는 것처럼 들린다고 해서요.


독락악, 여인락악, 숙락(獨樂樂, 樂樂, 孰樂),

이 구절은 개구리 우는 소리 같다는 거죠.

'홀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과,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거운가요?'

<맹자> 양혜왕장 하편에 나옵니다.


공자와 비슷한 시대인 고대 그리스에서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뭐라고 했지요?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의 오리지널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앞마당 입구, 돌기둥에 새겨져 있었답니다.

청년 시절,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신에게 물으러 가던 중 만난 글귀였지요.


그는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라는 신탁을 전해 듣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 여러 현자들을 찾아다녔지요. 하지만 매번 실망합니다. 지혜로운 자를 찾지 못한 끝에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자', 즉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인용한 까닭은 사람의 지혜가 보잘것없으니 겸손해야 하며,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진리를 깨닫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답니다.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진정한 앎의 시작이라는 이 알쏭달쏭한 말이 공자의 지지 위지지~와 통하지 않나요?


이토록 짧은 말이, 철학사적으로는 당시 사람들의 관심과 철학의 주제를 ‘자연’에서 ‘인간’으로 전환시킨 혁명적 메시지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네요.


■■ 맛있는 돌나물이 가지를 뻗어, 공자와 소크라테스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공자도 맛있고 소크라테스도 맛있다고 표현하면 결례가 될까요?

<맛있는 공자>를 주제로, 틈틈이 공자의 말씀을 되새겨 보는 시간 가져보리라 마음먹습니다.


4월의 바로 그날처럼, 오늘이 5월의 바로 그날이네요. 그 당시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분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족들분들께 위로를 전합니다.


2024년 5월 18일









작가의 이전글 골목길 야생화 38 쉬어가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