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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Oct 10. 2024

골목길 야생화 60 수크령

고사성어 '결초보은' 주인공의 수컷


수크령

한자도 많고 글도 길어요.



오늘은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로 시작합니다.
고사성어는 옛이야기에서 유래한, 한자로 이루어진 말. 대부분 네 글자로 된 게 많아 사자성어(四字成語)라고도 하지요.

결초보은(結草報恩:  맺을 결, 풀 초, 갚을 보, 은혜 은).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뜻인데요.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여기에는 '죽은 뒤에도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보답한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춘추 시대, 진(晉) 나라에 대부(大夫) 지낸 위무자(魏武子)란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조희라는 애첩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위무자가 병에 걸렸습니다. 병석에 누운 지 얼마 안 되어 아들 과(顆)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죽거든 첩을 개가(改家: 결혼하였던 여자가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함)시키도록 하거라."
그러나 병이 아주 위독해지자 위무자는 아들을 불러 다시 유언하기를,
"내가 죽으면 새어머니도 순장(殉葬: 따라 죽을 순, 묻을 장)시키도록 해라."  
그리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났어요.

고민을 거듭하던 과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대로 자신의 서모를 순장시키지 않고, 처음의 당부에 따라 새어머니를 개가 시키기로 했습니다.


서모인 조희는 그가 아버지의 유언대로 하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아버지의 유언대로 하지 않았소?"
의 대답.
"사람은 위독해지면 정신이 흐려집니다. 저는 아버님이 정신이 맑았을 때 하신 말씀을 따른 것뿐입니다."


과는 나중에 장군이 되었습니다.
진(秦) 나라 환공(桓公) 명장 두회(杜回)를 앞세워 진(晉)나라를 공격해 왔어요.
 맞서 싸운 위과의 군대는 위기에 처했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과가 두회의 추격을 피해 있는 힘껏 도망치는데, 뒤쫓아오던 두회 군의 말들이 갑자기 풀밭에서 넘어지고 쓰러졌습니다.

달아나던 과는 되돌아가 두회를 사로잡았지요. 그리고는 그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뜻밖에도 들판풀들이 서로 묶여  올가미가 되어 있었고, 적군의 말들이 올가미에 걸려 넘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장을 사로잡아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은 물론, 크게 승리를 거두었지요.

그날 밤, 위과의 꿈속에 한 노인의 혼령나타났답니다.  
"나는 당신이 개가시켜 준 그 여자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그대가 선친의 바른 유언에 따랐기 때문에, 죽을 뻔한 내 딸이 살았소. 내가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렇게 한 것이오."
이 이야기는 <춘추좌씨전> 선공 15년에 나옵니다.


서모의 아버지가 죽은 뒤 혼령이 되어서, 전쟁터의 풀들을 그러 매어 위기에 처한 은인을 구함으로써 딸이 진 은혜를 갚았다는 게 바로 결초보은.


적장이 탄 말을 쓰러뜨릴 만큼 억센 그 풀의 정체는?

'그령'입니다.

얼핏 보아서는 너무나 연약해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옛 어른들은 풀밭에서 놀 때 친구가 발에 걸려 넘어지라고 풀들을 묶어 고리를 만들어 놓고는 숨어서 기다리기도 했다고 해요.

달구지를 끄는 소조차 이 고리에 걸리면 고꾸라질 정도로 억세고 질기답니다.


결초보은의 주인공 그령. 길을 따라 자란다. 사진 앞쪽은 그러매어 올가미를 만든 모습. 사람은 물론 소나 말도 걸리면 앞으로 고꾸라진다.


서두가 길었지요?

사실, 오늘 주인공은 '수크령'입니다.  

앞의 고사성어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그령과는 짝을 이뤄, 항상 배우자 격으로 함께 거론되는 풀입니다.


벼과 수크령속의 여러해살이풀.

우리가 잘 아는 강아지풀처럼 생겼지만, 모든 면에서 몇 배는 크고 건장하고 씩씩하게 생겼습니다.


'그령'은 두 끝을 당기어 맨다는 ‘그러 매다’에서 유래되었대요.

같은 의미의 북한 사투리 '그렁이'가 변해서 그령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어명은 Korean Lovegrass.


수크령은 그령보다 잎이 훨씬 크고 날카롭고 억세고 질겨요.

수컷의 이미지죠?

그래서 숫그령, 수크령이 되었다고 해요. 본래 그령은 암크령이라고도 부르지요.


그령은 그러 매어 놓아도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가는 데 비해 수크령은 크고 억세고 거칠어요.


그령은 벼과 참새그령속, 수크령은 벼과 수크령속이므로,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네요.


그령이나, 강아지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차게 생긴 수크령.


한국, 중국, 히말라야 일대에서 자랍니다.


높이 30~80cm.

뿌리줄기에서 억센 뿌리가 사방으로 퍼져요.

잎은 길이 30~60cm, 나비 9~15mm.


꽃은 8~9월에 피는데 꽃이삭은 원기둥 모양이고 검은 자주색.

작은 가지에 1개의 양성화와 수꽃. 작은 이삭은 길이 5mm 정도.

밑부분에 길이 2cm 정도의 자주색 털이 빽빽. 수술은 3개.


열매는 껍질과 씨앗이 분리되지 않는 영과(穎果).

억센 털이 있어 동물의 몸에 붙어 널리 퍼질 수 있습니다.


이삭을 둘러싼 털의 색깔이 연한 것을 청수크령, 붉은빛이 도는 것은 붉은수크령. 흰색은 흰수크령.


꽃은 8~9월에 피는데 꽃이삭은 원기둥 모양이고 검은 자주색.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학명 Pennisetum alopecuroides.L

길가에서 자란다 해서 길갱이, 이리 꼬리를 닮았다 해서 낭미초(狼尾草)라고도 불러요. 영어로는 Chinese pennisetum, Swamp foxtail grass. Fountain Grass.


꽃말은 가을의 향연, 신념, 존경.


■ 외떡잎식물인 벼목의 벼과에 속한 식물은 구분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전 세계적으벼과에는 700 속 1만 1300종이 있고요, 국내에는 105 속  300여 종이 자란답니다.

, 보리, 밀, 호밀, 수수, 옥수수, 귀리, 조, 기장과 같이 인류를 먹여 살리는 중요한 곡류 대부분이 벼과에 속하지요.

속씨식물 가운데는 5번째로 큰 과.


곡물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대나무, 갈대, 억새, 강아지풀, 비노리, 왕미꾸리광이, 겨풀, 바랭이, 왕바랭이, 줄, 조릿대풀, 우산잔디, 돌피, 조개풀, 주름조개풀, 기름새, 솔새, 쇠보리, 쇠치기풀ᆢ.


강아지풀. 쌀이나 보리 밀과 같은 곡류 이외에도 벼과에 속하는 식물들이 많다. 억새나 갈대는 물론 대나무도 벼과에 속한다.


벼과(grass family)의 일반적 특징을 네이버 두산백과를 인용해 알아봅니다.


한해살이 또는 여러해살이 초본이지만, 간혹 대나무같이 줄기가 딱딱해지기도 한다.

줄기는 둥글고 마디사이(절간:節間)는 비었으며 마디는 차 있다.

잎은 어긋나고 2열로 배열된다. 잎집(엽초:葉鞘)은 줄기를 감싸지만 한쪽이 터져 있다. 잎혀(엽설:葉舌)는 잎집과 잎몸(엽신:葉身) 사이에 있다.

꽃은 이삭 1 개에서 여러 개의 낱꽃이 작은이삭(소수화서: 小穗花序)을 이루며, 작은이삭은 수상, 총상 또는 원추화서 등으로 배열된다.

작은이삭의 밑부분은 포영(苞穎) 2개로 덮싸여 있다. 낱꽃은 외화영(外花穎) 내화영(內花穎)이 마주 싸고 있는데, 외화영에는 흔히 까락이 있다.

꽃덮이(화피:花被)는 대개 없는데, 간혹 2~3개의 인피(靭皮)로 변형되어 존재하기도 한다.

수술은 2~6개이며 아래로 늘어진다. 심피(心皮)는 2~3개이나 씨방(자방:子房)은 1실이며, 암술머리는 깃털 모양이다. 열매는 영과(穎果)이며, 겉겨(외화영과 내화영이 성숙한 외영과 내영)로 감싸여 있다.


무척 어려운 용어들이 무척 많지요?

벼과, 그리고 벼과와 비슷한 사초과(莎草科) 별도의 용어집이 필요할 만큼 까다로운 용어가 정말 많습니다.

이를 한글화 하려는 노력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는 하지만,  학문적인 용어가 일반인도 알기 쉬운 우리말로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앞의 설명 중에 굵은 글씨체로 표시한 용어를 나오는 순서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초본(草本) herb

지상부가 연하고 물기가 많아 목질(木質)을 이루지 않는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한해살이, 여러해살이 따위로 나뉜다.


절간(節間) internode, culm

마디와 마디의 사이.


엽초(葉鞘) leaf sheath

잎자루 또는 잎몸의 기부가 줄기를 감싼 것.

잎집.


엽설(葉舌) ligule

엽초의 끝에 있는 돌기. 잎혀.


엽신(葉身) amina, leaf blade

잎의 편평하고 넓은 부분으로 엽병(잎자루) 끝에 달린다. 잎몸


소수화서(小穗花序) spikelet

수상화서를 구성하고 있는 작은 화서.

* 수상화서(穗狀花序) spike

긴 화축에 꽃대가 없는 꽃이 붙는 꽃차례.


원추화서(圓錐花序) panic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져 전체적으로 원뿔모양인 꽃차례.



포영(苞穎) glume

유사용어 : 받침껍질, 벼껍질, 껍질, 

벼과 식물의 작은이삭을 밑에서 받치는 기관. 보통 2겹으로 되어 있어 제1포영, 제2포영으로 나눈다.


외화영(外穎) lemma

유사용어 : 외영.

벼과 식물의 소수를 싸고 있는 포영 바깥에 있는 것.


내화영(內穎) palea

유사용어 : 내영, 작은껍질, 속겨

벼과에서 낱꽃을 이루는 속껍질.


까락 awn

벼과 또는 사초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호영이나 포영의 주맥이 신장되어 가늘고 길게 발달된 구조물.


화피(花被) perianth

꽃의 생식기관을 둘러싸고 있는 영양기관으로 밖의 외화피(꽃받침)와 안쪽의 내화피(꽃잎)로 분화된다. 이 둘이 분화되어 있지 않을 때, 이를 구성하는 낱장을 화피편이라 한다.


인피(靭皮) bast

식물의 줄기 형성층의 바깥쪽에 남아있는 조직이다.


심피(心皮) carpel

대포자낭(배주)을 싸고 가장자리가 맞붙은 대포자엽으로 한 개의 단위. 발달한 식물에선 심피 여러 개가 모여 암술을 이룸.


영과(穎果) caryopsis

과피가 종자에서 떨어지지 않는 열매.


앞서 벼과와 비슷한 사초과(莎草科)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했지요?

세계적으로 5700 종, 국내에 318종이 있답니다.

벼과 식물 줄기의 단면이 원형인데 반해 사초과 식물은 3각형입니다.  방동사니과로 불리기도 해요.



사초과, 혹은 방동사니과의 대표인 방동사니.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후아~~~

뜻깊은 한글날, 한자투성이 글을 쓰게 되어 세종대왕님께 죄송하네요.


용어의 출처는 대부분 저의 야생화 스승이신 이명호 선생님이 정리해 공개한 <식물 외부형태 용어>입니다.


우리말로 정리한 부분은 이광만ㆍ소경자 공저 <그림으로 보는 식물용어사전> 참조했어요.


■■ 은혜 갚기, 즉 결초보은이라는 고사성어로 시작해 그령과 수크령을 소개했는데요.

은혜는 신으로부터 받는  너무나도 영광스럽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딱히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동서양 모두 은혜에 대한 명언이나 속담이 많군요.

이어령 편저 <뉴에이스 문장사전>에서 발췌해 소개합니다.


은혜를 받는 것은 자유를 파는 것이다.

- 푸블릴리우스

은혜를 베푸는 자는 그것을 감추라. 은혜를 받는 자는 그것을 남이 알게 하라.

- 세네카, <본분에 대하여>

아아 나의 아들이여, 그대 만약 부모의 은혜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대의 친우가 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부모의 은혜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친절을 베풀어도 무의함을 알기 때 문이다.
- 소크라테스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푸는 자는,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기보다도 자기를 많이 사랑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기란, 독사에 물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 W. 셰익스피어

은혜를 너무 많이 입으면 우리는 초조해지고 부채보다 더 많은 것을 갚아주고 싶다.
- B. 파스칼, <팡세)

은혜를 베푼 사람을 만나면, 곧 그 일을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을 만나서는 그것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 일일까?  
- J. W. 괴테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서 그것으로 인하여 옛날의 원한을 잊어버리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착오이다.

- 마키아벨리

인간의 성정은 소극적인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른다.

- 버나드 쇼

은혜만큼 빨리 늙어 버리는 것은 없다

- 메난드로스

은혜는 말을 하면 매력이 사라진다.

- P. 코르네이유, <테오도르>


■■■ 너무나 긴 글, 용서 바랍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소개하느라 힘들었어요.

수크령이 가까이에 있지 않아 골목길 벗어난 곳을 다녀오기도 했고, 어려운 설명과 용어를 조사하고 정리하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류가 발견되는 대로 수정하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때때로 숲으로 들어가 나무와 풀과 꽃과 더불어 물장구치듯 몸과 마음을 말끔히 씻어내는 것, 그것이 진정 좋은 휴식 방법이다."
- 튜 에들런드, <휴식> 중에서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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