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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러기퐝 Oct 26. 2020

짧은 검찰 조사의 추억

서초옥2

<비밀의 숲 화면 캡처>


  국회를 출입하다가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로 된 지 일주일여 흘렀을 때이니 2017년 7월의 일이다. 서울남부지검 모 검사에게 전화가 왔다.

  “OO일보 OOO 기자님이시죠?”

  업계에서 얘기하는 ‘지검반장(서울중앙지검의 반장, 검찰 출입 기자의 리더격)’인데도 검찰 전화는 덜컥 겁이 났다. 소환조사를 통보하면 어떡하지, 기억 못 하는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나조차 이럴 진데 일반인들은 어떨까 싶었다. 다행히 참고인 조사였다. 검사는 나에게 몇 가지 확인만 하고 중간에 참고인 진술에 들어갈 녹취를 하겠다고 하고 내 이야기를 들은 뒤 10분 만에 끊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검찰에서 전화가 걸려온 이유는 이러했다.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나흘 앞둔 5월 5일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아들 문준용 씨의 취업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준용 씨가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고용정보원에 입사했다가 이후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에 입학을 했는데 고용정보원 입사 당시 문 후보의 지시로 입사원서를 냈다는 것이었다. 국민의당 캠프에서는 그 근거로 준용 씨의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동료의 증언 음성 파일을 공개했고 이 음성 파일에는 이 동료가 준용 씨에게 들은 전언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이날 국민의당은 준용 씨의 동료 녹취록을 제시했을 뿐 제보자를 회견장에 데려오기는커녕 실명을 대거나 동료의 연락처 등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대변인실에서는 기자단에서 대표 한 두 명을 뽑아 제보자의 e메일 주소로 컨텍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e메일 주소를 받았고 주소를 토대로 구글과 페이스북을 검색해본 결과 파슨스디자인스쿨에 다닌 것으로 보이는 이가 검색은 됐다. 두 차례 e메일을 보냈으나 답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준용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녹취 속 동료를 부인했고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검찰 고소로 이어졌다. 나는 솔직히 이 때까지만 해도 이 의혹을 사실로 믿고 대선 이후에도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빙성이 있다고 여겼다. 국민의당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선 이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6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당은 자체 조사 결과 제보 조작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당원 이모 씨 등 2명은 구속됐고 안철수 전 대표는 대국민사과를 했다.

  나는 이 같은 제보를 4월 초에 국민의당 관계자 A 씨로부터 전해 들었다. 같이 확인해보자는 취지기도 했고 주변을 수소문했지만 의혹만 있었을 뿐 팩트는 확인되지 않았다. A 씨는 정황상 확신을 갖고 얘기했다. 한 달 뒤 결국 국민의당은 준용 씨의 동료 제보를 근거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대선에 임박하면서 지지율이 추락한 국민의당 캠프에선 절박함이 있었지만 공당(公黨)에서 제보를 조작했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허위였지만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제기해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끼쳤던 김대업 병풍 사건처럼 ‘일단 이기고 보자’는 농담만 있었을 뿐.


  검찰에서 나에게 전화를 건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가장 큰 궁금증은 허위로 판명날 내용을 언론이 어떻게 검증 없이 기사를 썼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경찰서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 그 사실을 기사에 쓰듯이 신뢰도가 있는 공당, 대선 후보 캠프의 기자회견과 의혹 제기는 통상 그대로 기사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물론 기자들은 정부부처나 경찰 발표의 경우에도 합리적 의심을 품고 비판적으로 보고 추후 추적이나 검증을 통해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당시엔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소름이 돋았던 것은 역시 내가 제보자에게 두 차례 e메일을 보낸 것, 그리고 A 씨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들에 대해 검사는 그들의 계정 압수수색을 통해 다 알고 있었다. 나도 궁금한 것을 물었다. 당시 4명의 기자가 제보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고 검사는 말했다. 그 e메일 주소가 피의자가 만든 것이었는지 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재판과정에서도 법원에서 나도 증인으로 채택됐다고 검찰청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나 구설수에 오를까봐 가급적 불출석할 생각이었다. 선고일이 가까워오자 또 다른 검사가 연락이 와서 증인 출석하지 않으면 구인장을 발부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다행히 다른 기자가 출석해서 증언을 했고 재판부는 더 이상의 증인이 필요 없다고 여겨 증인 출석을 취소했다. 이후 법원은 이모 씨 등에게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로 징역 1년 등을 선고했고 관련자들에게도 징역형과 벌금형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내게 상당한 충격을 줬다. 내가 당시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크게 의심하지 않았던 것도 후회스러웠다. 결국 그 기사는 의혹제기에 이용당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추정이나 명제만 갖고 팩트없이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있었다. 씁쓸한 대선이었고 씁쓸한 제3정당의 몰락이었다. 취재원을 짝사랑해선 안 된다는 선배의 조언이 생각났다.

  검찰을 출입하면서 피의자 조사를 받은 저 철제 의자에 앉는 일만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몰랐던 사실에, 혹은 의식적으로 모르고 싶어했던 사실에, 자신이 무너져버리는 그런 순간을 경험하는 일만 없어도 다행이리라. 다행히 아직까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된 적은 물론 정식 조사나 재판을 받은 적은 없다. 때로 어느 기자들은 ‘훈장’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홈런 치려다 병살타가 되지 않고 평타만 쳤어도 다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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