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러기퐝 Oct 23. 2020

검사가 부러웠던 이유

서초옥1


  “칼로 찌르되 비틀지 말라”
  한 검찰 간부가 선배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며 해줬던 얘기다. 말 그대로 형사사법권을 사용하더라도 아프게, 원한을 사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펜으로 사회적 살인, 명예 살인을 할 수도 있는 기자가 “함부로 펜대를 놀려서는 안 된다”는 말과 유사하다.
  법조팀에 배정돼 검사들을 만나면서 참 비슷한 직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진실을 추구하고, 누구에게나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특권이 있다는 점이다. 검사들도 기자들만큼이나 많이 물어본다. 조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서 전문지식이 필요할 때 교수 등 자문을 많이 받는 것이다. 기존 판례나 수사, 재판 기록 등 읽어야 하는 것도 많다. 기자가 취재원을 만나서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고 코멘트를 받는 것처럼.
  부러웠던 것은 기자는 강제로 할 수 없어 많은 취재원들에게 수차례 취재를 거절당하지만 검사와 판사는 강제로 공권력으로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판사 앞에서는 증인선서에 따라 위증죄로 처벌받기 때문에 진실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문이 가까이에 있다.
  법조팀 기자를 하면서 가장 도움이 됐던 것 중 하나가 법조계에서만 알 수 있는 팩트들과 뒷얘기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검사와 판사들은 진실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기관들이기 때문.
  특히 검찰은 조직적으로도 피라미드 형태인 편집국(방송은 보도국)과 비슷했다. 그 중 하나가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다. 나는 언론계도 편집동일체의 원칙, 보도동일체의 원칙이 있다고 여긴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란 수사검사의 기소 결정은 수사검사와 부장검사 등은 물론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검찰권이기 때문에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검사가 누구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명하복의 원칙과 문화가 자리 잡았다. 실제 검찰청법도 2003년 개정돼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상명하복)’는 검찰청법 제7조 1항이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르도록 한다’로 바뀌었다.
  기사도 ‘바이라인’이 있는 현장 기자가 쓰는 게 기본이지만 사실 차장의 1차 데스킹, 부장의 2차 데스킹을 거치면서 글은 많이 수정된다. 이른바 게이트 키핑 과정을 거치면서 팩트에 대한 확인은 물론 기사의 단어와 문장도 고쳐진다.
  기사를 쓸지 말지 여부도 취재기자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아침 기자들이 발제한 내용을 토대로 편집국 각 부서 부장들이 회의를 거쳐 기사를 쓸지 말지 판단하고 회의 내용을 토대로 어느 방향으로 취재를 더 해서 어떤 팩트를 추가할지 등 기사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동일체의 원칙이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표현하면 기사는 회사 전체의 편집방향과 논조에 부합할 수밖에 없다. 다만 기사를 쓰는 편집국과 사설과 칼럼을 쓰는 논설위원실은 분리된 국·실이어서 약간의 차이는 생길 수 있다. 개별 칼럼 필자들의 개인적인 의견도 존중돼야 하기 때문에 칼럼은 좀 더 자율성이 있다. 하지만 사설과 기사가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은 독자들에게도 혼선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상명하복 문화가 기자사회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기자 개인의 시각과 구성원들의 차이가 클 경우 자기가 쓰고 싶은 기사는 ‘기사가 안 된다’는 데스크의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 관점의 차이도, 기사 가치에 대한 판단도 다를 수밖에 없다. 초년병 시절 겪는 기자들이 자주 갖게 되는 회의와 자조는 “내 이름 달린 기사가 내가 쓴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기본적으로 나보다 뛰어난,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판단을 존중하고자 했다.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굵어지니 이런 일이 생길 땐 점점 반항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 전문영역이 아니면 납득할 수밖에 없고, 좀 더 선배들 의견에 따르고자 했다.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 있으니까. 때문에 서로 토론하고 소통하는 문화는 중요했다. 토론을 통해, 또는 전문가 의견이나 취재된 팩트를 통해 반대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 서로 이견을 조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자가 쓴 기사는 각 부서 데스크를 거쳐 어문연구팀과 심의팀 등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편집국장 등의 독회를 거쳐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수사팀장이 누구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수사검사들 간의 의견을 교환하고 각 수사검사들이 모은 팩트들로 전체 퍼즐을 맞춰간다. 기소여부를 결정할 때도 수사팀 내에서, 그리고 차장검사, 검사장, 대검 간부, 검찰총장 등까지 수사기록 검토를 통해 최종 기소 여부를 판단한다.   

  구성원끼리 일이 끝나면 폭탄주를 돌려가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회식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생긴 문화라고 본다. 평소에 쉽게 하지 못한 이야기나 불만 등을 털어내는 뒤풀이 시간이 아닐지.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검사들은 같이 일한 적이 있는 선후배들 간에 잘 뭉치고 의리를 따지는 편이다. 특히 지방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그들끼리 어울리는 시간도 많다. 검찰 내에서 ‘근무연’이라고 부르는 인연인데 기자들보다도 더 셀 수밖에 없다. ‘OOO사단’이니 하는 것도 주로 근무연이 작용한다.
  통상 중앙지검 반장인 나와 2, 3, 4진 기자 후배들과 중앙지검 부장검사, 부부장, 평검사 2명 등 이런 식으로 4 대 4 숫자를 맞춰서 회식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회식자리에서 보면 기자 조직보다 검찰 조직이 더 상명하복 문화가 세다고 느꼈다. 사시를 패스한 머리를 쓰는지 상사에 대한 칭찬도 화려했다. 그것도 사회생활하는 능력이긴 해보였다.
  그러나 언론사도 검찰도 이젠 내부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회식자리도 뜸해지고 사내 회식을 하자고 하면 꼰대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늘었다. 요즘엔 ‘검언유착’이니 뭐니 해서 각 팀간 회식도 많지 않다고 한다. 취재환경은 갈수록 악화되는 것 같다. 취재를 위해 취재원과 관계를 깊게, 오래 가지는 게 기자들의 일인데 마냥 ‘유착’ 프레임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영화 '내부자들' 같은 혹은 언론과 검찰, 권력 등을 유착을 묘사한 내용은 21세기 현실과 거리가 있는 창물 속 이야기다. 이미 우리 사회는 많이 투명해졌고 묵묵하게 하루를 사는 구성원들이 더 많은 게 언론과 검찰 사람들이다.


이전 11화 무림고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