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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러기퐝 Oct 25. 2020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년병5

                                 <나도 잊어버렸지만 예전엔 이렇게 신문에도 영화 광고가 많이 실렸다.>


  단 1명의 무고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8명의 희생되는 이 영화. 이 영화를 본 지 20년 가까이 됐으므로 세부 줄거리는 잘 기억날리 없다. 벤담과 같은 공리주의자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칙이 유일무이했다면 이 같은 작전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 어땠는지 여론이 어땠는지 등 외부적인 변수가 결정됐을 것이고 8명이 희생될 줄 알았다면 없었던 작전이 됐을 수도 모른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온 도덕적 딜레마처럼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의 기관사가 운전 중에 뒤늦게 철로 위에 있는 인부 다섯 명이 발견하고 그 길을 기대로 갈지 아니면 그 옆 비상철로 위에 있는 인부 한 명이 죽더라도 비상철로로 틀어야 할지. 다른 변수나 상황을 제외한다면 선택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어쨌거나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릴 때, 나는 그래서 8명을 죽이더라도 1명은 살렸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숱하게 활자화된 내 자식 같은 기사 중에 누군가 1명의 인생에 도움은 됐는가. 자문할 때마다 나는 다행히 내 마음의 보석같은 윤 군의 이름을 떠올린다.

   2016년 9월 어느 날 밤. 그때 나는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기레기라는 인식이 퍼져있었고 통과된 김영란법은 마치 우리를 범법자 취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일이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는커녕 ‘기레기’라 불리고, 최근 영화들에선 보다가 얼굴이 불거질 정도로 부정적으로 묘사가 되지 않았던가. 스스로 ‘슬럼프’라고 여겼다.

  비 오는 탓인지 잘 잡히지 않는 택시를 겨우 타고 내마음의 통금인 11시 이전에 도착.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고, 딸아이만 잠시 잠들기 직전 문소리에 잠을 깨 아빠의 얼굴을 보고 다시 들어갔을 뿐.

  국정감사 시즌인데 어쩌다보니 뿌려놓은 씨가 없어서 흉작 신세. 여기 저기 구걸을 해보아도 이번 따라 지인들도 자료가 없다. 기사 압박으로 인해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기사들도 찾아보고 옛날에 썼던 국감 기사들도 생각해보다 자정이 훌쩍 넘었다. 2년 전 썼던 기사의 원자료를 확인해보려고 이메일을 검색해보는데 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이메일에 잊혀진 기사가 하나 링크돼있었다. 2009년 8월에 쓴 기사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가유공자 자녀라는 이유로 ‘국가귀공자’라는 손가락질도 받았고, 학교에서도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그런 혜택을 안 받고 아버지께서 건강하셨으면 더 좋겠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A 씨(22)는 보훈대상자 지원을 위해 만든 고용의무제를 국가기관이 외면하고 있다는 내용의 본보 기사를 읽고 기자에게 16일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군복무 중 작전을 수행하다가 총이 격발돼 복부 부위를 다쳐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이후 아버지는 작은 식당 등을 운영했지만 빚을 져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고, 빚 때문에 어머니와도 법적으로 이혼해야 했다. 군대 후유증과 사업 실패 등으로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에 빠져 최근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까지 이르렀다.

  A 씨 가족이 국가에서 받는 돈은 월 70만∼100만 원이지만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대부금을 갚고 나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30만∼40만 원뿐. 실질적인 가장인 그는 기능직 공무원직에 지원했지만 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관련법에 따르면 기능직의 정원이 5명 이상인 국가기관은 기능직 공무원 가운데 보훈대상자나 그 가족을 10% 이상 뽑아야 하지만 이를 잘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

  그는 “막상 취업할 때가 돼서 거주지 관할 보훈청에 기능직 특별채용 신청을 했는데 1년 가까이 기다려도 아무 답이 없었다. 내가 아쉬운 처지이니까 자꾸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지만 기존에 있던 사람이 나가야 자리가 생긴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올 5월 보훈청에서 교육청 기능직에 추천해줬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며 “보훈청 쪽에도 여러 차례 나의 어려운 사정을 하소연했지만 ‘우리도 권력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알선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해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년제 기능대학을 올해 2월 졸업했지만 현재 학력을 높이기 위해 사이버대학에 등록했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시청에서 공공근로를 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이달 말이면 계약기간이 끝나 당장 생계가 막막한 실정이다.

  A 씨는 “사람들은 국가유공자들이 큰 혜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가유공자에 대한 가산점도 10점에서 5점으로 낮아지는 등 국가유공자 혜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솔직히 이제는 아버지가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고 원망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며 울먹였다.


  “OOO 기자님. 저는 위 기사의 주인공 윤OO입니다. 너무 너무.. 너무나도 늦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저는 그때의 일 이후로 LG에 입사하게되어 경기도 오산 LG이노텍에 현재 생산직 사원으로 5년째 근무 중입니다. 아쉬운 사람으로써 그때 당시 너무나 절박했고, 또한 어려웠습니다만. 이제 제 나이가 무려 서른살 지금은 형편이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고 우연찮게 옛 기사를 훑어보던 중 기자님과 제 사연이 들어있는 페이지를 열람하게 되어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 고개숙여 올립니다. 투고 이후 저는 신문들고 보훈지청에 갔고 그 당시 발칵 뒤집혔더군요. 여러 많은 분들의 도움없이는 특히 기자님의 도움없이는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의 인사 못난놈 올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그때의 도움으로 여럿 보훈대상자들이 은혜입은 점 알고 있습니다. 야간근무 중 메일 발송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향후 형편껏 어려운 분들을 위해 돕고 살겠으며, 제가 타성에 젖을 때 마다 기사를 수백번 읽으며 그때의 굶주렸던 시절을 회상하며 반성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윤OO 올림”


  사회부 기자 시절에 의원실 자료로 보훈처의무고용비율을 정부기관들조차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다는 기사를 쓴 뒤 윤 군이 보낸 메일을 받고 후속 기사 형식으로 쓴 게 위 기사였다. 다만 이 윤모 군의 어떻게 됐는지는 몰랐었다.

  솔직히 그날 눈물이 날 뻔했다. 과분한 감사에 오히려 내게 울림을 줬다. 내가 타성에서 벗어날 수 없던 날...7년만의 편지에 치유를 받은 건  나였다.


  나를 포함해 많은 기자들이 이 업을 계속하는 건 기자라는 직업이 나라를 구하는 슈퍼맨은 아닐지라도, 때론 수천명의 부대원이나 분대원은 아니더라도, 형제 5명 중 4명을 잃고 입대한 막내 라이언 일병을 구할 수 있고 누군가 한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되거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글을 쓰며 휴머니즘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비록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대신 양심과 신념이 없다고 비판을 받고 기레기라는 조롱을 당하고 오랜 친구와 굳은 머리 등 8명 개 이상의 목숨은 잃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망정 내 인생기사는 이것이 1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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