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초년병 시절. 나의 사수였던 A 선배와 잠시 같은 출입처 1, 2진으로 같은 기자실을 출입한 적이 있다. 그는 단독 기사를 출고한 다음날 아침엔 일찍 출근했다. 아침 7시 무렵 출근했다고 하길래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자신의 기사가 나간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기자실에 출근했을 때 다른 기자들이 회사 데스크의 전화를 받으면서 깨지는 소리를 들을 때 빙긋 웃는다고 했다. A 선배는 “기자는 매저키스트여야 한다”며 씩 웃었다.
그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지 않았다. 변태도 아니고 남이 괴로워하는 걸 보며 즐긴다니! 단독 기사를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잇다. 이후 단독 기사를 쓰고 난 날 나름 뿌듯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술이 땡기기는 한다.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A 선배 말처럼 미운 기자가 괴로워하는 걸 보면, 이해는 갔다.
하지만 점점 단독 기사를 쓴 날엔 오히려 기자실에 못 나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한 동료, 안면이 있는 기자들이 괴로워하는 게 그닥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물먹은 날,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 때문이다. 눈에 밟혀서 오히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천천히 기자실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대신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진다. 같은 내용의 기사가 타지에 나온 것은 아닌지, 혹시 기사에 문제가 있어서 관련 기관이나 관련자들에게 항의 전화가 오지는 않는지 긴장되기 때문이다. 예전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할 때 나는 ‘테란’ 종족을 자주 선택했다. 거기에서 가장 큰 무기인 핵무기시설을 설치한 뒤 고스트로 타깃을 설정해놓고나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핵무기가 무사히 명중할 때까지 긴장이 되다가 빵 터지고 날 때의 쾌감은 컸다. 단독 기사거리를 얻었을 때 비슷한 긴장감과 쾌감이 있었다. 심장이 뛰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기자질을 하기엔 심약한거 같다.
실제 나를 아꼈던 선배들이 자주해준 조언 중 하나가 “사람이 좋다고 좋은 기자가 아니다” “독해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실제 그런 조언을 했던 B, C 선배들은 나랑 다른 부류였다. 강심장에 독한 측면이 있었다. 후배들에게도 엄했고 끈질겼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따라갈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 식대로 기자질을 하기로 했다. 나는 강심장이 아니고 심약했고,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웠고, 끈질기진 않았지만 부지런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기자의 정형화된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다.
무림엔 고수가 많다. 하지만 각자의 권법과 비기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그걸 바탕으로 각자의 무술을 펼친다.
첫째 지사파가 있다. 이들은 선비정신이 뚜렷하다. 꼬장꼬장하게 훈계를 하려고 한다. 절대로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식의 합리화가 없고 관행을 납득하지 않는다. 존경스러운 기자들이다. 큰 그림을 그리고 국가어젠더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무7조 같은 쓴소리를 하는 조선시대 선비 스타일이다.
둘째, 수사파가 있다. 자기가 형사나 검사쯤으로 생각한다.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비리를 파헤치는 게 기자의 본연의 업무라고 생각한다. 입을 닫은 취재원이 입을 열 때, 특종기사로 누군가 처벌받는, ‘내 기사로 고위공무원, 정치인 등이 날아갔다’는 말을 하고 싶어한다.
셋째, 작가파가 있다. 글을 쓰는데서 자기 만족을 느끼는, 자기 문장과 표현에 심취해서 사는 기자들이다. 문학을 좋아하고 작가들과 교류하는 걸 즐긴다. 어두운 사회 현실, 비리를 캐고 폭로하는 것보다는 미담으로 세상이 아름다워보이게 하고 싶은 인간형이다.
넷째, 영업파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흥미를 느끼고 만족감이 높다. 꼭 그들이 취재원이라서 만나는 게 아니다. 인생에 길잡이 같은 취재원을 만나고 그런 관계를 쌓으면 차라리 낙종으로 물을 먹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친교와 의리를 중시한다.
나는 어떤 스타일일까. 어떻게 보면 이 네 가지 작은 분류에 다 조금씩 속해 있다. 네 가지 부류별로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다. 그 장점을 살리면 특종기자가 될 수 있고 단점만 갖고 있으면 아무 존재감 없는 기자가 되거나 사고만 칠 것이다. 무림의 네 가지 파 중에 장점만 가진 기자가 되면 좋겠다. 혹독한 훈련 없이 어찌 무림의 고수가 있겠냐 만은 가급적이면 사투 끝에 비기를 얻기보다는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 쉽게 비공을 전수받고 싶다. 더 이상 심신이 고생하기 싫은 중년기자의 공짜심리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