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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러기퐝 Oct 17. 2020

신 앞에선 단독자

초년병1

  “사건기자는 출입처 사무실에 배낭 하나를 싸둬야 한다.”
  수습기자를 마친 뒤 첫 발령받은 서울 중부경찰서. 며칠 뒤 오후에 갑자기 강화도에서 발생한 사건을 취재하러 가라는 데스크 지시를 받고 차량과 형님(언론사 문패가 붙은 차량 운전기사)을 불러서 출발했다. 하루가 될지 일주일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기자는 "그날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할지 언제 일이 끝날지 모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게 일반인과 다른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였다. 예측 불가능성. 어느새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잡을 때도 몇 시까지 갈 수 있다고 확답을 못하고 “너네들끼리 일단 만나라. 끝나는 대로 갈게”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럴수록 친구들 사이에선 내게 말은 안 해도 ‘야!, 너만 바쁘냐’ 이런 인식이 퍼져갔다. 그러면서 어느덧 친구들조차 부르지 않는 존재가 됐다.
  특히 이처럼 급하게 내려가던 사건사고 현장은 무서웠다. 언론사를 대표해 혼자 현장을 나가면 늘 고독했다. 대입 때 윤리교과서에 나왔다는 죽도록 이유 없이 외웠던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선 단독자’를 떠올리게 됐다. 독일 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바다위의 방랑자’가 떠올랐다.
  특히 내 나와바리가 아닌 곳일 경우 낯설고 부담은 컸다. 아는 경찰 등 취재원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날 나오는 기사는 오롯이 내 책임이다. 그나마 그 스릴감을 즐기긴 했다. 사건팀 차량을 타고 가는 차량과 형님이 나의 유일한 벗이었다. 초판 기사를 막고 형님과 함께 먹는 밥만 따뜻했다. 노동일을 하면서 마시는 반주처럼 쓰지만 달게 넘어가는 소주에 속이 풀렸다.


  기자의 업무강도와 스트레스지수는 매우 높다. 단명하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히고 실제 단명하는 선배들이 적지 않다. 들려오는 부고 소식이 남일 같지 않다. 일간지나 방송 기자의 경우 매일매일 아침부터 조간 리뷰와 발제, 방송 모니터링 등을 해야 한다. 경쟁도 나날이 치열해진다.
  아침 8~9시 즈음 출근해서 조간신문 리뷰를 하고 10시 전에 그날 무엇을 쓰겠다는 발제를 하고 점심 때 취재원을 만나고 오후 3시경부터 기사를 작성하고 저녁 때 취재원과 술자리를 갖고 11시 전후로 귀가하는 생활이 벌써 13년이 넘었다. 아침에 물 먹은 기사가 있거나 발제할 소재가 하나도 없는 경우 발제 마감 시간이 다가올수록 혈압이 높아지는 걸 느낀다. 4~5일 동안 바이라인이 신문에 안 나가면 “출근하고 있나”, “회사 안 짤렸냐”는 주변의 말을 듣고 스스로도 조급증이 난다. 차별화된 단독이나 기획 기사를 쓴 지 오래될 때도 마찬가지다.
  언론계에서 “기사만 안 쓰면 기자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마감 스트레스는 크다. 일간지나 방송 기자는 거의 매일 기사를 1, 2꼭지씩 쓰는 게 보통이다. 어떤 날은 꼭 기사가 안 써지고 흐름과 문장이 꼬인다. 특히 스스로 이해가 안 되서 머릿속으로 잘 안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나 방향 지시를 받은 날에는 컴퓨터 버퍼링처럼 막힌다. 그때 쫓기는 압박감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원한 소맥을 마신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간이 쉬어야지’ 또는 ‘오늘은 진짜 안 먹어야지’ 하다가도 오후 퇴근 시간이 되면 없던 약속도 만들거나 낄 자리가 없는지 전화를 열심히 돌리게 된다. 그러면서 “아 오늘은 진짜 안 마시려고 했는데”라며 술잔을 부딪치고 있다.
  술자리는 중요한 취재 자리다. 기자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 중 하나다다. 술 때문에 사고도 많다. 필름이 끊겨서 이마를 꿰매거나 집 앞 골목에서 잤다는 선배들의 무용담도 많다. 갈지자 행보처럼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 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만큼 재밌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기자는 사회 계층의 바닥부터 맨 꼭대기까지 일반인들보다 먼저 혹은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직업이다. 경찰서를 찾아오는 잡범부터 노숙자, 문화예술인, 스포츠선수, 기업 오너, 국회의원, 대통령까지.
  가까워진 취재원과는 평생 같이할 지인으로 남는다. 특히 그들이 차례차례 조직에서 성장하고 요직을 맡고 정치인이 기초광역단체장에 당선되고 국회의원, 대통령에 당선될 때는 뿌듯함을 느낀다. 호가호위는 해선 안 되지만 가끔 생색내고 싶은 마음이다. (반대로 취재원들이 힘든 일을 겪고 인사에서 물을 먹고, 낙선하는 경우 같이 위로하면서 ‘다 잘 될 거야’ ‘전화위복’을 외치기도 한다.)
  자기 시간을 자율적으로 쓴다는 것도 장점이다. 출근이 늦던 정해진 시간에 좋은 기사로 마감만 하면 좋은 기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출입처로 출근을 해서, 회사로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상사들과 마주칠 일이 적다.
  대학생 인턴기자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 늘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이 인턴 기자하면서 얻는 제일 큰 소득은 나 같은 선배들을 보면서 ‘역시 기자는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 때일 것이다. 세상의 좋은 직업이 너무나 많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으면 일단 해봐라”
  이제 짬이 찼다고 6개월에 한 번씩 빚쟁이처럼 찾아오던 “인턴 담당 기자 혹은 멘토를 맡으라”는 회사의 연락도 안 온다. 레파토리가 같던 인턴에 대한 조언도 이젠 까먹은지 오래다. 중년 기자의 서글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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