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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러기퐝 Oct 18. 2020

종로경찰서의 추억

초년병2

  내 이름과 종로경찰서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불과 14개의 기사만 검색된다. 종로구와 성북구 등에 위치한 일명 ‘종로 라인’에 배치된 건 2008년 하반기다. 그러나 경찰발 기사가 드물었던 것은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핫이슈였던 이유가 크다. 매일 오후 집회를 취재했고 나중에 체포 위기에 놓인 단체 관계자들이 수배를 피해 조계사로 들어가자 조계사를 자주 갔던 게 나의 일상이었다.
  그런 종로서 사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12월 어느 날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 성적 관련 분석 자료가 유출됐다. 수능 성적 위조나 그런 류는 아니었지만 평가원이 공개하지 않은 자료가 유포되자 평가원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기자들이 받는 주된 스트레스는 이른바 경쟁지에 물을 먹을 때다. 우리가 모르는 내용을 타지가 단독으로 기사를 썼을 때(낙종이라고도 표현한다) 괴로움은 시작된다. 아침부터 기사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느라 분주하고(통상 관계자들은 기자, 혹은 상부 등에서 일제히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에 전화연결도 어렵다) 또 단독 기사를 반까이(만회)할 기사거리를 더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괴롭다.
  “타지에 물 먹은 걸 그대로 발제하면 어떡하니? 야마를 틀던지 반까이할 거 찾아와!!!!!”
  이런 선배들의 불호령을 몇 번 받고 나면 세상에서 제일 무능한 것 같은 좌절감이 들기 일쑤다. 이 사건의 경우 타사 교육부 출입기자가 1보를 썼던 사건이라 나와 무관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회사 입장에선 물 먹은 사건인 만큼 다들 예민해있었다. 다른 경쟁지들도 조그마한 팩트라도 넣어서 단독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가 평소에 잘 알던 수사과장이 사건을 맡게 됐지만 언론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었던 만큼 그는 민감해했다. 내게 활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교육부를 관할하던 옆 부서, 얼굴만 알던 부장의 전화가 왔다. 그 부장은 연락처 하나를 줬다. 만나보라고 했다. 해당 사건의 유력한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된 입시업체 관계자였다. 그와 경찰서 앞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상태였다.
  “평소에 OOO 부장한테 신세를 많이 졌어요. 그래서 이럴 때 어차피 보도가 될 내용이라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본인이 우연히 평가원 사이트에서 들어가서 직원 소개에 나온 e메일 주소를 봤다고 했다. 내부 사이트에 접속망에서 e메일 주소로 쓰는 ID를 넣었고 비밀번호에 ID를 집어넣었더니 그대로 접속이 됐다고 했다. 그 뒤로 종종 접속했다는 것이었다.
 〔입시업체 간부 “평가원 직원 ID-비밀번호 같았다”〕라는 제목으로 사회면에 900자짜리 배꼽 기사를 썼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김 실장은 2007년 8월경 A, B 씨의 비밀번호를 우연히 알아냈다. A 씨의 비밀번호는 ID와 같았고, B 씨의 경우엔 한글 이름을 영문 타자로 바꿔 칠 때의 영어 알파벳이 비밀번호였다.
 김 실장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가 많은 분은 ID와 비밀번호를 같게 쓰는 경우가 있다”며 “평가원 직원 e메일의 비밀번호 입력란에 ID를 그대로 쳐보니 맞아떨어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날 아침 종로경찰서 기자실에 출근하자 시선이 따가웠다. 말을 거는 친한 기자들은 “어떻게 알았냐”고 궁금해하면서도 자존심상 깊게 물어보지 못했다. 수사과장도 어디서 취재했냐며 아침부터 기자들에게 항의를 받았다고 난감해했다. 당연히 취재원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900자짜리 작은 기사였지만 관심이 집중됐던 사안이라 신문은 물론 방송에서도 주요 이슈로 다뤘고, 명쾌한 진상에 승부는 끝이 났다. 회사가 완벽한 반까이에 성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취재원을 연결시켜준 이 부장에게 감사했다. 뒤에서 도와줬지만 공은 내게 돌아왔다. 이후 사회부장으로 온 이 부장은 나를 아껴주셨고 나도 물론 늘 존경하고 따르는 부장으로 모셨다.
  선배의 역할은 물론, 취재 스킬에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 경찰서와 검찰청을 출입할 때도 수사기관에서 정보를 얻지 못하면 피조사자를 찾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갔다. 또 900짜리 사회면 배꼽의 비교적 작은 기사였지만 팩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팩트만 있으면 파급력이 높다는 것도 큰 깨달음이었다. 팩트의 신성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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