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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러기퐝 Oct 27. 2020

나는 오늘도 성공적으로 출근한다

기자질5



  회사를 10여년 다니던 와중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주52시간 근무가 도입됐다. 주5일 근무가 정착하면서 주6일에 익숙하던 내 삶에 큰 변화와 혜택이 생겼다. 그리고 회사는 출퇴근 관리 앱을 도입했다. 스스로 출근과 퇴근을 누르며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시스템. 아침에 출입처에 출근해서 출근 버튼을 클릭하면 이 말이 나온다.

  “성공적으로 출근하셨습니다.”

  ‘성공적인 출근이라니….’, ‘출근에도 성공과 실패가 있구나.’ 이 말을 처음 본 순간 낯설었다. 성공과 출근이라는 연관성에. ‘오늘은 성공적으로 출근했다면 실패한 출근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나는 출근에 성공할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분명 오늘 성공적으로 출근했다. 이른 아침 출입처에서 만난 선배(통상 정치권에서 조금 친하면 국회의원이든 보좌진이든 어쩌다 공무원, ‘어공’이든 선배라고 부른다)가 말하길,

  “왜 이렇게 출근이 빨라? 어디서 밤새 술 먹다가 잠도 안 자고 바로 출근하는 거야?”

  그렇다. 나는 분명 오늘 성공적으로 출근했다. 어제 취재원과 저녁에 만나서 술자리를 가졌고 밤 11시쯤 무사히 귀가했다. 5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 뒤 출입처로 나왔다.

  이 일을 하는 동안 과히 술을 마셨다. 취재원과 친해지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듣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그러다 초년병 때 부 회식을 하다가 과음해서 필름이 끊겼다. 어디선가 일어나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자취방에 갔는데 거울을 보니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다. 눈썹 바로 위 이마가 상처부위였다. 응급실에 가서 급하게 꿰매는 동안에도 취기가 덜 가셔서 아픈 줄도 몰랐다. 이게 산재냐 아니냐를 생각했지만 정신없이 바쁘다가 결국 산재 신청은 하지 않았다.

  그뿐이랴. 언제부턴가 필름이 자주 끊기기 시작했고 아침에 눈에 뜨면 싸~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나빠서, 사람과 그 자리가 좋아서, 술이 술을 마시고. 다음날 보면 사는 듯 사는 건지, 취한 듯 사는 건지, 사는 듯 취한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무릎이 까져있거나 이마에 가벼운 찰과상이 있거나, 넘어져서 팔꿈치가 찢어지거나. 아침에 휴대전화가 없거나 지갑이 없거나. 다행히 무기인 노트북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출근에 실패한 적도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휴대전화와 가방이 없었다. 가방에 들어있던 노트북이 없으니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정신이 멍해졌다. 전날 함께 있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택시회사로 연결이 됐고 회사에 맡겨져있던 휴대전화와 가방을 되찾아서 출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오늘 성공적으로 출근한 게 맞다.

  장기간 출근에 실패한 적도 있었다. 고3시절부터 생겼던 목 디스크가 심화됐고 어느 날부터인가 타이핑이 잘 되지 않았다. 왼쪽 새끼손가락과 약지가 심하게 떨렸고 2,3분 정도 타이핑을 하면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결국 수술을 해야 했다. 6시간 수면마취 동안 이뤄진, 목 전면을 째서 식도를 제치고 철판으로 뼈는 고정시키는 대수술이었다. 3주간 병가를 냈고 한 동안 목 깁스를 달고 지냈다. 그 뒤 1년마다 나는 철판이 잘 붙어 있는지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지는 않는지 검사를 받는다. 가끔 혹시라도 변이가 생겨서 암 덩어리가 생기지 않을지 불안한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느 날인가 집에 귀가하자마자 아내에게 “더 이상 못해먹겠다. 내일 출근 안하겠다”고 선언을 한 적도 있었다. 아마 선배와 트러블이 있었을 때 자존심이 상한 날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가방을 메고 출근을 했다. 술이 깨서 정신을 차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위기에도 지금 건강하게 무사히 출근하고 있다. 그 뿐이랴. 10년 넘게 회사를 다닌 것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다닌 탓에 여우같은 아내와 결혼도 했고 토끼 같은 자식도 두 명이나 생겼다.

  나는 아마 오늘도 출입처를 나오면서 혹은 기사를 마감 한 뒤 퇴근 버튼을 누를 것이고 “성공적으로 퇴근했습니다”라며 출퇴근 관리 앱의 응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회사와 국가에 감사한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마감할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도 성공적인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건강하게 내가 원할 때 혹은 정년을 맞이해서 퇴직을 한다면 그 걸로도 성공한 삶이 될 것이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로서, 조부모로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오늘도 밥벌이를 위해 직장으로 향하는 모든 이들의 출퇴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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