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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ug 06. 2020

퇴사를 한 후 나의 첫 경험(2)

누가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손가락질하는가(2)

  예비후보자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난 선거지원단 면접 때 처음 들어봤다. 그냥 사람들이 후보로 등록하면 기호, 당, 이름을 내걸고 홍보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당 인원 제한 없이 사람들은 자유롭게 예비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다. 예비후보자 등록 기탁금 300만 원만 있다면. 그리고 예비후보자 자격으로서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을 제한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그리고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다면 그 기탁금은 그대로 돌려받는다.


  이런 제도 때문인지, 이번 선거에 고생을 좀 했다. 포털사이트 뉴스 기사를 보셨다면 알 수도 있겠지만, 모 당에서 예비후보자로 대거 등록을 한 것이다. 정치 이력이 있든 없든,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정말 대거 등록을 했다. 어떤 지방은 수십 명이 등록을 했었다. 문제는 이들이 연락도 잘 되지 않고, 공문서 전달도 어렵고, 회계보고서를 받아야 하는데 쓴 돈도 없는데 왜 이걸 해야 하냐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 예비후보자 등록할 때 거금 300만 원을 내고서는. 결국은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는 한 명으로 추려졌지만, 그 당으로서는 그렇게 하면 어떤 이득이 있기에 그렇게 했겠구나 싶었다.



1. 사람 피해서 왔는데 또?

  선거운동 단속을 주로 하는 외근반, 민원처리나 서류 작업 일체를 담당하는 내근반이 있었다. 난 돌아다니면서 단속하는 게 좋았는데, 아쉽게도 내근반으로 배치되었다. 참 얄궂게도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하다가 튕겨 나왔는데 또 사람을 상대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나는 이미 합격했을 때부터 내근반으로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된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 상대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겠나 싶기도 하고, 이게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공무원은 서류로 시작해서 서류로 끝난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던 건 다들 부서에서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불필요한 건 없었다. 공무원은 공정성과 투명성 때문에 모든 건 서류로 남겨야 하고, 이는 정보공개를 통해 국민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아무튼 그 많은 서류 작업의 귀퉁이에서 내근반은 발을 걸쳐둘 뿐인데도 알아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법 법 법. 석사까지 마친 나로서 공부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짧은 시간에 어려운 말들을 머리에 쑤셔 넣으려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공무원 시험에 비하면 이건 극히 일부일 뿐일 텐데, 공시생들이 대단할 뿐이다.


2. 민원의 늪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후보자 등록이 다가오면서 점점 늘어났다. 이제 전쟁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이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아닌지 묻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냐는 고함소리까지. 심리상담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조용히 사람을 짓눌렀지만, 민원전화는 그야말로 원초적이었다. 더해서 내 말 한마디에 민원인이 선거법 위반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잘못된 안내로 인해 다가올 후폭풍이 두려웠다. 공무원도 아닌 내가 이런데 공무원들은 오죽할까.

 

  선거운동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서로의 후보 간 전쟁, 후보와 민원인 간 전쟁, 그 사이에 새우등 터지는 선관위.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과열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민원전화는 불이 나고, 전화통을 붙잡느라 업무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더하여 선거운동 기간에는 오전 6시~오후 10시까지 두 조로 나누어 교대근무를 한다. 물론 직원들은 교대 없이 풀 근무다. 공무원법상으로는 근로시간제한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아무리 선거 때만이라지만 난 이런 환경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만 같다.


3. 전화기 너머 사람 있어요.

  민원 전화를 받다 보면 순간 얼어붙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짜고짜 소리치는 경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히는 경우다. 선관위에는 기업 콜센터처럼 공무원이나 지원단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다. 아마 다른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지 싶다. 그래서 민원인들의 고함이나 모욕을 고스란히 받고, 분은 스스로 삭여야 한다. 내 상식을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말도 안 되는 민원도 마찬가지다.  내 성격도, 심리상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가 없다. 말을 민감하게 들어야 하는 직업을 해오던 나에게 이런 민원들은 나를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이건 선거일이 다가와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출근길엔 볼빨간사춘기의 '워커홀릭'을 들으며 사무실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 각오를 다지며 나서곤 했다.


  한 예를 들자면 이번 선거에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선거 절차가 복잡했다. 마스크를 쓰고, 1m 거리를 벌리고, 체온을 재고, 손 소독 후 비닐장갑도 착용하고 선거에 임한다. 한 민원인이 체온계에서 중국말이 왜 나오냐며, 중국에 속국이 되려고 이러는 거냐며 따지는 전화가 걸려왔다. 당장 해결 하라며 1시간 뒤에 다시 확인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일개 지원단인 내가 어찌 알리. 요즘 Made in China 아닌 제품이 어디 있을까. 하물며 체온만 제대로 측정된다면 그만 아닐까. 혹여 공무원을 꿈꾸는 분들은 언제 어떤 민원이 들어올지 모르니 너그러운 마음과 단단한 자아를 가지고 입직에 준비하셨으면 좋겠다.




  솔직히 나도 공무원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근 20년간 가족들이 나에게 주입해온 공무원에 대한 핑크빛 로망에 대한 반발심이 가장 컸다. 안정된 직장, 어쨌든 오르는 호봉, 노후 걱정 덜어주는 공무원 연금.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것보다 내가 좋았던 건 공정성, 원리원칙이었다. 내가 일했던 대학교들도 온갖 법을 다 이용하고 피해서 직원들에게 덜 주려고 했다. 하물며 사기업은 오죽할까. 반면 공공기관은 나라에서 주관하는 만큼 법대로 정해진 건 원칙대로 준수할 수밖에 없다. 正道를 배웠고, 천성이 고지식했던 나로서는 챙길 것 다 챙겨주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오히려 더 챙겨주려고 하시는 모습에 감동이었다. 사실 정해진 대로 챙겨주고 하는 게 당연한 것인데, 참 씁쓸한 현실이다.


  반면 공무원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사람들은 공무원의 빛을 보지만 그 그림자도 보아야 한다. 만약 공무원이 안정적이지도 않았다면 온갖 민원과 클레임에 직원들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실제로 퇴사율이 높은 직렬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고된 업무와 민원에 지쳐 어렵게 통과한 시험을 뒤로하고 다른 길로 떠나는 것이다. 이로써 직업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든 상담심리사가 되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그 앞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안정된 직장의 뒤편엔 무수한 고생과 노력이 기다리고 있다. 이로써 공무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정말 기쁘다.


  방황하는 퇴사자의 첫 경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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