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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제로 Dec 16. 2022

왜 책상은 깨끗해야 할까?

전쟁 같은 책상 속에서 나만의 법칙이 있는데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정리란 나에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물건에 대한 집착이 커서일까, 혹은 게을러서 그런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번씩 날 잡고 청소하는 동생과 언니에 비해 정리라는 것이 마치 나무늘보와 함께 마라톤을 하듯 한없이 미루고 싶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나의 책상, 서랍, 방은 어수선했다.

엄마는 그걸 굉장히 싫어했기에 나를 붙잡고 한 번씩 방을 엎었지만 금방 원상복구가 되고는 했다.

아마, 다른 자매들에 비해 취미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도 많은 나이기에 아무리 책상을 치워도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내가 청소를 하지 않은 정당한 이유 또한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세상 전쟁터 같은, 한없이 무질서한 공간 같지만 나 나름의 규칙과 위치들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것을 바라볼 때 나 역시 한숨이 나오는 것은 맞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사실인지라 나중이라는 단어를 인질 삼아 한계에 도 다른 엄마가 침입하기 전까지 나만의 무질서한 공간을 즐겼다.


그만큼 정리란, 나의 인생에서 굉장히 먼 단어였는데 어느 순간 어지러운 책상이 나의 마음도 어지럽혔다.

책상이 더러운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혼잡스럽다는 이야기를 흘려들었는데 그것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나에게도 와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사실 이제부터는 깔끔하게 살아야지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그런 무질서함에서 잘 살아왔는데 왜? 그런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을까가 처음이었고,

그다음으로는 스트레스는 받지만 정리하기는 싫다였던 것 같다.


동시에 나는 왜 갑자기 이 온갖 잡동사니로 도배되어있는 책상을 정리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마치 시험을 앞둔 사람이 시험 빼고 다 재미있는 것처럼, 정리라는 시험 앞에 잠시 휴전선을 그은 것이랄까.


아마, 나는 정리에 대한 관심은 있었을 것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혹은 다른 사람들의 방을 보며 어떻게 하면 저렇게 깔끔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 관심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에 가장 큰 영향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엄마는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청소나 해라고 했겠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의 마인드셋이 필요했다.


남에게 밀려서 한 청소와 정리가 아닌, 스스로 이유를 찾은 정리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나는 도착지까지는 아니어도, 중간 경유지까지는 도착한 것 같다.




먼저, 그동안 나는 책상을 치울, 마음을 치울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했다.

마치 마음속 여유 없이 한없이 채우고 채우는 욕심 많은 양동이처럼 이미 책상 밖으로 물건이 넘치는데도, 책상에 올라올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쌓아 올리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환경이라 내 마음속에서 단언해버렸다.


두 번째, 채움을 위해 비움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놓쳤다.

공간에는 한계가 있기에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있는 것들을 써서 내보내거나, 버리거나, 정리해야 하는데 혹시나 후회할까 봐, 다시 필요할까 봐라는 핑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들도 유지하고자 했다.


세 번째, 바뀌어도 별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이제 와서 책상을 깨끗하게 한다고 해서 많이 달라질까 싶었다.

이 단계에서는 사실 책상 정리를 포기할 뻔했으나, 매일 더러운 책상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찬 나 같다는 느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채움에 집착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채움과 비움의 밸런스를 맞춰 더 균형 있게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기에 변화의 시점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며칠 동안 마음을 정리하니 이제 실천만이 남았다.

미루고 미뤘던 정리를 나 홀로 해야 한다니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막막했지만 나에게는 간접경험과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에 차분히, 그리고 충동적으로 정리를 시작해보았다.


하지만, 펜을 정리하기 위해 꺼내는 순간, 그 순간 도망칠 뻔했다.

너무나 많았다. 형광펜만 50자루가 넘어갔다. 펜도 너무 많아 연필꽂이를 3개나 쓰고 있음에도 자리가 부족하다 생각했으니 말이다.

펜을 꺼내서 안 나오는 것을 버리자니, 이전부터 그것은 한 번씩 했던지라 다 잘 나왔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버리자니 환경파괴 같고 다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많았다.


고민 끝에, 잘 사용하지 않는, 애정이 없는 펜들은 싹 정리하여 필리핀으로 교육봉사를 간다는 후배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버리는 것이 아닌, 필요 있는 누군가에게 주는 거라는 생각이 든 순간 판단이 매우 쉬웠다. 순식간에 지퍼백 하나 가득 펜을 정리할 수 있었고 그 순간부터 마치 게임 속 부스터를 단 것처럼 열심히 정리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물건을 어디에 놔야 할지 고민했지만, 나의 목표는 하나, 책상을 깔끔하게 치우기였으므로 미련 없는 것은 버리고, 애매한 것은 기부로 분류하고, 책상 위에 있던 화장품 샘플들은 다 욕실, 음식 관련은 주방으로 보냈다. 햄스터처럼 집안을 왔다 갔다하며 드디어 2시간 만에 책상 치우기를 끝낼 수 있었다.


스스로 치운 책상을 바라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와 드디어 내가 해냈다.

깨끗해져 여백의 미가 보이는 책상을 바라본 순간.

마음이 거짓말처럼 평온해졌다.

아마 내가 책상을 치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였을까.

마음은 어느 정도 정돈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더러운 책상을 직접 청소하고 정리하며 무의식 속에만 있던 부정적인 파편들을 끌어모아 쓰레기통에 치운 느낌이었다. 광고효과를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임상실험 결과를 보여주듯 깨끗한 책상은 나의 마음이 안정화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주는 상징 같았다.



좀 더 비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금 이 형태도 사실, 내 인생 살면서 가장 깨끗한 책상이기에 이 형태만큼은 유지하자는 마음에 증거 사진을 남긴다.


실천은 갑작스럽게 해냈지만, 생각보다 잘 해냈고 생각보다 더 뿌듯하고 좋았다.


기분 탓일지는 모르겠으나, 깨끗한 책상 위에서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글을 쓰니 좀 더 잘 써지는 느낌까지 든달까


비우고 비웠음에도 많은 나의 펜


갑작스럽게 시작된 책상 정리가 성공스럽게 끝난 것처럼,

내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귀찮음을 느끼는 일들이 막상 실천해보면 별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번 기회를 교훈 삼아, 지금까지 내가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을 차례차례 정리하여 세상을 향해 비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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