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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Apr 04. 2024

정말 '맛있는' 보쌈이 있는 집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 독박골맛있는집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 독박골맛있는집 입구

골목에 숨어있는 보쌈집. 이런 곳에 가게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구석 한 곳에 음식점이 있다. 게다가 맛있다. 그러면 안 갈 이유가 없다.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맛집임을 직감하게 된다.


충정로역 3번 출구를 나와 7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해브커피'라는 카페가 나온다. 이 카페를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골목 끄트머리 좌측에 가게가 하나 나온다. '맛있는 집'이라는 빨간 글씨가 음산하게 써져 있고, 그 위에는 '독박골'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다.


오늘 소개할 집은 독박골 맛있는 집이다. 이 동네는 독박골도 아닌데 왜 독박골 맛있는 집인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독박골이라는 동네에서 장사를 하다가 옮기신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골목에 이런 집이 있어? 싶지만 꽤나 알려진 집 같다. 여러 사람들이 예약을 하고 찾아온다. 이 집의 예약이 필수인 이유는 명물인 '보쌈'을 먹기 위해서다. 김치를 그날 담그시기 때문에 예약을 꼭 해야 한다. 예약과 동시에 보쌈을 먹겠다는 말도 해야 한다.


예약 때부터 행복해진다. 김치를 만든다는 이유로 미리 말해야 한다고? 그만큼 신선하고 그만큼 맛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간판만으로 맛집임을 자부하는 이곳 내부는 간판과 다르게 깨끗하다. 새로 인테리어를 한 느낌은 아니고, 그만큼 깔끔하게 관리를 한 것 같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턱이 나온다. 신발을 신어야 하는 테이블이 있고, 벗어야 하는 곳이 있는데 안쪽 방이 좌식이다. 그냥 신발을 신고 올라가면 테이블 좌석이 있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면 되는데 상당히 앙증맞다. 2000년대 초반에 많이 봤던, 캘리그래피 문구가 쓰여있는 메뉴판이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 독박골맛있는집 메뉴판

글자들이 정겹다. 틀린 맞춤법들이 보인다. 김치찌'게'처럼 귀여운 단어가 매력 있게 다가온다. 다른 글들에선 계란말이도 '계란마리'였는데 바뀌었다.


이 집 보쌈은 상당히 비싸다. 6만5000원이다. 그 가격을 내고 먹을 정도인지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자리에 앉아서 보쌈을 시키고, 이 집의 또 다른 인기 음식인 코다리찜을 시킨다. 뭔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일행이 늦게 올 것 같아서 보쌈을 천천히 달라했지만, 인기가 많은 탓인지 주문이 밀려있다고 얼른 가져가라 재촉하신다. 오히려 좋다. 보쌈 나 혼자 독식하고 싶다. 그렇게 썰려 나온 보쌈이 제법 정갈하다.


이제부터 고기와 보쌈의 시간이다.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 독박골맛있는집 보쌈

이 집 보쌈의 구성은 알차다. 오겹살 수육과 보쌈김치, 그리고 절인 배추가 나온다.


'맛있는 집'이라고 자부하는 곳인 만큼 음식 재료를 좋은 것으로 쓰는 듯하다. 오겹살의 비계 부분이 상당히 질이 좋다. 별 재료 없이 삶아도 훌륭한, 그런 고기다.


그만큼 고기의 맛이 뛰어나다. 당연한 말이라고? 오겹살로 맛없고 질긴 고기를 만들어내는 곳이 수두룩하다. 적정선을 지켜 삶아낸 뒤 육즙을 가득 품은 이 집의 고기는 일품이다. 아마 마늘과 양파, 약간의 과일 정도가 들어간 것 같다. 잡다하게 뭘 많이 넣지 않았다.


김치. 이 집은 김치가 정말 특이하다. 솔직히 말하면 내 스타일은 아니다. 이유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맛없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이 집 김치에는 한 가지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 유자가 들어갔다는 점이다. 김치를 씹는 순간 유자향이 물씬 풍겨왔다. 물론 내 혀에만 그랬다. 동행들은 유자향을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유자향이 김치의 다른 양념이랑 잘 어우러지긴 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유자향이 고기랑 합쳐지면서 육향이 덮이는 느낌이었다. 유자 특유의 강한 향이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집 김치는 그날 아침 담근 김치답게 신선하다. 그리고 특별하다. 괜히 더 대접받는 기분이다.


아쉬운 점은 가격이다. 아무리 그날 좋은 재료를 엄선해서 이 구성으로 만든다고 해도 6만5000원이라는 가격은 조금 비싸게 느껴진다. 5만원 정도만 됐어도 이해할 텐데 6만5000원은 물가를 고려해도 비싼 편이다. 오겹살을 다루는 인천집도 이 정도는 아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 독박골맛있는집 코다리찜과 소고기미나리전

보쌈만 맛있다면 '독박골 맛있는 보쌈집'이어야 말이 되는데, 다른 음식도 상당히 맛있다.


코다리찜은 자극적이다. 양념이 엄청 진하고 밥을 비벼 먹어도 될 정도로 맛있다.


소고기 미나리 전은 처음 먹어본 맛이다. 신선하다. 이런 음식들을 만들다니. 감사할 지경이다.


이 집은 사장님과 가족들이 함께 운영하는 듯하다. 주방에 계신 엄마와 아들, 서빙을 하시는 주방이모의 여동생. 그분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분 등. 정겨운 집의 느낌도 든다.


밥도 맛있고 보쌈도 맛있고 코다리도 맛있고 술도 맛있어진다. 아쉬움이 살짝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맛있다.


이 집 정말 맛있는, 보쌈을 파는, 독박골 맛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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