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에서 후암동으로 넘어가는 골목. 이 골목의 초입에는 노포의 향내가 잔뜩 난다. 즐거워진다. 골목의 분위기만으로 맛집이 가득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이 골목에는 여러 맛집이 즐비하다. 오늘 소개할 집은 골목 중간에 있는, 점심이면 줄을 서는 보쌈 맛집 충무칼국수다.
충무칼국수? 분명히 소개한 적이 있는데? 동자동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동명의 다른 집이다. 지도에 충무칼국수만 검색해도 여러 곳이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동자동 충무칼국수, 지난번에 소개한 인의동 충무칼국수, 그리고 녹번동의 충무칼국수는 호각을 다툰다.
놀라운 건 셋 다 스타일이 다르다. 녹번동은 푸짐하게 쌓여 나오는 굴보쌈, 인의동은 어슷 썰어 나온 을지로 골목의 보쌈 느낌, 동자동은 칼국수집에서 맛볼 수 있는 그런 보쌈이다.
이 집은 지도가 없다면 찾기 힘들다. 길 복판에 있긴 하지만, 움푹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의 주차할 공간이 3-4곳 있고, 음식점이 안쪽에 있다.
간판만 봐도 맛집이다. 노포 느낌이 묻어 나오는 이곳은 30년 전통을 자랑한다.
요즘 같이 따뜻한 봄 날씨에는 파라솔 자리가 열린다. 3-4팀 정도 앉을 수 있다. 안쪽에는 좌식 세 테이블과 그냥 앉는 자리 7-8석 정도가 넉넉하게 있다. 그런데도 오픈하는 11시 30분부터 사람들이 몰린다.
이 집은 기다릴 때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미리 주문이 들어가고, 사장님도 계속 신경 써주시기 때문이다. 젊은 사장님이 한 분 계시는데 매우 친절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맛을 좌우하는 서비스가 훌륭하니, 이 집은 이미 합격선에 가까운 느낌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충무칼국수 메뉴판
이 집 메뉴는 메인이 보쌈, 그리고 사이드가 칼국수와 해장국, 여름에만 파는 콩국수다. 여럿이 오지 않았더라도 보쌈을 시키는 걸 추천한다.
칼국수는 양이 많다. 셋이 와서 세 개를 시키면 사장님이 두 개를 셋으로 나눠주신다. 하나 더 팔아도 되는데 친절하게 권유해 주시는 게 괜히 감동이다.
보쌈과 칼국수를 시키고 기다리다 보면 음식은 금방 나온다. 그런데 혹시 일행이 늦게 오더라도 사장님이 천천히 주시겠다고 해준다. 음식이 혹여나 타이밍에 따라 칼국수가 늦어질 때도 있긴 하다.
보쌈 전에는 선짓국이 나온다. 당황할 필요가 없다. 보쌈을 시키면 나오는 서비스다. 그리고 보쌈이 등장한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충무칼국수 보쌈 소자
듬직하다. 겉보기에도 부드러움이 확 느껴진다. 김치? 두 말할 것 없다. 딱 봐도 맛있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이 집 고기는 들어가는 순간 내가 이곳에 잘 왔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 집 고기의 부위는 두 가지다. 삼겹살과 사태. 먼저 삼겹살 부위는 비계와 살코기의 적절한 비율(2:8)을 유지하는 아주 좋은 고기다. 된장을 베이스로 고기를 끓인 것 같은데 된장향이 고기를 다 덮지도 않았다. 부드럽고 맛있는 정석에 가까운 고기다. 어디서 먹어본 맛이기도 하다. 어쩌면 제일 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은근히 어려운 방식의 고기다.
다른 부위인 사태는 조금 질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매우 쫄깃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쫄깃해서 씹는 맛이 있다. 삼겹살 부위가 뒤로 갈수록 물린다면 사태가 그걸 잡아준다.
김치는 갓 담근 느낌이다. 정말 맛있다. 특별히 젓갈향이 강하거나 양념을 과하게 치지도 않았다. 아마 고기 양념이 조금 진해서 김치는 재료맛을 살린 것 같다. 고기와 김치의 조화는 훌륭하다.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한 김치 같다. 요즘 같이 고물가 시대에 좋은 재료를 쓴 김치라니. 감지덕지다. 그리고 이 김치의 포인트. 칼국수랑 잘 어울린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집 칼국수의 빈 맛을 김치가 잘 잡아준다.
전통을 오랜 기간 지켜온 맛집에는 이유가 있다. 이 맛을 한결같이 유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해진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충무칼국수 칼국수 반그릇
이 집 칼국수는 멸치육수를 기반으로 한 맛이다. 뭔가 잔치국수향이 살짝 느껴진다. 국물이 깊어서 계속 숟가락을 넣게 된다.
그런데 칼국수만 놓고 보면 내 스타일은 아니다. 칼국수 맛집으로도 알려진 듯한데 칼국수보다는 보쌈이 맛있다. 칼국수 자체도 맛없진 않지만, 보쌈이 더 입에 들어온다.
아무렴 어떤가. 보쌈을 함께 판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보쌈을 안주 삼아 수다를 떨며 술을 기울이다가, 뜨뜬한 국물이 먹고 싶어지면 칼국수를 시켜 먹는 것도 방법이다.
이 집의 분위기, 거리의 느낌, 사장님의 친절함, 맛있는 보쌈까지. 빼놓을 곳 하나 없는 맛집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