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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잔향 27화

저마다의 안경

by 이제이

나는 가난했고, 열악했고,
그러므로 고통스러웠다.
어둡고 긴 터널 속에 갇혀
헤어 나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지금 감옥일까, 지옥일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섣부른 한 마디,
“괜찮은 거야? 잘 될 거야.”
그 위로는 마치 사약 같았다.

진심 어린 말들은 닿기 전에 부서지고,
작은 손길은 도달하기 전에 굴절한다.
렌즈는 이미 깊이 물들어
내 시야의 세상은 변색되었다.
내가 쓴 안경에 비친 그는
때로 사탄처럼, 때로 알 수 없는 형상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의 안경을 쓰고 살아간다.
때론 위로가 왜곡되고,
때론 선의가 낯설게 다가온다.
그 변색의 사회 속에서
서로의 진심은 뒤엉키고
진심을 나누려던 이도,
진심을 갈구하던 이도
알아차림과 모름의 촌각 사이로 스쳐간다.

어쩌면 저마다의 안경은
바라보라고 씌워진 것일지 모른다.
말 대신 눈빛으로,
아니면 묵묵히 곁을 지켜준 존재로,
찰나의 순간 비로소
렌즈를 뚫고 전해지는 참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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