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정말 고생일까?
신혼여행 이후 3년 만에 가는 해외여행이었다. 그 사이 남편과 나 사이엔 ‘12개월 아기’라는 새로운 동행자가 생겼고, 여행 준비는 물론 장소까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갔다. 등이 파인 원피스나 챙이 넓은 모자, 색이 다른 선글라스 대신 가방엔 커피포트와 젖병, 체온계, 방수 기저귀가 차례로 들어갔다. 바람이 세게 불까 봐, 햇볕이 너무 뜨거울까 봐, 열이 날까 봐, 다칠까 봐.. ‘혹시나’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내 손을 바쁘게 했다. 아이 물건을 다 싸고 나니 장롱이 텅 비어있었다.
큰 짐을 끌고 새벽에 택시를 탔더니 꼭 야반도주하는 사기꾼 같았다. 품에 돈다발 대신 아기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 다르긴 했지만. 룸미러로 우리를 흘깃 쳐다본 기사님이 입을 열었다.
“아이고~ 아기랑 여행 가시나 봐요.”
간만에 여행에 마음이 떠 있던 내가 “네.”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저 쪼끄만 애가 뭐 알아요? 기억도 못 하지. 여행이 아니라 고생이야. 고생. 허허”
기사님의 말에 우리 부부는 별 대꾸 없이 어색하게 웃었다. 기사님 말처럼 남편 품에 안긴 아기는 설렘 하나 없는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평소와 같은 아이 얼굴 위로 가로등 불빛이 택시 속도에 맞게 비쳤다, 사라졌다.
우리는 여행지로 사이판을 골랐다.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관광지가 별로 없어서’ 가 큰 이유였다. 아이와 관광지를 다 찾아가기엔 부담스럽고, 또 안 가면 아쉬울까 봐, 아예 가볼 곳도 별로 없는 사이판으로 정한 것이었다. 기내엔 아이와 함께한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아이가 많아서 울음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는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아, 여기선 내 애도 맘 놓고 울어도 괜찮겠구나.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이해해 주겠구나, 하는 마음.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뭐가 불편했는지 사이판에 도착하자마자 잘 걷지도 못하면서 내려달라고 보챘다. 공항은 생각보다 덥고 습했다. 애도 덥겠네. 비행 때 잤으니 다행이지, 나와 남편은 서로의 심신 안정을 위해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긴 입국 수속을 기다리며 휴대용 선풍기를 아이 얼굴에 대 주었다. 아기 띠를 한 남편 몰골이 이미 여행을 다 마친 사람 같았다. 측은한 마음에 남편 얼굴에 선풍기를 더 오래 대 주었다.
4박 5일의 일정 중 마나가하 섬에 가는 하루 빼고 전부 리조트에 머물렀다. 가장 오래 있었던 곳은 유아 풀장이었다. 물이 발목까지 오는 풀장에 앉아 있다가 따분해지면 혼자 유수 풀에 갔다. 멀리서 회전 슬라이드를 타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튜브에 사지를 늘어뜨린 채 슬라이드 꼭대기에 올라간 상상을 했다. 타고 싶었지만 혼자 탈 용기가 없어, 시시해도 손과 발이 늘어져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원상아, 재밌어? 좋아?”
아이는 유아 풀에서 방금 탄 미끄럼틀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러면서도 꼭 처음 타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릴에 흥이 오른 얼굴.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 해변에서 모래를 입으로 가져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넘실대는 물의 바운스에 튜브 위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식당에서 즉흥 연주가 시작되면 유심히 보다가 어른처럼 박수를 쳤다. 우리 부부는 여행 내내 아이를 보며 웃었다. 쏟아지는 별과 바닷속 물고기와 석양이 내린 해변보다도 우리를 더 많이 웃게 한 건 아이의 얼굴이었다. 늘 보던 얼굴인데도 마치 다른 사람을 마주한 것 같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커피포트에 젖병을 소독하고 침대에 누워 그간 찍은 사진을 훑었다. 거의 모든 사진에 아이는 우리 품에 안겨 있었다. 어쩌면 기사님은 여행 내내 품고 다녀야 할 아기가 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종일 안고 다녀야 하고, 눈치 없이 울고, 말할 줄 모르면서 시끄럽고, 좋은 걸 보여줘도 좋은 줄 모르는 살아있는 짐.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행할 때 아이는 짐이 아닌 한 명의 동행자이고, 그 역시 여행으로 세상을 느끼고 깨닫는 중이라고. 어찌 그의 마음을 그리 잘 아느냐고 묻는다면, 되려 아이가 기억 못 할 건 어찌 아시는데요?라고 묻고 싶었다. 에어컨 바람에 이불을 목까지 덮고 눈을 감았다. ‘엄마, 좋아! 재밌어!’ 사진 속 아이가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