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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Jun 05. 2024

어쩌다 투병일기 12 -사랑하니까 눈물이 난다

눈물의 비빔밥

10년전 쯤, 그 시간이 그립다.


 항암을 하면 맛을 전처럼 느끼지 못한다. 특히 나는 매운 것을 더 못 먹게 됐다. 평소 짜장보다 짬뽕을 먹던 나였는데, 지금은 짜장을 선호한다. 그리고 갈비나 삼겹살의 고기맛이 좋지 않다. 맛이 없다.  레몬향이 나는 건 비위가 상해 먹지 않는다. 아메리카노도 달지 않은 쌍화차 느낌이랄까? 전에 늘 맛있게 먹던 음식들이 낯선 맛으로 변한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식탐이 생겼다. '입에 맞는 게 있으면 일단 많이 먹자'란 심산으로 음식을 대한다. 명치까지  찼는데도 더 먹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삶에 미련이 많은 건지, 나 자신을 자랑하는 건지,  것도 아님 자학하는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오래 살고 싶다는 것.

 항암을 하는 5개월가량 늘 같은 패턴으로 아파하다 정신 차리면 지나치게 먹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 결과 나는 4kg이 쪘고, 배가 볼록한, 누가 봐도 사십 대 아줌마 몸매를 뽐내게 되었다.

  

 일주일 전쯤 퇴근하고 집에 왔다. 근육통을 간신히 견디며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 아이들과 남편은 저녁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근 넣어 끓인 된장국 하나, 김치와 진미채 볶음. 새로운 반찬이 한 개도 없었다. 된장국 하나 끓이는데 부엌은 난장판.  참 요란하게 차린 저녁인데, 슬펐다. 너무 초라한 밥상이었다. 그 밥상이 마치 나의 처지 같아 억울했다. 아이들이 먹을 만한 건 하나도 없이, 간신히 된장국 하나 끓여놓은 남편도 미웠다.

 '내가 안 하면 이 정도인 거야? 집안에 여자가 아프면 집안꼴이 엉망이라더니....'

 옷을 갈아입으며

 "엄마 옷 갈아입고 시간 걸리니깐 먼저 먹어!"

라고 말하곤 서글퍼지는 감정을 억눌렀다. 


  식탁 앞에 앉았다. 마주 앉아있는 작은 아이를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정을 추스르고 식탁에 앉았다. 큰아이는 된장국에 밥을 비벼먹곤,

"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아이는 나의 기분을 살피며 밥을 억지로 먹고 있었다. 누군가 툭 치면 눈물을 쏟을 표정이었다. 나는 된장국이 싫었다.

급하게 계란프라이 두 개와 냉장고에 있던 나물 몇 가지를 꺼내 밥을 비볐다. 작은 아이는 김자반에 밥을 비벼먹고 있었다. 남편은 나의 반응에 아무 대구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뉴스를 틀었다.

 맞은편에 앉은 작은 아이가 소리 없이 울며 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평소 말이 많진 않아 표현이 부족한듯 보이지만 섬세한 면이 있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거다. 내가 수술 이후, 항암 하며  머리도 다 빠져 민 머리에 거의 누워만 있던 몇 개월이 아이는 낯설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울게 되었다. 엄마의 눈물을 본 아이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미안했다. 아프다고 나만 생각했던 내가, 엄마인데 아이들의 감정보다 

내 아픔만 보았었다.


 ' 내가 잘못했구나'


 난 아이들 앞에서 운 적이 없었다. 울 일이 있지도 않았지만, 부모의 눈물은 아이에게 이유 없이 더 큰 슬픔이 된다고 생각해 왔다. 어린 시절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슬프고 불안했었다. 그런데 아프고 난 후 작은 아이만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코가 톡 쏘며 눈물이 맺히곤 했다. 그럴 때는 억지로 참아가며, 마음을 다 잡아보았다. 


지금은 항암도 모두 끝났다. 항암이 끝나면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현재 방사선 치료 6회를 마쳤다. 잘 받고 있는 중이다. 방사선치료는 6월 말에 끝이 나는데, 그 때는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고마웠다고 말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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