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_가발을 드디어 벗어던지다
그깟 머리카락이 뭐가 대수냐,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난 그게 쉽지 않았다.
작년에 항암을 하며 작은 교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원에 오는 학생들이나 학부모에게
밤송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엄두도 못 냈다.
늘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가발을 썼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총이 무기이듯
나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생존무기가
가발이었다.
가발 없이는 외출을 못했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
항암 종료 후 조금씩 자라고 있는 머리카락.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긴 머리로 자란 씬(scene)으로
시간을 스킵할 수 없었다.
항암 후 머리카락은 더디게 자라고
머릿결은 곱슬로 바뀌었고,
모질이 얇으며 모량도 전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항암 끝! 다른 걱정 시작!
언제까지 가발을 써야 할까. 여전히
거울을 보며 나 자신에게 묻는다.
대답은 늘 같다.
"더 써야 돼."
항암만 끝나면 행복하겠다는 마음은
쥐구멍에 숨어 버렸다.
나는 또 감사를 잊은 채
머리타령을 하고 있다.
가족들은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이 또한 내가 결정할 문제였다. 인생에서 모든 게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의 책임은 내 몫이 아니었던가. 가발을 쓰고 벗어야 하는 일까지 내 선택이고 그에 대한 반응까지 내가 책임지려니 억울해진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지
작년 10월 언니와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발을 쓴 나는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며 깨닫게 되었다.
가발은 내 마음에 안심을 주었을 뿐,
난 가발과 상관없이 행복했었다고.
올해 25년 2월에 떠났던 베트남 여행에서는
탈가발을 했다. 딱 1년 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원했다.
낯선 땅, 모두가 처음 만난 사람들.
이름, 나이, 어디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에게 관심 주는 이들이 없는 곳이라서 편했다.
탈모처럼 보여도
환자처럼 보여도 난 괜찮았다
I don't care
출퇴근 길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입주 동기인 이웃들이
"머리 언제 자르셨어요?"
라고 묻거나
아이들 친구 엄마가
"언니, 갑자기 쇼트커트를... 왜 무슨 일 있어요?"하고
아는 체를 하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기분전환이라며 넘어갔었다.
나에게 갖는 관심, 감사하기도 한 일이지만
항암부작용으로 탈모가 왔기 때문에
진실을 숨기고 싶었다.
내가 아픈 것을 들키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사회적 약자가 된 기분이랄까.
이제 다 지나갔다.
나는 살아있고
여전히 일을 하고 있으며
명랑한 암환자가 될 테다, 란 다짐도
이룬 거 같다.
적어도 나는 암과의 시간을
우울하게 보내진 않으려고 애썼다.
가족들, 친구들
또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까지!
난 혼자가 아니었다.
가발을 벗으면
"괜찮다!"라고 말해 줄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가발을 벗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