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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투병일기 14

커밍아웃_가발을 드디어 벗어던지다

by 멜로드라마 Mar 07. 2025

그깟 머리카락이 뭐가 대수냐,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난 그게 쉽지 않았다.


작년에 항암을 하며 작은 교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원에 오는 학생들이나 학부모에게

밤송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엄두도 못 냈다.

늘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가발을 썼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총이 무기이듯

나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생존무기가

가발이었다.

가발 없이는 외출을 못했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


항암 종료 후 조금씩 자라고 있는 머리카락.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긴 머리로 자란 씬(scene)으로

시간을 스킵할 수 없었.

항암 후  머리카락은 더디게 자라고

머릿결은 곱슬로 바뀌었고,

모질이 으며 모량도 전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항암 끝! 다른 걱정 시작!


언제까지 가발을 써야 할까. 여전히

거울을 보며 나 자신에게 묻는다.

대답은 늘 같다.

"더 써야 돼."


항암만 끝나면 행복하겠다는 마음은

쥐구멍에 숨어 버렸다.

나는 또 감사를 잊은 채

머리타령을 하고 있다.



가족들은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이 또한 내가 결정할 문제였다. 인생에서 모든 게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의 책임은 내 몫이 아니었던가. 가발을 쓰고 벗어야 하는 일까지 내 선택이고 그에 대한 반응까지 내가 책임지려니 억울해진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지



작년 10월 언니와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발을 쓴 나는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며 깨닫게 되었다.

가발은 내 마음에 안심을 주었을 뿐,

난 가발과 상관없이 행복했었다고.


올해 25년 2월에 떠났던 베트남 여행에서는

탈가발을 했다. 딱 1년 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원했다.


낯선 땅, 모두가 처음 만난 사람들.

이름, 나이,  어디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에게 관심 주는 이들이 없는 곳이라서 편했다.

탈모처럼 보여도

환자처럼 보여도 난 괜찮았다


I don't care


출퇴근 길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입주 동기인 이웃들이

"머리 언제 자르셨어요?"

라고 묻거나

아이들 친구 엄마가

"언니, 갑자기 쇼트커트를... 왜 무슨 일 있어요?"하고

아는 체를 하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기분전환이라며 넘어갔었다.

나에게 갖는 관심, 감사하기도 한 일이지만

항암부작용으로 탈모가 왔기 때문에

진실을 숨기고 싶었다.

내가 아픈 것을 들키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사회적 약자가 된 기분이랄까.


이제 다 지나갔다.

나는 살아있고

여전히 일을 하고 있으며

명랑한 암환자가 될 테다, 란 다짐도

이룬 거 같다.

적어도 나는 암과의 시간을

우울하게 보내진 않으려고 애썼다.


가족들, 친구들

또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까지!

난 혼자가 아니었다.


 가발을 벗으면

"괜찮다!"라고 말해 줄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가발을 벗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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