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한승태 저, 시대의 창]에는 저자가 머물렀던 농장의 풍경, 일의 과정이 굉장히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현실은 훨씬 더 참혹할 테지만 내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상상하며 공장식 축산의 구체적 과정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영상으로 보았으면 차마 끝까지 보지 못 했을 내용들이었다.
그중에는 글로써는 떠올리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그런 부분은 이 공포스러운 과정을 계속해서 간신히 읽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완충재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책에 담겨 있는 것은 동물의 이야기뿐만이 아니었다. 책에는 이 폭력적인 축산 과정 속 '인간'의 이야기가 충실히 담겨 있었다. 공장식 축산에는 경영자와 노동자라는 생산 요소, 혹은 인간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책에는 일의 잔혹성과는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 일하시는 분들의 일상적인 모습, 노동의 고됨, 그러한 고된 일자리로 이끌어진 노동자들의 삶의 맥락, 농장을 운영하는 경영자의 포악함(혹은 무감함)등이 담겨 있었다.
사실 이와 같은 직업 체험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할지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등 따시고 배부른 내가, 그리고 이 기득권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내가 이러한 내용을 접하며 무슨 마음을 가져야 적절한 걸까?
농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생각을 떠올렸고 그와 동시에 스스로에게서 어정쩡한 중산계층의 같잖은 감상주의의 냄새 또한 맡을 수 있었다. 이는 마주하기에 꽤나 불편한 감정이었다. 책을 덮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게 된 것은 농장에 존재한 또 다른 사람, 바로 저자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기에 조심스럽지만 농장 노동의 제1 목적이 임금이 아니라는 점, 글을 써서 출판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미루어보았을 때 저자 역시도 내가 스스로에게 한 검열(진정성의 검열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저자의 시선은 나와는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과거에는 비위 약한 사람은 농장에서 절대 일 못 하겠다고 친구들이 말하면 나는 정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지금은 아니다. 양계장에서 일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사람은 업보를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되돌아올 거라 믿는 사람들 말이다"와 같은 말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이,
"짖지 마! 짖지 말라고! 네가 너네한테 뭘 어쨌다고 짖는 거야?! 나는 전태일이 누군지도 알고 촘스키가 어느 대학교수 인지고 아는 사람이야! 나는 저 사람들이랑 다르다고. 나는 너희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란 말이야!"와 같은 말에서 느껴지는 뒤틀린 자의식이,
"내가 당당하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실제로 선량한 면이 조금은 있었기 때문이다"와 같은 말에서 느껴지는 엄격한 자기 인식이 슬프고도 안쓰러웠다.
저자의 농장에서 일하는 분들과의 관계 맺음 또한 특별하게 느껴졌다. 담담하고 담백했다. 나 자신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함이었다.
이러한 저자의 이야기는 책에 담겨있는 생명체들의 비극적인 삶, 내용을 무거움을 고려한다면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공장식 축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도 구체적으로 찾아보지는 않았었다. 나름의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 내 생활을 공장식 축산과 완전히 분리하는 쪽으로 재구성하지 않는 이상, 이에 대해 어쭙잖게 찾아보는 것은 적당히 문화자본 좀 더 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책을 결국 읽어버리고 말았다.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긴 했지만 조금 더 슬퍼지기도 한다. 이 책을 잘 읽었지만 공장식 축산에 의존하고 있는 내 식생활이 유의미하게 바뀔 가능성은 낮은 것 같기 때문이다.
책 제목을 약간 비틀어 -사람으로 태어나서-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갔던 농장과는 성질이 아주 다른 농장이지만, 나 역시도 농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산란계 농장에서 지낼 때, 간혹 계란이 땅에 떨어져 깨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 닭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계란을 쪼아 먹었다. 나로서는 좀 무서운 광경이었다. 이 광경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계란과 병아리의 관계에 대해 나름의 논리를 고민하곤 했었다.
닭들은 계란을 쪼아 먹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식이 행위의 윤리성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정말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닭들보다는 인간인 내가 조금 더 복잡하게 생각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이 든다.
인간으로 태어나 짊어지게 되는 짐이 동물농장에서 비극적 삶을 살고 있는 동물이 짊어지고 있는 보다 무겁다는 무례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이 짐이 너무도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 인간으로 태어나서..
Ps.
나 역시도 여러 동물동장에서 지내는 동안 동물이 무서워서, 일이 힘들어서 처음 품었던 동물에 대한 존중이 사라질락 말락 하게 되는 순간들이 간혹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는 돌아올 수 있었다.
나라고 하는 인간을 존중해주시고,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을 존중하고 계신 농부님들 덕분이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지내며 동물을 미워하게 되는 게 오히려 어려운 일이었다.
저자가 그러한 농장을 가게 되면 어떠한 것을 느끼고 어떠한 글을 써낼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