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헉죄송 Feb 16. 2020

제멋대로 자연농법 체험기 -2

우프, 우프코리아, GW_129

나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내용을 좋아한다. 하지만 낭만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쓰임새는 싫어한다. 이 단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충고, 조언, 평가, 판단에 곧잘 사용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귀농귀촌에 대한 지향을 두고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낭만이라는 단어의 참 차가운 용법이다.

"귀농귀촌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 곧잘 얘기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발화의 가치가 있는 말인지 곧잘 의문이 들곤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골에서 살고 싶다~"라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답하는 건 좀 바보 같은 일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컨설팅을 받고자 말을 꺼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낭만 하나만을 가지고, 진지하게 귀농귀촌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이제까지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어쨌든 그런 뚝심 있는 사람(돈키호테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에게 충고나 조언을 해봤자 어차피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그 이외의 사람들, 낭만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귀농귀촌의 동기를 온전히 낭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시골 살이의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역시나 쓸모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귀농귀촌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에서는, 한 사람의 복잡다단한 고민은 아주 명쾌하게 '낭만'이라는 한 마디로 일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일축이라기보다는 삭제다. 여러 고민들은 그저 없는 것이 된다.

마치 남들은 농사 계획서를 세울 때 낭만 계획서라도 세우는 냥, 농기구를 살 돈으로 통기타라도 사는 냥으로 되어버린다.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의 알량한 자존감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듣는 이에겐 확실히 별 도움이 안 되는 말이다.

현대인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많이 주어져 있다면, 이 말이 조금이나마 의미를 더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많은 시간 일하고, 여러 갑질을 당하고, 적은 급여를 받게 되어있다. 귀농귀촌은 확실히 좋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지만 다른 선택이라고 해도, "낭만이 전혀 없는 선택"이라고 해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그렇다. "발화될 가치가 있는 말인지 곧잘 의문이 든다."는 표현은 그냥 포장을 했을 뿐이다. 나는 "귀농귀촌을 낭만적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무언가를 싫어한다는 건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 말을 너무 싫어하지만, 너무 싫어하니까, 너무 많이 의식하게 되었었다. 나의 귀농귀촌에 대한 마음과 생각이 철없는 낭만이 아닌지, 그렇게 보이지 않는지를 계속해서 신경을 썼다.

우프를 통한 농사일이나 농촌 생활에서 어떤 좋은 순간을 맞이하였을 때, 기분이 좋다가도 '이 좋은 기분은 우프라고 하는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로부터 농사일, 농촌 생활을 무턱대고 긍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곧잘 생각하곤 했다. 좀 바보 같지만 그랬다.

이런 경계태세(?)는 GG_129에서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엄격히 식이조절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이성의 끊을 놓아버리고(혹은 놓쳐버리고) 먹어치우는 것과 같이, GG_129에서는 그냥 농촌살이의 낭만을 불가항력적으로 게걸스럽게 즐겨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제멋대로 자연농법 체험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