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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한 초콜릿 Nov 02. 2024

좋은 초콜릿이란?

초콜릿은 왜 비싼가

많고 많은 음식 중 초콜릿은 유독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 같다.

아마 내가 초콜릿과 밀접하게 살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슈퍼에서 고를 수 있는 초콜릿의 종류는 몇가지 없었다.

가나 초콜릿, 크런키 초콜릿, 허쉬, 메이지 초콜릿 등등. (난 크런키와 ABC 초콜릿을 좋아했다)

슈퍼에 가면 국산보다 조금 더 비싸도 신기하고 예뻐 보이는 수입산 초콜릿을 항상 구경하다 하나씩 집어오곤 했다. 게다가 수입산은 더 품질이 좋아보였다. 

아무래도 초콜릿이 국내보다는 해외 식품이기도 하고, 원료나 기술의 차이도 있기 때문에 수입산 초콜릿이 . 더 비싸고 맛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릴 적 먹던 초콜릿들은 아마 지금 먹으면 설탕맛이 지배적일 것이다.

핫초코 가루 통을 열면 달달한 설탕향에 얇팍하게 초콜릿 가루 향이 섞여 나온다.

그 달달한 초코향이 '초코'라는 맛과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초콜릿은 엄청 단 것이라고 인식한다.

가끔 젤리나 탄산음료는 좋아하는데 초콜릿은 달아서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살짝 의아하다가 이 분은 진짜 초콜릿을 안 먹어봐서 그렇겠구나하고 생각하고 만다.


(근데 어릴 적 먹던 핫초코 맛은 여전히 크으....달달한 향이 아주 포근하니 좋다)


(사진 출처: https://www.pexels.com/ko-kr/photo/28379073/)



일본의 한 유명 초콜릿 가게에서는 빈투바 초콜릿을 판매한다. 

빈투바 초콜릿은 커버춰 초콜릿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카카오 콩(빈) 자체를 사와서 직접 로스팅과 콘칭을 거친 후 자신들만의 자체 초콜릿을 만드는 것이다. 커버춰를 쓰는 것과 빈투바를 하는 것의 장단점이 꽤나 뚜렷해서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할 수는 없고 그저 방향이 조금 다를 뿐이다.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과 핸드 드립 커피 전문점이 다르듯이 말이다. 

그 가게로 들어서면 시큼한 향이 진동을 한다.

신선하게 들여온 카카오 빈의 시큼하고도 진한 향을 처음 맡아본 사람들에게는 좀 불편할 수도 있다.

늦봄과 여름의 시작 즈음, 친구와 일본 여행을 하다 각자 원하는 곳을 둘러보고 만나기러 했다.

원단 가게를 구경하고 내가 있던 초콜릿 가게로 들어온 친구가 어딘가 불편하게 계속 코를 큼큼거리며 살짝 걱정하는 표정을 띄었다.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아 친구에게 '여기 빈투바 가게라서 발효되서 온 카카오 빈에서 시큼한 향이 나는 거'라고 말해주니 그제야 친구가 안심하며, 오래 걸어서 발냄새가 났나 걱정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발효와 건조 과정을 마친 카카오 빈은 시큼한 향을 풍긴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카카오 닙스를 먹어 봤을 것이다. 카카오 닙스는 카카오 빈을 땅콩 분태 크기 정도로 잘게 부수어 둔 것인데, 따로 첨가된 것 없는 카카오 콩 그 자체라 시큼하고 쌉쌀한 향이 살아있다.


(사진 출처: https://www.pexels.com)



카카오는 참 신기한 존재이다.

카카오 빈을 발효하고 건조한 후 로스팅, 분쇄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압착을 하면 거기서 기름이 나온다. 그것을 카카오 버터라고 한다. 마치 올리브를 압착하면 올리브유가 나오듯이. 

카카오 버터, 이 녀석이 특이한게 사람 체온 정도에서 녹고 그 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고체 상태를 유지한다.

그래서 따뜻한 손에 쥐고 있거나 입에 넣으면 고체였던 초콜릿이 사르르 녹는다.

게다가 카카오 버터 구조를 살펴보면 지방의 결정체가 6개나 있는데 얘네들이 다 다른 온도에서 녹으며, 각기 결정체의 모양과 안정성도 다른 것이다. 그 중 보기 제일 반딱이고 예쁜 결정체,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결정체, 부러뜨릴 때 샤프하게 똑!하고 부러지는 결정체, 제일 안정적인 형태인 결정체가 단 하나였다. 그래서 초콜릿을 만들 때 특이한 작업을 하게 되는데 바로 다른 결정체들을 최대한 없애고 그 안정적인 결정체를 남겨주는 과정인 템퍼링이라는 작업이다.


-템퍼링에 관한 자세한 글은 



산업 혁명으로 기계를 이용해 공장을 가동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과자, 사탕 등 여러 식품도 공장화되기 시작했다. 여기 중독성 강하고 인기 있는 초콜릿이 빠질 수가 없다. 공장에서 초콜릿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아주 혁신적인 성공을 거둔 초콜릿 회사가 바로 Hersey허쉬 초콜릿 회사. 그리고 허쉬가 초콜릿 계의 한 획을 긋는데 바로 작은 물방울 모양에 은박지로 싸인 키세스 초콜릿이다.


지금 키세스 초콜릿을 먹으면 뭔가 좀 겉도는 서걱거림에 설탕 단내가 진동하는 달달함, 카카오의 풍미라곤 찾을 수 없는 초코가루향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초콜릿은 2차 대전 때 미군에게 지급되었는데 설탕량이 많은 만큼 고열량의 간식이었으며 에너지도 빠르게 충당시켜주고 사실 카카오의 성분 자체가 피로회복에 좋기 때문에 사실 그 당시 공장화 초콜릿에 카카오 함량이 유의미하게 들어있지는 않았겠지만 아무튼 미군들의 피로회복 간식이었다.

따라서 휴대하기가 간편해야 했는데 앞서 설명했듯이 카카오 버터는 체온 언저리에서 녹아버리기 때문에 공장장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카카오 버터 대신 체온에 쉽게 녹지 않는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게 되는데 카카오 버터 함량을 확 줄이고 식물성 유지를 첨가하니 초콜릿이 쉽게 녹지도 않고 게다가 어마무시한 원가 절감이라는 이득을 보게 된다. 그래서 식물성 유지를 사용한 초콜릿들은 손이나 입에서 카카오 버터만 들어간 초콜릿 보다 비교적 빠르게 녹지 않고, 녹는 점이 더 높은 만큼 혀에서 왁스같은 식감처럼 미끌거리거나 얇은 막이 남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좋은 초콜릿에 대해 이야기하려다보니 그 반대의 초콜릿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게 되었다.

불포화 지방산과 포화 지방산이 섞인 형태의 카카오 버터는 피부 미용 목적으로도 많이 사용되며 체온에서 녹는 형태이기 때문에 섭취해도 혈관을 막지 않는 좋은 지방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카카오 매스는 카카오의 좋은 모든 성분을 다 안고 있는데 덕분에 다크 초콜릿은 항상 수퍼 푸드 상위권에 든다. 


딸기, 쿠키 등 다른 맛이 첨가된 제품을 제외한 초콜릿은 정말 라벨이 클린해야 한다. 클린 라벨clean label 초콜릿은 보통 4가지, 최소 3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카카오 버터, 설탕, 카카오 매스가 최소 3가지 성분이며 제조사에 따라 레시틴이 들어간다. 밀크 초콜릿은 전지분유(밀크 파우더)가 추가된다.




클린 라벨 초콜릿은 다 좋은 초콜릿일까?

초콜릿은 가공된 형태이긴 하지만 '카카오'라는 열매에서부터 만들어진다.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카카오 나무는 열대우림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에 많이 자란다.

커피에도 품종이 다양하듯이 카카오도 품종이 다양하다. 그 중에서 더 고급지고 섬세한 맛을 내지만 병충해에 약해 생산량이 적은 품종이 있고, 병충해에 더 강하고 많이 키울 수 있지만 특별한 풍미가 부족한, 한마디로 맛이나 품질이 좀 떨어지는 품종도 있으며 그 둘의 장점을 섞어 만든 교배 품종도 있다. 


예를 들면 에콰도르 지역에서는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아주 적은 나씨오날 품종이 나는데, 품종 특성상 재배와 관리 환경이 까다롭고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적은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인 만큼 가격이 비싸고 품질도 좋다. (현재는 실질적으로 완전 나씨오날 품종 100%로만 만든 초콜릿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지역적 특성과 노동력의 특성상 아프리카 지역에서 재배하는 카카오 품종은 병충해에 강하고 대량 생산 가능한 카카오 품종을 위주로 키우는데, 따라서 풍미, 품질은 다소 떨어지나 대량 생산에 적합한 카카오를 재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의 가나와 아이보리 코스트(코트디부아르)는 카카오 재배에 아동 노동력 착취의 아픈 과거가 있어서 해당 지역의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들 중 소규모 농장과 직거래하고 노동자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공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제품들은(공정 무역 마크가 붙어있거나 판매사 홈페이지에 기재) 개인적으로 불매하려고 하는 편이다.)


클린 라벨인 초콜릿을 구매하더라도 비교적 값이 싼 초콜릿들이 있는데, 아마 카카오 품종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 비싼게 좋은 것은 아니고, 권장할 수도 없다. 하지만 왜 차이가 나는지, 어떤 차이가 나는 지를 알고 있으면 상황에 맞게 선택을 해야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떤 초콜릿을 선택하느냐는 소비자의 마음이지만 초콜릿이라는 식품을 음미하고 싶다면 식물성 유지가 잔뜩 들어가거나 다크 초콜릿인데 설탕 함량이 높은 초콜릿은 선택하지 않는 게 좋다고 권하고 싶다. 


초콜릿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대분류가 '다크 초콜릿' 또는 '밀크 초콜릿'등으로 되어있을 뿐, 다크 초콜릿도 수백가지에 그 초콜릿들마다 어떤 지역의 카카오 빈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공정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카카오 함량(%)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상황에서 먹는지, 어떤 다른 음식과 페어링 하는지에 따라 천차 만별이니 그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난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신비로운 초콜릿의 세계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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