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가지 방법 + 보너스
이전 글에서 초콜릿을 템퍼링하는 이유와 카카오버터의 성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템퍼링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나열해보고자 한다.
초콜릿의 템퍼링에 중요한 3가지 외부요소는 온도, 시간, 움직임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내부요소는 카카오버터의 결정crystal이다.
온도: 카카오버터 결정체들은 각각 다른 녹는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온도를 조절해 필요한 결정체인 5번(베타)결정체만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시간: 충분한 결정체가 주어졌을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한 결정체가 주변의 결정체들을 끌어당겨 단단해진다.
움직임: 결정체들은 움직임에 의해 생겨나고 활성화되어 더욱 강력해진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온도의 변화만 있었던 초콜릿은 적정 온도에 있더라도 필요한 결정체가 형성되지 않아 템퍼링이 되어있지 않다. 거기에 움직임을 주어주면 결정체들이 형성되어 템퍼링 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사실 템퍼링이라는 말이 온도를 조절한다는 뜻으로 초콜릿의 템퍼링에 사용되는 용어인데 카카오버터 5번 결정체를 얻기 위해서는 단지 온도 뿐만이 아닌 다른 요소들도 작용하므로(특히 움직임) '템퍼링'보다는 '크리스털라이징crystalising'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사실 해외에서는 crystalise, over-crystalised 등등의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전부터 템퍼링을 하는 과정에서 움직임이 생략될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용어가 '템퍼링'으로 굳혀져도 무방했던 것 같다.
템퍼링을 하는 방법을 보면 온도를 왔다갔다하면서 필요한 결정체인 5번 결정체만 남기기, 아예 5번 결정체를 템퍼링이 필요한 초콜릿에 부여해주어 crystalise시키기. 따라서 나는 위의 3가지 요소에 더해 가장 중요한 한가지 요소를 더 더하도록하겠다. 템퍼링을 위한 4번째 요소, '5번 결정체(=베타 결정체)'. 5번 결정체의 녹는점은 섭씨 33.8도이다.
초콜릿에는 순수한 카카오버터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카카오매스, 설탕, 그리고 다른 고형분들(밀크/화이트 초콜릿의 경우 milk solid)이 모두 섞여서 하나의 덩어리로 형성되어있다. 템퍼링을 할 때 각 초콜릿의 템퍼링 온도가 다른 이유이다.
초콜릿을 필요한 양만큼 볼에 담아 중탕으로 녹인다(초콜릿은 절대 직화로 녹이지 않고 중탕으로 녹임). 초콜릿이 45~50'c로 녹았으면 중탕에서 내려 볼 바닥의 물기를 잘 닦아 물이 안 섞이게 주의한다. 다른 볼에 얼음과 물을 담아 얼음물을 만들고 그 위로 랩을 밀착시켜 얼음중탕볼을 만든다(랩을 감싸면 물이 튀기지 않아 초콜릿에 물이 섞일 위험을 없앰). 랩 위로 녹인 초콜릿이 담긴 볼을 담아 계속 섞어주며 온도를 떨어뜨린다. 중간중간 얼음볼에서 꺼내어 잘 섞어주어야 볼 표면에만 초콜릿이 굳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한만큼 다시 온도를 살짝 올려주어(히팅건 사용, 또는 중탕에 아주 살짝 올려 온도를 2~3'c만 조절하도록 함) 잘 섞어주고 작업온도로 맞춘다. 템퍼링 테스트를 한다.
(*사실 제일 비추하는 방법이고 요새 이 방법을 사용하는 셰프가 있을까 싶다. 급하게 초콜릿 온도를 떨어뜨릴때는 얼음볼을 사용하긴 하지만 비효율적이고 업장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아님)
아마 초콜릿 템퍼링하는 모습의 가장 흔한 이미지가 아닐까. 대리석 테이블에 초콜릿을 펼쳐붓고 모았다 펼쳤다를 반복하는 작업. 대리석은 비열이 높아서 따뜻한 것이 닿으면 그것의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본인이 받은 열 에너지를 빨리 발산시켜버리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초콜릿 작업시 대리석 테이블을 사용하는데 현실적으로 스테인리스 작업 테이블을 가지고있다면 소독을 잘 해서 사용해도 무방하다(스테인리스 작업 테이블 위에 랩 깔고 템퍼링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초콜릿을 45~50'c사이로 녹이고 약 20~25% 분량을 볼에 남긴 채 나머지 초콜릿은 대리석 테이블 위에 붓는다. 남은 초콜릿이 담긴 볼은 초콜릿을 한 군데로 잘 모아 온도를 유지하고 대리석 테이블에 바로 올리지 말고 케잌 링이나 타올을 깔아 그 위에 보관해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한다. 대리석에 부은 초콜릿은 초콜릿 스크래퍼로 펼쳤다 모았다를 반복하며 온도를 떨어뜨려준다. 온도가 27~28'c 사이로 떨어졌으면 재빠르게 한 군데로 모아주고 20~25%의 따뜻한 초콜릿이 담긴 볼로 옮겨 담는다. 볼에 담은 초콜릿을 잘 섞어 작업온도로 맞추어 템퍼링을 마무리한다. 템퍼링 테스트를 한다.
카카오버터의 5번 결정체를 일명 '씨앗seed', 즉 '씨드'라고도 부른다. 그 이유는 바로 다른 크리스탈들의 씨앗이 되어 그들을 5번 결정체로 변화시키는 말 그대로 '씨앗'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접종법, 또는 씨딩seeding법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제껏 나열한 방법들 중에서 가장 위생적이고 깔끔하게 템퍼링을 할 수 있고 손실량도 가장 적다. 방법도 쉬우며 공간차지도 적고 환경의 제약을 덜 받는다.
플라스틱 볼에 초콜릿을 계량해서 담고 전자렌지에 30~45초 간격으로 돌려가며 녹인다. 많은 양을 작업할 때는 처음에만 1분~1분 30초까지 돌리기도 하지만, 한 번에 전자렌지에 오래 돌리면 초콜릿이 타 버릴 수 있으니 주의한다. 전자렌지에서 꺼낼 때마다 주걱으로 잘 섞어주며 골고루 녹인다. 중탕으로 녹여도 되지만 깔끔하고 빠르게 전자렌지를 사용하는게 낫다.
초콜릿이 45~50'c 사이로 녹으면 계량한 초콜릿의 25% 양의 커버춰를 넣어준다. 여기서 씨드로 사용하는 25%의 초콜릿(커버춰)는 템퍼링이 되어있는 상태의 초콜릿을 사용한다. 이 원리는 데운 초콜릿의 온도를 낮추는 것 뿐만 아니라 5번 결정체(seed)를 바로 제공함으로써 템퍼링을 하는 방법으로, 5번 결정체가 있는 상태의 초콜릿을 넣어주어야한다.
초콜릿을 계속 섞어주며 씨딩한 초콜릿의 입자가 다 녹을 수 있게 한다. 혹시 온도는 작업온도에 도달했는데 씨드가 남아서 녹지않은 덩어리가 있으면 그 덩어리 부분만 볼의 벽 쪽으로 가져와 살살 눌러주며 히팅건으로 녹여서 조심히 녹여주면 된다.
또는 온도가 작업 온도에 미치지 않았는데 모든 씨드가 녹은 경우에는 1) 온도가 33.4'c 이상일 때는 씨드 초콜릿을 조금만 더 넣어서 잘 섞어 녹여주고 벽 쪽으로 붙여서 눌러가며 녹인다. 2) 온도가 33.4'c 이하일 때는 계속 저어가며 온도를 떨어뜨린다. 이 경우에는 이미 크리스탈을 형성이 되어있는데 온도가 맞지 않기 때문에 온도를 떨어뜨리면서(작업 테이블 위에서 볼 바닥이 닿는 부분을 바꾸어가며 온도 떨어뜨리기) 움직임을 더해준다(계속 젓기 또는 핸드믹서로 갈아서 운동성 부여하기). 또는 그대로 두고 온도가 떨어지면 템퍼링 테스트를 한 후 사용해도 된다.
접종법이야말로 가장 활용도가 높은 템퍼링 방법인데 아래의 5번, 6번에 설명할 방법들의 원리도 사실 접종법과 같다고 보면 된다.
(+ 핸드믹서 사용)
이 방법은 소량의 초콜릿을 사용해야할때 써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초콜릿으로 글씨를 쓰거나, 접착을 하거나 장식을 그리는 등 소량 초콜릿을 사용해야할 때 사용할 수 있으며 결정체가 이미 있는 템퍼링이 된 초콜릿을 사용하도록 한다.
볼에 초콜릿을 담고 전자렌지에 10~15초로 끊어가며 초콜릿을 녹인다. 끊어줄 때마다 충분히 초콜릿을 저어 섞어주며 온도를 계속 확인한다. 온도가 33.4'c 이상으로 넘어가면 템퍼링이 깨지므로 그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며(안전하게 32~33'c를 안 넘긴다고 기준을 잡고) 녹여준다. 전자렌지에 녹이는 대신에 히팅건으로 살살 녹여가며 템퍼링해도 된다. 이 방법은 5번 결정체를 깨지 않고 유지하면서 초콜릿의 유동성을 주어 작업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섬세하고 시간이 좀 걸려서 자주 쓸 일은 없지만 유용하다.
미크리요는 'Callebaut깔리바우트'사에서 만드는 분말형태의 카카오버터이다. 카카오버터가 분말형태로 나오면서 굉장히 다양한 용도로 사용가능해졌고 유용하다. 비단 디저트와 초콜릿의 영역 뿐만이 아니라 savoury 영역에서도 활용되는데(savoury에 활용하려고 개발되었는데 초콜릿 쪽으로 사용을 확장했다는 말도 있던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깔리바우트가 초콜릿 제조사니까) 카카오 버터가 일반 버터보다 타는 점이 높기 때문에 예를 들면 관자구이를 할 때 관자의 표면에 미크리요를 묻혀 팬프라이하면 타지않고 마이야르를 일으켜 아름다운 요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매우 비싸겠지, 카카오버터는 비싼 재료인데 거기에 기술력을 더해 파우더로 만든 미크리요를 사용하다니.
아무튼 다시 초콜릿 템퍼링 방법론으로 돌아가서 필요한 양의 초콜릿을 계량하고 녹여서 34'c로 맞추어준다. 초콜릿 양의 2%에 해당하는 양의 미크리요를 넣고 잘 섞어준다. 분말의 분포를 위해 핸드블렌더/바믹서로 완전히 섞어주면 좋다(움직임도 부여되서 템퍼링이 더 잘됨). 홈페이지에는 2%를 넣어주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6번에 나오는 방법을 응용해서 녹인 초콜릿을 32'c로 맞추고 1%의 미크리요를 넣고도 템퍼링을 했다. 아주 잘 된다.
Ez temper라고 카카오버터를 넣으면 카카오버터 실크를 제조하는(온도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신식! 기계가 있는데 비싸다. 아무튼 카카오버터 실크는 많은 5번 결정체로 이루어진 카카오버터의 상태인데(카카오 버터 실크 전체가 5번 결정체는 아니고 여러 결정체들이 섞여 있는 형태), 이 카카오버터 실크는 굉장히 강력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
사용하고자하는 초콜릿의 총량에 1%만 부여해주면 바로 템퍼링이 된다. 근본적으로 씨딩의 방법인데 초콜릿이 아닌 카카오버터 그 자체로 씨드를 주는 원리이다. 단 1%만으로 템퍼링을 가능하게 하다니 5번 결정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알 수있다. 카카오버터 실크는 직접 만들어서 보관할 수도 있고 매직템퍼기계를 이용할 수도 있다. 카카오버터 실크는 (미세한 온도변화와 상태에 따라서 약간 묽을 때도 있지만) 바르는 연고정도의 부드러움과 뻑뻑함을 지니고 있고 온도는 33.4'c이다. 사용하고자하는 초콜릿이나 카카오버터(색소사용할 때 활용)를 32'c로 맞추고 카카오버터 실크를 1% 넣은 후 잘 섞어준다. 분포를 위해 핸드블렌더/바믹서로 섞어준다.
(Eztemper 홈페이지 http://www.eztemper.com/)
많은 양의 작업을 하고나면 남는 초콜릿이 생긴다. 이 초콜릿을 템퍼링이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덩어리로 잘 굳혀서 보관한다. 그러면 템퍼링이 된 상태로 사이즈가 큰 초콜릿 덩어리가 되는데 이 덩어리를 씨드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사용할 초콜릿을 45~50'c로 녹이고 덩어리 씨드를 그대로 집어넣는다. 덩어리를 움직여서 따뜻한 초콜릿에 서서히 녹이고 작업온도에 다다르면 덩어리 씨드를 꺼낸다(걸러낸다). 이 방법도 일종의 씨딩법인데 작은 씨드초콜릿을 계량해서 다 녹이는 위의 씨딩법과 다르게 커다란 씨드 덩어리를 녹은 초콜릿에 먹인 후 템퍼링이 되는 시점에서 이 씨드 덩어리를 걸러내어(또는 꺼내어)버리는 것이다. 일부러 사용할만한 방법은 아니지만 덩어리의 템퍼링이 된 초콜릿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아직 직접 해보지는 않았고 글로는 봤는데 그냥 실온에(18~22'c) 녹인 초콜릿을 온도가 떨어질 때까지 놔두는 것이다. 한 번 실험을 해 보고 되는지 봐야겠다. 솔직히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온도가 맞을 때 운동성을 부여하면 될 것 같기는 하다.
템퍼링의 방법은 이렇게 다양하고 또 다른 방법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카카오버터 결정체에 대한 이해도가 있으면 초콜릿을 템퍼링 한다는 것은 단순히 온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콜릿을 템퍼링 하는 것은 초콜릿 작업을 위한 기초단계이지만 굉장히 변수가 많고 방법도 많아 마냥 기초라고만은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카카오버터의 세계는 파고들수록 복잡미묘한, 매력적이고도 어려운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