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간의 서울살이 막바지에 이르니 다시 여행길에 오르고 싶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지난 일상이 그리워졌다. 태어나 40년 넘게 살았던 내 고향 서울 생활이 아닌, 지난 6개월 동안 이곳저곳을 부유하며 살았던 한달살이 삶을 일상으로 느끼며, 다시 그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진 것이다.
다음 한달살이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더니 편도로 5시간이 넘게 걸렸다. 남편의 운전 피로감을 고려하여 중간쯤 되는 세종시에서 1박을 하며 쉬었다 가기로 했다.
나에게 세종시는 곧 출장지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공기업에서 15년을 넘게 일하며, 늘 약간 긴장한 채 회의하러 갔던 곳이라, 세종시에 여러 차례 방문했어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다만 그곳에 처음 갔던 2013~2014년쯤, 사방이 허허벌판+공사판이라 바람이 불면 누런 먼지가 날리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신도시가 조성된 지 10년이 지난, 출장이 아닌 여행 목적으로 방문한 세종시는 예전의 그 곳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깨끗하고 널찍하고 한적한 게 평온 그 자체였다.
길에는 얼굴만 봐도 ‘딱, 공무원이구나!’ 알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정장 바지에 반팔 와이셔츠, 한쪽 어깨에 걸쳐 멘 검은색 백팩, 말쑥한 얼굴과 단정한 머리 스타일까지. 누가 보면 각 부에서 지정한 드레스 & 스타일 코드가 있는 줄 알겠다. 이번에 저들 중 한 사람을 만나러 온 게 아니고, 단지 여행 왔다는 사실에 해방감이 느껴져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호텔에 도착해 정돈된 도로와 건물을 내려다보며 나는 "여긴 꼭 영화 트루먼 쇼 배경으로 만들어진 곳 같아." 했고, 남편은 얼마 전 넷플릭스 미드에서 본 현대판 천국 같다고 했다.
서울에 비하면 녹지가 많고, 탄천이 흐르며, 예술적 감각을 입힌 건물이 종종 보여, 남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해가 갔다. 계획된 도시에 생소했던 사람들이 1기 신도시 분당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나 지금 우리가 세종시를 보며 받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이른 저녁을 먹고 탄천을 따라 걷는데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 미세먼지 없이 맑고, 더위가 진정된 날씨도 한몫했겠지만, 낮에 길에서 봤음 직한 차림의 공무원(으로 추정되는)들이 탄천길을 자전거로 퇴근하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지하철에서 눌린 채 통근하는 게 아니고,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삶은 어떠할까.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세종시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편안했다. 여기선 살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내가 이렇게 느끼는 데에는, 우리 부모님을 포함하여 친척 중 공무원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 속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라, 무시할 수 없는 환경적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람은 익숙함을 안전함으로 느끼기도 하니까.
"여기 아파트는 얼마쯤 하려나?"
여행 중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부동산 앱을 켜 가격을 확인한다.
우리 두 사람이 살만한 아파트를 찾아보니 가격이 매우 합리적이다. 서울에서 원룸 비용으로 세종에서는 20평대 아파트에서 살면서 이 환경을 누릴 수 있다니!
이까지 온 김에, 느낌 좋은 곳을 만난 김에 임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직접 가본 아파트는 지도 앱에서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왼쪽에는 산이, 오른쪽에는 천이 흐르는 자연환경에, 한 블록 옆에는 대단위 상권이 조성되어 있어 편의성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중요한 큰 병원까지 가까이에 있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남편도 그곳이 썩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 세종에서 살게 되면~(어쩌고 저쩌고)." 마음이 들뜬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다음 한달살이 목적지로 이동하였다.
지나가는 길, 우연히 머문 세종시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특히, 앞으로 이곳에 오면서 더 이상 누군가 앞에서 발표하고, 설득(보다는 읍소^^;)하고, 야단맞을 각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