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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굴딩굴 Nov 17. 2020

신입사원, 그 오기의 원동력

자본주의 직장인 성공 매뉴얼

고분고분 참거나 순응하지 않은 덕에 즐거운 인생이 시작됐다. 이제는 살다가 나를 괴롭히는 인간을 만나면 생각한다. ‘그래서 이 양반은 내게 또 어떤 행운을 안겨줄까?’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김민식PD 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업무, 그야말로 신입사원이기에, 누구든 어디에서든 나를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그 부담이 당시에는 어찌나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제 안에 숨어있던 분노와 오기를 자극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는 제가 속한 팀의 한 상사였습니다. 벌써 10여 년도 더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인간의 망각의 동물,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당시에는 적잖은 충격이었나 봅니다. 제가 그와 겪게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그 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깁니다.


출근한 지 며칠째, 그는 저를 회의실로 조용히 부릅니다.

‘아~ 이제 드디어 본격적인 업무를 가르쳐 주려고 하는가 보네?’ 하고 다이어리와 펜을 주섬주섬 챙겨 따라갔는데,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딩굴딩굴씨~ 혹시 리니지(게임) 해요?”

“아.. 저 (긁적긁적) 안 하는데요..”

“나랑 회사 생활하기 힘들겠는 데…”


참 순진하게도 저는 리니지를 하는지 안 하는지 그저 궁금해서 물었구나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와의 본격적인 갈등의 시작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뒤로도 두 어번 “왜 아직 리니지 시작 안 하느냐”라는 핀잔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에 동참할 것을 강권하는 강도는 세어지며, 빈도는 잦아졌습니다. 한 번은 공식적인 팀 회의 시간에 대뜸 

“딩굴딩굴씨는 정말 리니지를 안 할 거예요? 우리 팀원 거의 다 하는데? 우리랑 어울리기 싫단 말이죠?”라고 하는가 하면, 

회식이나 술자리에서는 정색하면서

“넌 뭘 믿고 아직도 리지니도 안 하면서 개기는 거냐? 요즘 신입사원들은 원래 그런가?”는 막말을 서슴없이 제게 퍼부었습니다. 순간 보다 못한 옆자리에 있던 또 다른 상사 한 명이 제 손목을 잡아채고 술집 밖으로 끌고 나왔는데, 어디 좀 잠깐 같이 좀 가자는 겁니다. 


‘아.. 갈굼 당하는 게 불쌍하니 담배라도 한 대 주려고 하나? 에이 나 담배 안 피우는 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바로 의외의 장소, 술집 옆 건물의 피시방이었습니다.


“딩굴딩굴씨,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리니지 계정 하나 만듭시다. 그 리니지 같이 좀 하는 거, 그거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쯧쯧쯧”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숨 크게 내쉬고 이런 비슷한 대답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싫은데요. 전 게임을 안 좋아합니다. 물론 안 좋아해도 참으면서 할 수 있지만, 이렇게 강제로 협박당하는 기분으로는 도저히 못하겠네요.”


(아마도 술김이었으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하곤 그 길로 피시방에서 나왔습니다. 뛰쳐나오면서도 뒤통수가 찌릿했던 기억은 납니다. 그 뒤로 팀에서 공지해야 할 일이나, R&R과 같은 공식적인 일들이 퇴근 후 그들만의 “리니지”세상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저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쯤 되니 ‘아.. 이제 나도 그만 버티고, 동참해야 하나..’ 가 아니라(실제로 순간적으로 갈등했음) ‘계속 괴롭혀라.. 어차피 찍힌 거 난 끝까지 개겨 볼란다..’하고 더욱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출근길에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또 자리에 앉아서도 ‘지금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강요에도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하고 있지만, 언젠간 나도 실력으로 대우받을 날이 오겠지…’이런 비슷한 생각과 다짐을 수도 없이 되뇌며 보냈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쉽게도 드라마에서처럼 제가 탁월한 성과를 앞세워, 그의 상사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는 장면은 연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와 함께, 저는 곧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리니지” 강요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결과적으론 제가 이긴 건가요? 

부당한 강요에는 굴복할 생각이 없었기에, ‘어서 빨리 실력을 쌓아서 신입사원이라는 껍데기 밖으로 나와야겠다’ 하면서, 더욱 이를 악물고 일했던 것, 그 후엔 제가 더 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게 되었으니, 이건 보너스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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