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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걸작 Jul 20. 2023

장마가 지난 자리엔

예천을 강타한 장마의 중심에서

계절이 지나간 자리엔 새로운 비가 내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해를 거듭하여 빗줄기는 거세졌다. 침수되는 지역도 늘어났다. 도림천이 넘쳤고, 청춘은 훼손되었다. 올해의 비는 더욱 매서웠고, 자연재해와는 거리가 멀었던 이곳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강이 넘치고, 산이 무너졌다. 사람이 죽었다.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투입된 사람도 죽었다. 비는 잠시 그쳤지만, 강물은 투명함을 되찾지 못했다. 찾지 못한 사람도 많다.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 우리의 하늘은 여전히 지붕 너머로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비는 고된 일로부터 해방을 가져왔다.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 개구리들은 차고로 들어왔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책을 읽었다. 최고의 시간이었다. <등대로>, <매체미학>, <악의 꽃>, <위대한 개츠비> 등을 읽었고, 그만큼의 글을 썼다.


비는 계속 내렸다. 많은 삶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다. 아침이면 차고를 뛰어다니던 개구리는 말라 죽거나 밟혀 죽었다. 같은 시간에 강은 흘러 넘쳤고, 누군가의 희망을 짓밟았다. 삶은 사라졌고, 그러지 않았음 했던 방식으로 다시 발견되었다. 나의 스무 해를 담은 기억은 홍수에 떠내려갔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었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산은 무너졌고,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아주 먼 곳에서 편안하게 바라만 보았다.


활주로에는 커다란 비행기가 내렸고, 이윽고 헬리콥터가 따라왔다. 방송사, 경찰, 소방, 타군이 우리를 찾아왔다. 사라진 기억을 되찾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늘은 맑았다. 생명을 앗아간 하늘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길 재촉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민둥산이, 황폐화된 논밭이, 무너진 축사가 있다. 하늘이 맑아서 더욱 슬픈 오늘이다.


며칠 뒤부터 다시 비가 내린다고 한다. 더는 사라질 것이 없을 것만 같다. 세상은 시끄럽고 우리는 태풍의 눈에 있다. 주위에서는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곳은 너무나도 평온하다. 결국엔 새로운 생명이 들어설 것이다. 늘 그러했듯이. 망가진 터전을 새로이 고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어찌하든 예천의 여름은 잔인할 것이다. 흉년을 맞은 논밭은 이듬해 새로운 씨앗을 심기까지 생명이 자라지 못한다. 다만 그 흙이라도,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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