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룩의 <빈 공간>을 읽고
피터 브룩의 <빈 공간>을 읽었다. 큰 충격이었다. 그는 연극을 어렵지 않은 언어로 풀어낸다. 때로 숙련되지 않은 사람은 할 말이 없거나 너무 많아, 무지를 감추기 위하여 또는 앎을 과시하고자 말을 부풀린다. 어디에서 주워 들은 단어는 그의 요지에 맞추어 왜곡되고, 메시지 또한 빙빙 둘러 표현된 까닭에 보이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숙련된 사람은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내는 것이 그들의 능력이다.
<빈 공간>은 연극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늘어놓은 책이다. 책 곳곳에 그의 주관이 엿보인다. 그의 문제의식은 선배 연출가들이 구현한 무대를 당연하다는 듯이 반복하는 ‘죽은 연극’이 연극계를 지배하는 현실을 향한다. 연극을 애호하진 않지만, 나는 여러 극장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고전 연극은 대개 만족스러웠다. 반면 대학가 등지에서 공연되는 창작 연극은 매번 실망스러웠다. 저질스럽거나, 과장된 연극투의 말이 몰입을 방해했다. 그리고 주위의 관객들은 본인들의 열정을 과시하려는 듯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조그마한 소리에도 고개를 돌리며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연극이 제의의 일종으로 사용되던 시절, 사람들은 디오뉘소스 신을 기리고 신의 행동을 모방하며 카타르시스를 얻고자 했다. 연극이 종교적 가치와 무관한 독립적인 예술이 되었을 때, 관객들은 공연예술을 통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얻고자 했다. 이후 브레히트가 등장하여 현실을 무대 위로, 관객들의 마음 속에 보여주고자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연극은 누구나 관객이 되어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소중한 한 시간을 보내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극은 재미있는 것이어야 하겠다. 허나 연극의 오락성을 박탈하고자 하는 관객들이 있다. 그들은 극장의 분위기를 엄숙하게 만들어 카타르시스 대신 긴장을, 솔직한 평가 대신 꾸며낸 찬사를 종용한다. 한편으로 지루한 연극을 재미없다고 말하지 못하고, 좋아할 이유를 찾는 관객도 있다. 브룩에게 이들은 모두 ‘죽은 관객’이다. 연극의 역동성을 말살한 그들은 연극의 쇄신마저 가로막는다.
‘죽은 연극’, ‘죽은 관객’이라는 부정적인 이름표를 떼고도 우리의 연극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말로 변해야 될 시간이겠다. 하지만 이것은 어려운 말과 심오한 생각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으로, 연극이 언제나 사람들의 것, 정말로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적인 경험을 위해 극장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부푼 마음으로 첫 연극을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연극이 혼자만의 이상을 좇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브룩의 말은 명료하다. 그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며, 단지 연극이 무슨 주의니 무슨 연출가의 영향이니 하는 것으로 괴리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브룩에게 최고의 연극은 관객들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연극이다. 간단한 메시지를 위해 어려운 말은 필요하지 않으며, 변화를 원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말로 써야 한다.
나는 가끔 예전에 쓴 글을 돌아본다. 처음 도전하는 비평은 두려웠고, 미디어로 접한 비평가의 말을 따라했다. 비평을 어려워 했고 한편으로는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랐지만 쉽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는 비평에 대한 관심이 시들었고, 오히려 비평을 더 알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모르는 것이 더 많기에 조심스럽게, 쉬운 말로 썼다. 반응이 좋았다. 글이 마침내 제 목적을 이룬 순간이었다. 글로서 소통을 하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생명력’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예술이 어려운 설명으로 대중과 괴리된 탓에 어느새부터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가끔은 우리가 예술의 끈을 놓아 버리면 정말로 예술이라는 것이 특정 사람들만의 것이 되어버리지 않겠나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현실과 예술의 화해를 바라며 이것저것 노력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양극단의 광경을 이어주는 건축이나, 관객들에게 진정으로 와닿는 ‘살아 있는 연극’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빈 공간>도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며, 브룩은 머리를 싸매지 않고도 정말로 즐길 수 있는 연극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내게 전해진 메시지는 하나이다. 연극을 애써서 좋아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일상어로 쓰였다는 점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네 삶을 보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다가도 장면이 지난 뒤에야 어렴풋이 느껴지는 숨겨진 의미들에 다시금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로 애써서 연극을 좋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연극은 쉬운 말로 쓰였기에. 심오한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복잡한 삶의 메시지를 그보다는 단순한, 그래서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우리의 말로 표현하는 게 연극이라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단순한 말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