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혈연, 인연, 입양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친족원)로 구성된 집단.
가족의 범위: 현행 민법 제779조 (가족의 범위)에는 가족(가족원)의 범위를 기본적으로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의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혈족(부모와 자녀)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근래에 들어와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다. 이유는 운동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20대와 다른 30대의 체력은 1년이 지나갈 때마다 무거워지기에 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다니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 시작한 운동은 헬스와 수영인데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유치원 시절 시절 배운 수영이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면서 운전능력 같은 기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며 수영장 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직장 동기가 있어서 가르치러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렇게 좋은 운동이었나?'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며 꾸준히 다니게 되었다. 수영을 마치면 허기져서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 밥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운동은 유지하려 하는 듯하다.)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가족 얘기도 가끔씩 하는데 직장 동기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도 가족 아닙니까?"
이 말에 난 바로 "응 이젠 가족이네"라고 답해줬다. 가족이라고 말한 이유는 직장 동기도 곧 결혼할 여자 친구가 있고 우리 부부와 왕래도 자주 있었으며 타 지역으로 1박 2일 이상 여행도 갔었다. 많이 가까워진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기에 질문에 대한 답을 맞받아쳤다. 요즘 같은 세상은 가족이 한 집에 지내기보다 각자의 할 일로 밖에 있는 시간이 많다. 대게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남이 더 살갑게 느껴질 때도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인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제삼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주변에 주의 깊게 보지 않더라도 직접 들추지 않아도 가족과 유대관계가 그렇게 좋지 못해 남보다 못한 사이의 가족관계도 있다.
좀 더 가까이 느낄 수밖에 없는 게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가정폭력의 행태는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며 극악무도한 소식은 눈을 찌푸리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갈등으로 빚어진 문제가 결국 해결되지 못하며 타협이 아닌 이혼의 과정을 거쳐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아프리카 속담이 생각이 난다. 그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가 크기 위해서는 가족도 중요하지만 마을(이하:사회) 전체도 보듬어주고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정불화가 정서에 영향을 많이 주기에 커서도 그때의 기억은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기억된다. 결국 가정이 출발 선상에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하면 사회가 보듬어 줘야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아직 곳곳에 존재한다.
괴리 속에서 가정과 사회의 손길을 받을 수 없었던 직장 후배랑 한 대화가 새삼 생각난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을 알게 되면서 성인이 된 후에도 두 분의 생각은 존중 하지만 늘 한쪽의 빈자리가 많이 컸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따라오는 이혼가정의 자녀 딱지가 선입견으로 뭐든지 마이너스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했지만 상대방 부모님이 자신의 가정환경을 듣고 만나주지도 않았으며 바쁘다는 이유와 아직 만날 시기가 아닌 것 같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이별로 이어지게 됐다.
사회는 가정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워줄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보듬어 줘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법으로 지원 한다한들 사람의 마음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건 소수일 뿐 규제로 움직이는 행태가 전부고 규제의 기간이 끝나면 고유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동정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사회와 우리들의 역할은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존재하며 이런 환경들이 차별받지 않고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좀 더 포용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든다.
가족도 헤어지면 남이에요. 남보다 못할 수 있어요.
후배의 부모님 이혼 시절의 얘기를 듣다가 마지막에 한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가까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서로를 몰라서 각자의 길을 걸었구나' 라고 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살아가기에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사람의 됨됨이를 추측하게 하고 그 모습이 반복되면 확신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성품이나 성격은 추측할 수 있어도 가족관계까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 말이 편해지며 편해진 만큼 호감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가족관계에 대해 말하게 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장남 같으신데요?', '동생이 있으시죠?', '항상 밝으신 거 보니 부모님도 따뜻한 분이실 거 같아요.', '어른들이 자랑스러워하시겠어요.' 등
친밀감이 높아져 그리고 유대관계가 형성이 되면서 편하게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이제 가족이지' , '형제 아닙니까?' 등 앞서 얘기한 후배처럼 상대방이 기억하는 가족의 기준이 일반 가족 구성과 달라 씁쓸함으로 받아들이거나 아픈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을 들춰내는 일이기에 고민이 많이 된다. 정답은 없지만 지금은 그저 가족 같다는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쓴소리도 가끔은 해주고 안부를 묻는 정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