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길잡이.

by 하르엔

1. 나비는 절대자


도깨비: 넌 신을 본 적이 있어?
저승: 나 같은 말단이 어떻게 신을 봐
도깨비: 난 봤는데.
저승: 어떻게 생겼는데?
도깨비: 그냥 나비였어.

-도깨비 대사 中-


날이 풀려가는 요즘 꽃이 활짝 만개하고 봄의 향이 은은히 퍼지는 요즘 한 드라마가 생각난다.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도깨비. 우리나라 전통 도깨비의 고증을 완벽히 하면서

[도깨비=공유]로 자리 잡은 드라마다. 완결까지 시청하게 된 건 종영되고 1년 후다. 한꺼번에 몰아서 보는 걸 선호하고 취업준비로 티브이를 보지 않았기에 혼자 뒷북을 열심히 쳤다.


도깨비 드라마를 본 사람들에게 '와 드라마 대박 진짜 재밌네'라고 말하면 '헐... 이제 봄?', '어떻게 이걸 이제 볼 수 있음? 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라. 가끔 공유의 대사를 따라 해 아내에게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를 해주다가 등짝 스매싱을 맞은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도깨비 중 가장 기억 남는 장면이 있다면 나비가 신비롭게 날아와 사뿐히 앉는 장면이다. 나비의 첫 등장은 1화부터 자신의 몸통보다 큰 날개로 날갯짓을 하며 나온다. 가슴에 검이 꽂힌 채로 들에 버려진 상장군 김신의 검 손잡이에 사뿐히 앉아 있는다. 이후 중간중간 등장하며 절대자의 이미지를 확실히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본 나비의 모습은 써니의 가게 앞에서 비를 맞고 있는 아이(신)를 가게 안에 들어오게 하며 기억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자신의 가게에선 신이라도 물은 셀프로 마셔야 한다고 하며 전생의 기억을 줬다가 다시 지우는 신의 손바닥에서 몇 명이 놀아난 건지 모르겠다고 한다. 시무룩해진 아이(신)는 이어서 "망각은 인간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요? 고통스럽지 말라고"라고 말한다.


이어 써니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라니 제발 좀 꺼져줬으면 한다." 고 말을 하며 아이(신)는 "그럴게요." 라며 주변에 맴도는 아이의 곁을 떠나게 되며 써니의 기억만은 온전하게 기억될 수 있었다. 나비는 그렇게 나비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2. 나비는 길잡이


도깨비 드라마가 기억 속의 한 곳을 차지하고 나비가 나타나는 계절이 다가와 날아다니면 가끔 절대자의 이미지로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러던 며칠 전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산소를 가는 길에 신기한 경험을 했기에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일이 상식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겠구나 라는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또 드라마 같은 일이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하며 지난 하루를 되돌아보는 날이 되었다.


코로나 창궐 이후 오랜만에 가는 산소이기에 어머니와 간단하게 과일과 포를 준비하고 어머니의 조상들을 모신 납골당에 먼저 인사드리고 외할아버지 산소에 가는 중이었다. 날씨는 화창 하나 강풍이 심하게 불어 마치 오지 말라는 시련을 주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 없었기에 강한 바람이 모질게 밀어내도 산행을 이어갔다.


우리가 밟은 길은 사람의 발걸음이 자주 닿지 않아 풀이 우거져 있었고, 올라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에 당황하신 표정이 보였다. 올라가는 길을 찾으려고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산 쪽을 보고 있는데 흰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우리 앞 주위를 돌고 있었다.


순간 어머니께 "봄이라 나비가 날아다니네요. 나비 좀 보세요."라고 말씀드리는 순간 "찾았다. 올라가는 길. 나비가 지금 있는 곳이야"라고 하시며 얼른 올라가자고 재촉하셨다. 나비는 그렇게 길을 잡아주고 산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고 지난여름 폭우로 길은 엉망진창으로 산행은 힘들었고 중간쯤 도착했을까? 한줄기 희망처럼 다가온 나비가 주변을 돌다가 우리 앞으로 날갯짓을 힘차게 하며 날아갔다.




3. 마중하는 나비


앞으로 날아간 나비는 또 길을 안내해 주듯 우리 앞을 지나친 뒤 소리 없이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헤매는 길을 두 번이나 잡아주며 어머니와 나는 산의 정상에 계시는 외할아버지 산소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가쁜 숨을 돌리며 앞서 차린 것처럼 돗자리를 펴고 포와 과일, 소주를 준비해 옷매무새를 갖추고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는 그간 잘 계셨는지 안부를 묻고 나와 번갈아가며 술을 따라 드리고 잠시나마 돗자리에 앉았다. 가져온 과일로 등산의 갈증을 축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길을 안내한 나비 얘기를 먼저 말씀드렸다. "외할아버지께서 나비를 통해 길을 알려준 거 같아요.", "그러게 우리가 오는 걸 알았는지 외할아버지가 마중 나오셨나 보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잠시 외할아버지 산소 앞에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하다 짐을 챙겨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갔다. 한번 올라온 길이라 수월하게 내려갔다. 다 내려올 무렵 보이지 않던 나비가 갑자기 나타나 마치 인사하듯 우리 주위에서 돌았다. 그리곤 어머니께서 가까이 있는 나비를 보며 "다음에 또 올게요."라고 말하시니 인사를 받음과 동시에 나비는 산으로 날아가 모습을 서서히 감췄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지만 나비는 포착되기 싫은 듯 사진에 나오지는 않았다.



누군가 내게 의미부여를 너무 하는 게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자신도 믿기 힘들지만 나는 그냥 도깨비 드라마 대사처럼 말해주고 싶다. 그날 날이 좋고 적당한 어느 날이어서 한 번쯤은 의미를 두고 싶다고. 태어나기도 전에 자연으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존재를 나비로 봐서 신기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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