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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06. 2024

ROLLERBALL

<롤러볼> 한 바퀴, 두 바퀴... 모든 것이 멈출 때까지

[ROLLERBALL 1975]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었을지 몰라.”


 미래든 현재든 과거든 삶을 반영하는 이야기에는 주제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단어는 인간사 전후의 설명이 상실된 ‘사랑’이고, 그래서 사랑은 모호하기 그지없다. 이 말은 왜 등장한 거지?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에너지에 미친 인간들. 냉혹한 기업전쟁. 인간의 질문에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용량초과의 컴퓨터. 생각도 없고 꿈도 없이 시간을 소비하면서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 안정과 쾌락을 선택한 사람들. 평온해진 인간들에게 더 이상의 선택이 사라진다면, 혹은 일말의 걱정거리가 없다면 자극적인 흥밋거리부터 찾게 될까?


 부패한 성직자와 성역이 고취된 작가의 행적이 총체화된 기억 밖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태초의 혼란이 다가옴에 그다지 아쉬워할 사람도 없고 불행의 원인이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세를 따라가는 일만이 남았다. 왜 그런지 묻지 말고 누구나 살듯이 그렇게 비슷하게 맞춰가며 살기만 하면 된다. 머리와 생각이 사라진 인간의 동일한 삶이란 규칙도 없고 페널티도 없고 시간제한도 없는 무자비한 스포츠 게임에 길들여가는 것이다. 무작위로 동전을 밀어 넣고 그 동전을 줍는 손이 헛된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최음제로 각성된 광적인 흥분상태가 지나가면 허탈과 무기력에 빠지고 이 주기는 점점 짧아질 것인데....


 어느 날 나를 받들던 손이 멈출지 모른다. 나의 질문은 태초의 탄생에서부터 다시 떠오르게 되겠지. 너는 누구인가? 저들의 함성은 정말 나를 부르는 것인가? 나는 왜 달리고 있을까? 왜.. 왜...!


2006. 2. 19. SUNDAY


 

 "In the not too distant future, wars will no longer exist. But there will be rollerball."

 "머지않은 미래에 전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대신 롤러볼이 있을 것이다."

 《Roller Ball Murder, William Neal Harrison


 윌리엄 해리슨의 단편을 개작한 1975년의 영화 <롤러볼>은 당시로부터 43년이 흐른 뒤의 세계, 지금으로부터 6년 전, 2018년의 미래를 그린다. 기업들의 지배적인 성향과 파괴적인 본능, 인간들의 생존을 향한 공격성과 극렬한 경쟁심이 전쟁을 대체하며 폭력적으로 롤러볼이라는 스포츠에 투영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타원형 경기장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서 속도와 민첩성을 발휘하며 신체적 태클을 통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롤러 더비(Roller Derby)에서 모티브를 딴 <롤러볼>은 거대 자원과 인력을 동원하고 파괴를 일삼는 대규모 전쟁을 불사할 수 없다면, 통제된 사회에서 본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체를 찾아야 하는 필연적인 사회 구조와 인간 심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의 의식은 알게 모르게 이미 방대화된 기술과 집단화된 기업들과 조직체의 의지 속에서 회전하는 오락성에 길들여져 사회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 롤러볼이 제시하는 미래, 즉 현재로부터 가까운 과거는 단순히 하나의 현상에만 국한된 설명은 아니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환경에 적응하고 심리까지 변화한 인간의 습성은 살인조차 합법적으로 만드는 규칙을 형성하였고, 정치판에서나 사회판에서나 경제판에서나 문화판에서나 예술판에서나 그 어디에서도 합리라는 잣대가 상실해 감은 분명해지고 있다. 누가 정상적인지, 악귀는 어떤 모습인지, 도덕은 존재하는지, 인간 본연의 형상은 무엇이었는지 그 누구도 설명하기 어렵다.


 현재 세기말에 겪었던 디자인이나 음악, 문화들이 복고적인 향수로 인식되며 올라오는 것을 때마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살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과거를 추억하며 옛날로 복귀하고자 하는 애틋함은 쓸모가 없다고 여겨진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과 조우할 때면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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