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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Nov 19. 2024

술!!!!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누구나 본인이 겪은 군생활에 대해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듯이 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이다.


술에 한 역사적인 기원이나 유래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 있지만 인류의 탄생이전에 이미 곡물이나 과일이 발효된 술은 그 자체로 존재했을 것이고 인류의 탄생과 동시에 술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술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엄연히 마약으로 분류한 중독성 물질이라고 한다.

술, 자체가 불법인 나라들도 있고 중독성에 대한 우려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음주에 대한 연령제한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 보호법으로 술을 구입할 수 있는 나이를 만 19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사실상 실효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은 법적 기준이라도 있지만 1960 ~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어른들의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처음으로 술을 접한 경우가 많았다.

동네 술도가나 대폿집 술 심부름은 대부분 집안의 제일 꼬맹이를 시켰고 심부름도중 술 주전자 주둥이를 넘쳐흘렀던 술은 꼬맹이들의 입으로 들어갔던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이었다.



술을 금기시하는 중동국가에서도 가정이나 개인적인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나 마찬가지다.

80년대 중동 건설현장에서 근무 시 현장 숙소에서나 개인 가정을 방문할 때면 늘 술을 마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과거 식량부족에 시달렸던 우리나라는 1964년 정부에서 "양곡소비절약 지침"을 시행해 고구마를 제외한 다른 원료로는 증류식 소주 및 주정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바람에 순도 95%의 알코올에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증류식 소주의 생산과 판매를 자유롭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격이 보다 저렴한 희석식 소주가 대중주로서의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고 있다.



술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각종 모임이나 행사 그리고 모든 비즈니스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어느 모임에서나 빠지지 않는 건배도 술잔을 비운다는 의미로 인간관계에서 술이 없는 모임은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쁨은 나누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술자리에서는  기쁨이나 슬픔을 지인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고 요즘 많이 늘어난 혼술도 알고 보면 혼자서 조용하고 오붓한 시간을 즐긴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술은 여러모로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음주는 사실 긍정적인 보다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적당한 술자리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도 하고 초면의 어색한 분위기를 좋은 분위기로 반전시키기도 한다.

또한 국가수입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주세와 술과 관련된 사업이나 일반가게의 매출을 모두 합친다면 한 나라의 국가경제에서 술과 관련한 금액은 상상하기 힘든 천문학적 숫자가 된다.

한 마디로 술로 생계를 유지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니 술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폐해에도 불구하고 국가적으로 음주를 금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속칭 "막걸리 한잔"으로 대박 난 가수도 있지만 음주운전으로 인해 한순간에 천상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빠진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아주 드물게 "적당한 술은 건강에 좋다."라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믿을 건 못 되는 것 같고 음주는 대부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다.

사회적으로 필요악이 된 술로 인한 사망자가 우리나라에서 년간 5천 명이 넘고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10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술 소비는 줄어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우리나라 남성들의 술에 대한 부심은 유별나다.

술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모든 만남의 시작이다.

한때 대학 신입생 환영식에는 사발주라고 해서 국 대접에 술을 가득 부어 먹이는 관례가 있었다.

개인의  술에 대한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술을 먹이다 보니 사망사고가 나기도 했고 그 이후 줄어들기는 했지만 사발주 의식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업에서 업무추진을 위한 접대비도 술과 직ㆍ간접으로 연관된 비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공무원사회에서도 아마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퇴근 이후 잦은 술자리 스케줄은 다양한 친분관계 즉 사회적 네트워킹을 은근히 과시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영업을 담당하는 사람은 매일 저녁이 술자리라서 한때는 술상무가 직책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술을 조금씩 즐기는 편이지만 나도 젊은 시절에는 어느 정도 마셨던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모임자리가 대부분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다음 직장생활, 특히 건설회사에 다니면 술은 으레 껏 많이 마시는 걸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


술자리를 단순하게 분류해 보면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군과의 술자리와 적군과의 술자리!!!

아군의 범주에는 아무래도 기분 좋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친구, 연인, 후배, 가족, 친한 지인들과의 술자리일 것이다.



이런 술자리는 즐거운 기분으로 마시다 보니 술맛도 나고 평상시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한다.

본인의 주량에 맞춰 마실 수 있으니 웬만해선 과음을 하지 않아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일도 적다.

문제는 적과의 술자리다.

술을 좋아하는 상사,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영업대상자, 마음에 들지 않는 지인 등 불가피하게 하는 술자리는 적과의 동침이다.

나의 의지대로 끝낼 수도 없으니 과음을 하게 되고 앉은자리는 가시방석이나 마찬가지다.

술자리가 끝난 후 뒤처리까지 대부분 나의 몫이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런 술자리의 후유증은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밤새 토하며 잠을 못 자고 다음날도 숙취로 일상생활이 어렵고 그 파장이 며칠 동안 지속된다.

함께 생활하는 아내와 아이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아니 과음을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하지만 그게 어찌 내 마음대로 될 수 있겠는가?


더욱 심각한 것은 기억의 필름이 끊기는 순간이다.

눈을 떠 보면 집에 온 것은 확실한데 "집에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심지어 지갑의 돈이 비어 있기도 하고 온몸이 상처 투성이가 된 적도 있었다.

몸과 정신을 가누지 못한다는 것은 목숨을 길 위에 내 팽개치거나 남의 손에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행히 좋은(?) 기사분들을 만나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지만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지며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도 한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직장에서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올라가면 술에 대한 취향도 변하고 주량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적들과 마주하는 자리가 줄어들고 술자리에서 마주하는 상대편 입장에서 보면 내가 적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옛 일을 반추하며 가능하면 술자리를 자제하지만 실상은 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분 좋은 날이나 마음이 울적한 날 그리고 맛 난 음식을 먹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술이 생각난다.

그런 날은 제대로 술을 마셔 보겠다는 의욕이 넘쳐 술잔을 입에 대 보지만 체질상 몇 잔으로 끝이 난다.

과음을 한 다음날이 두렵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몸이 술을 많이 받아 주질 않는다.

지금은 소주 한 병정도가 내  주량의 한계인 것 같다.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을  시키면 남은 반 병은 아내의 가방에 넣어 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대학생 때는 막걸리나 맥주, 직장 신입시절에는 소주나 고량주, 중추적인 업무를 맡았던 시절에는 양주나 와인을 마셔 보기도 했지만 지금 나의 최애주는 소주다.

입가심으로 소맥 한 잔을 한 다음 마시는 소주 몇 잔은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기분을 좋게 한다.

비록 남자답게 말술을 마시지 못하지만 어쩌면 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체질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술 한 말을 지고는 못 가도 먹고 갈 수 있다!!"는 아버지는 술로 인한 풍으로 세상을 뜨셨고, 얼마 전 절친이었던 친구가 간암으로 이승을 떠났는데 아마도 술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 축구를 자기 몸보다 더 좋아했고 경기를 할 때면 늘 파이팅이 넘쳤던 그 친구는 축구에 대한 진로가 막힐 때마다 술로 울분을 삭일 때가 많았다.

풀리지 않은 가슴속 응어리는 술과 함께 결국 친구 몸에 암덩어리로 남은 것 같았다.


가까이하고 싶지만 나로서는 흔쾌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술이다.


아이러니하게 술을 품기 어려운 그 체질이 지금 내 건강의 보루가 되어 나를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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