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엄마 사랑
발령이 났다. 부서가 바뀌고 보직이 변경됐다. 엄마는 내 후임으로 누가 왔는지 물어본다. 나이가 나보다 어린 여성이고 이번에 첫 팀장을 맡게 된 사람이 후임으로 왔다고 대답했다.
- 나이 어린 여자팀장? 잘할 수 있을까?
- 글쎄. 알아서 잘하겠지.
- 그동안 니가 잘했잖아.
- 잘했지~ 그동안 내가 좀 잘하긴 했지. (으쓱!)
어느덧 나는 엄마에게 한 일을 한껏 뽐내는 어린 딸이 되어 약간은 오버스럽게 으스대며 대답했다.
- 새로운 사람하고 일해봐야 그동안 니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잘했는지 너희 부서장이 알게 될 거다.
- 그렇지, 그렇지~ 내가 없어봐야 내 소중함을 알지~
- 그럼 그럼. 우리 딸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데 그걸 모르고 지가 잘난 줄 알고 말이야. 흥이다! 흥!
- 푸하하 하하하하. 맞다. 흥이다! 흥!
엄마에게 부서장과 있었던 일을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내 맘을 알고 저렇게 말하는 거지? 얼마 전 연말 행사에서 있었던 속상한 상황을 지나가듯 한마디 한 걸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나이 40을 넘어 50을 바라보는 딸에게도 앞뒤 상관없이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준다.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내 속상함을 알아주고 나 대신 직장 상사에게 흥!이라고 해주는 엄마 덕분에 속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내 유년기는 불행했다. 내 아버지는 돈을 벌지 않았다. 사회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직장생활을 길게 하지 못했다. 가족의 울타리가 되지는 못할망정 힘없는 처자식을 괴롭히고 폭력을 휘둘렀다. 덕분에 우리 집은 가난했고 아버지가 있는 집은 지옥이었다. 돈 안 버는 아버지 대신 자식 굶기지 않으려고 엄마는 공장을 다녔고,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고 언제나 불안했다.
엄마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나를 대학에 진학시켰고 어떤 상황에도 내 편을 들어줬다. 그런 엄마가 계셨기에 나는 남들에게 비굴하지 않은 당당함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긴 한다. 그러나 빠른 눈치가 직장생활에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섬세하게 대처한다. 물론 이런 성격이 나는 피곤하고 힘들다. 자신감 넘치며 남 눈치 안 보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 준 우리 엄마의 자식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