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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작 Nov 22. 2022

여기 제가 먼저 서 있었어요.

    의도적으로 나의 거소는 직장과 가까웠다. 자전거가 주요 이동 수단일 만큼 적당히 가까웠다. 춘추에는 날이 좋아서 라이딩을 즐기고, 여름은 더워서 피하고, 겨울은... 겨울은 추운 맛이 있어 즐겼다. 자전거를 못 타는 경우도 물론 있었다.


    다음 대안은 버스다. 창밖을 보고, 음악을 듣고, 밀린 일을 하고, 글도 쓰면서 버스에 앉아 이동을 했다. 그 다음 대안이 지하철이다. 거의 탑승하지 않는다. 거의. 어떤 수를 써서라도 타지 않으려 한다.


    결혼 후 일산에 거주하면서는 좀 더 자가용이 필요했다. 의도적으로 나의 거소와 직장을 쉽게 조율하긴 어려웠다. 어릴 적, 어머니와 장을 보러 나가면 항상 차로 이동하고는 했다. 비록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거듭 생각했다. '집 앞인데... 가까운데 왜 차를 타시지? 걸어도 될 텐데.' 자취하던 총각 때만 해도 그 생각이 유효했다만 이제는 아니다. 도보는 집에서 주차장까지가 전부고, 주차장에서 회사까지가 전부다. 만보기를 켜 보지는 않지만 몇백 걸음이 전부이지 않을까.


    과거, '지하철 속 인간'에 대해 몇 개월간의 심도 있는 공부를 한 적 있었다. 돈을 받고서 일을 했기에 결코 가볍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공부였다. 골자는 그렇다.


"왜 지하철이 싫을까?"



왜 이렇게 지하철이 싫을까?

사람들이 너무 붙어 있어서?

휴대폰만 보고 있는 우리 모두에 대한 염증인가?

쾌쾌한 냄새인가?

지하가 주는 불쾌함인가?

좌우의 흔들림인가?

자리 욕심을 내는 아무개가 원인인가?

상실된 감각으로 툭 치며 지나가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기어코 비집고 들어와선가?

좌석이 더러워 보여선가?

발이 밟히기 좋은 동선인가?

이 모든 것인가?

빨리빨리의 산물일까?

소란스럽나?

휴대폰을 보는 내 꺾인 목이 멀미를 일으키나?

무엇보다 나를 빠르게 배송해 주는데, 도대체 왜??



    지하철을 좋아하는 아무개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일절 없는 글이다. 다만...


    "오늘 저녁에 술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을 탔는데 말이야. 아무개께서 내가 서 있는 곳을 기어코 비집고 들어왔거든. 내가 서 있던 자리를 탐하는 행위를 겪고서는 말이야. 내 접힌 목을 펴서 좌우를 살폈어. 저기... 저기 자리 많은데... 굳이[구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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