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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작 Jul 21. 2023

두 명의 요리사와 아홉 명의 손님들

    오염수 방류 소식을 접하고, 아내와 나는 의논했다. “뭘 좀 사 놓아야 하는 거 아니야?”, “김이나 해산물 뭐든 사 놓자.”, “사람들이 소금을 그렇게 사던데?” 불안한 마음은 꽤 있지만, 소비는 크지 않았다. 도시락김 16봉짜리 세 개 그리고 마른미역 세 봉지. 우리의 식단에서 소금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국제적 이슈는 차치하고 아내와 나에게 든 제법 큰 걱정은 바로 ‘건강한 초밥을 먹을 수 있을까?’였다. “아무래도 피하는 게 낫지 않을까?”, “방류가 언제지? ”, “준비는 다 된 거 같던데?”, “우리... 오마카세 갈까? 맘 편히 먹을 수 있을 때 다녀오자.”




참다랑어 속살


    작년, 아내의 생일을 맞아 처음 접한 스시 오마카세. 오마카세는 다르다는 아내의 확신은 이제 나의 확신이 되었다. 니은자 탁자, 그 가운데 요리사.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앉아 있는 손님들. 첫 음식이 나오기 전, 기대감에 눌러진 카메라 셔터들. 하나씩 하나씩 음식에 설명을 곁들이고 보는 식감은 풍성했다. 그 와중에는 혼자 앉아 태블릿을 보며 이어폰을 끼고 음식을 먹던 한 남자가 유독 눈에 뜨였다. 모니터 한 번, 음식 한 점. 요리사의 설명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단골일까? 아니면 그저 맛만 있으면 되는 걸까?’ 그에 대한 관심은 이 정도만 하고는 접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그의 태블릿에는 가족사진이 있었고, 그 또한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라는 사실 말이다.




잿방어


    나는 남편이다. 그리고 아빠가 되기를 기다린다.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어느덧 식당을 가던 카페를 가던 공원을 가던 마트를 가던, 가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와 모 중 한쪽이 결여된 가정이든 양쪽 모두 한 가족의 구성이 되어 있든 자녀가 있든 자녀가 없든 이제는 가족이 보인다. 개별의 아내와 개별의 남편, 개별의 아이를 한데 묶는 공통집합, 가족. 가족이 생겼다는 것을 나름 정의해 보고 싶지만, 좀 더 영글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혹은 타인이 생각하는 가족을 들어 보고 싶다.)




전복과 전복 내장


    “못 드시는 거 있으세요?”라는 물음에 니은자 탁자에 앉은 아홉 명은 순간 생각을 돌린다. 니은자 끝에서부터 한 분 한 분 정중히 여쭙는 요리사. 상관없다는 말부터 오이를 빼 달란 말도 지나갔다. 나는 갑각류 알레르기를 밝혔고, 다른 이는 고개만을 휘저었다. 스시 오마카세. 한 시간 반에 두 시간 가량의 식사 시간. 십만 원 전후로 하여 다양한 가격대와 다양한 음식들. 가격과 시간을 뒤로하고 가장은 상호 간 예의를 차리는 식사 시간이어서 좋다.


나는 당신에게 내 기술과 재료의 최선을 드릴게요.
나는 당신의 성의와 음식을 정성스럽게 먹을게요.




차완무시

    

    오마카세를 즐기는 단 몇 시간은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우리를 사랑하는 시간이 된다. 그 사랑은 곧 나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고, 내가 아내에게 보이는 존중이며, 우리를 둘러싼 두 사람의 요리사와 아홉 명의 손님들에 대한 존중이 당연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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