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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시간 글쓰기

읽기 다음은 쓰기

by Daniel J
"진실로 글로 전하지 않으면 누가 지금의 나를 알겠는가"
김금원(1817 ~ ?)


지금까지 왜 책을 읽었고 어떻게 읽으면 좋으며 책을 어떻게 고르면 되는가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이웃인 글쓰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목표로 독서 까지는 어떻게 하겠지만 일기 쓰기 같은 글쓰기를 목표로 잡지는 않는다. 아마 쓰는 것만큼은 뭔가 부담을 가지고 거부감이 들 것이다. 독서는 주어진 것을 읽으면 되지만 쓰기로 넘어가면 막막함이 느껴진다. 나라고 다르지는 않다. 읽고 싶은 책은 어디서든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할 수 있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책상 위에서 노트나 노트북을 열어야 하고 집에서는 쉽게 집중하지 못해서 항상 집 근처 카페에서 쓰고는 한다. 나도 이 글이 매끄럽게 한 번에 써지지 않았다. 군대에서 독서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써봐야겠다고 기획을 했던 것이 수년전이고 지금의 이 글을 마무리하는 나는 예비군 마지막 8년 차를 지나고 있다. 브런치북에 조금씩 쓴다는 것도 거북이걸음처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십 번 고쳤으며 이미 발행한 글도 계속해서 고쳤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을 기억하며 읽기에 한 문장이라도 거슬린다면 다시 한 번 더 고민하였다. 쓴다는 것이 읽기보다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지적 활동이기에 그럴 것이다.


꾸준한 글쓰기는 독서 못지않게 긍정적이고 좋은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더라도 공감을 할 것이다. 인지심리학자로 유명한 김경일 교수는 글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말하였는데 직접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발상이 자연스럽게 나오며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 마음의 안정, 회복 탄력성 증진 등 심리적 치유 효과등 거의 심리학 측면에서는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나온다. 최근 높아진 건강관심에 이어 '저속노화'로 유명한 정희원 의사의 책 [저속노화 마인드셋]에서는 글쓰기를 자기 돌봄의 시작이라고 소개를 하며 한 챕터를 통째로 글쓰기를 통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과학적 근거로 서술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자기 돌봄의 시작이며 글쓰기를 통해서 뇌 활성화 및 인지 발달을 기대할 수 있다. 앞서 김경일 교수가 소개한 것처럼 복잡한 감정 표현이나 일기 쓰기 등 글쓰기를 통한 감정 배출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심리적 안정과 불안 감소에 효과 있다고 한다. 달리기, 명상처럼 글쓰기는 저속노화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 중 하나로 마음의 회복탄력성과 행복감,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강력한 도구이다.


약간 잔소리처럼 글쓰기의 효능, 효엄에 대해서 소개해보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써볼까. 나의 상황이나 복잡한 감정을 써보는 일기도 물론 좋지만 지금까지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 한만큼 독후감으로 한번 시작해 보자 하지만 독후감은 뭔가 익숙하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단어라고 생각된다. 평소에 독서는 하더라도 독후감은 커녕 어떤 종류의 자발적인 글을 써본 적은 언제가 마지막인가? 아마 높은 확률로 자발적이기보다 회사의 업무나 학업과 관련된 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에 독후감 써보신 적 있으신가요?

매달 2~3권의 책을 읽으면서 독후감이나 독서일기를 꾸준하게 쓸 것처럼 이야기했으면 좋겠지만 나도 독후감을 써본 적은 굉장히 오래되었다. 집중적으로 매달 독후감을 쓰던 시기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는 군대에 있을 때다. 이때 왜 매달 독후감을 쓰게 되었는지 물어본다면 글쓰기를 통해 나아가고자 한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 거창한 이유보다 솔직하게 대대 독후감 포상휴가가 탐나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독후감을 쓴다고 포상을 무조건 받을 수 있을 거 같지도 않으니 설령 못 받더라도 고등학생 이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독후감을 군대에서 꾸준히 쓰는 것도 괜찮은 경험인 거 같아서 못해도 1달에 1편을 써 내렸다. 일과 후에 늘 읽는 게 책이었으니 여러 책을 읽다가 독후감을 쓸만한 것을 생각해 두었기에 그저 무작정 읽다 보면 아 이 책은 독후감 쓰기 좋겠다는 느낌이 오는 책을 골랐다. 두 번째로는 대학생 때 독서토론동아리를 오랫동안 꾸준하게 활동하였다. 당시 독서 모임 규칙은 참석할 때 질문거리를 한 개 정도 만들어오거나 이마저도 부담스러우면 생략하였으나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워드프로세서에 레이아웃은 좁게 9포인트 글자크기로 A4 한 페이지를 꽉꽉 채워서 나갔다. 토론에 임하는 내가 책을 더 잘 이해하여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기에 그런 욕심을 부렸었다.


쓰기 전에는 모르는 착각

그렇게 독후감과 독서노트 질문지를 계속해서 쓰게 되었을 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먼저 글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부류의 활동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는 생각보다 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분명 잘 알고 있다고 이 내용과 나의 생각을 독후감에 충분히 녹여 쓸 수 있겠다고 보았지만 결국 다시 책을 들쳐보면서 확인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였다.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과 정말로 알고 있다는 것은 엄밀하게 달랐는데 이는 글을 써서 정리하기 전에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메타인지라고 하며 EBS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31eibai77NvsttiyF9m7CUacGS8.jpg 2010년 EBS 학교란 무엇인가

EBS 실험 중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두고 실험을 했는데 영어단어를 짧은 시간 암기하게 하고 맞춰보는 간단한 실험이었다. 정답 결과만 놓고 봐서는 영어단어를 비슷하게 암기를 했다. 단 그전에 질문을 한 가지 하였는데 영어단어를 몇 개나 맞출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해 보라고 했을 때 공부를 잘하는 그룹은 예상과 실제 암기한 개수가 차이가 적거나 없었지만 공부를 못하는 그룹은 이 개수가 크게 차이가 났다. 대충 알고 있다는 느낌에 스스로 속아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르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을 비교하는 작업을 반복해서 거친다면 메타인지를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1. 나의 생각과 감정을 지켜보고 알아차리는 명상
2. 내가 나를 가르치기
3.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글로 써 보자
4. 매일 보는 풍경에서 낯선 풍경으로

[뇌과학] 내 머릿속의 거울, 메타인지 -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실제로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글로 꺼내는 과정은 메타인지를 키우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재해석의 과정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분명 책을 잘 읽고 내용도 충분히 잘 알고 있으니 금방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이는 완전히 착각이라고 하였다. 책이 설명한 개념과 이야기를 잘못 적은 것을 보고 다시 책을 짚어가며 독후감을 썼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그저 책의 내용을 안다는 느낌에서 나의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책을 읽고 나서 잘 안다고 착각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는 문장, 단어의 파편화 때문인데 책을 읽었다는 내용의 느낌과 단어의 조각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쉽지만, 이 조각을 가지고 완전한 하나의 그림, 문장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고차원적인 지적 노동이다. 단어 파편을 주워 담으며 알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지 못하면 이 과정이 굉장히 힘들며 다른 말로 재해석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저자가 의도한 바를 완전히 일치시킬 필요도 없다. 어차피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같은 책을 읽더라도 다른 감상문이 나올 수 있다. 간단한 독후감조차 쉽게 쓰기 힘든데 우리가 보는 책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 쓴 남의 말이고 감상문, 독후감, 설명과 같은 나의 말로 바꾸고 재해석하는 작업은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다. 이 과정을 겪게 되니 처음에는 포상이 목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나의 글쓰기 실력을 목적으로 하고 포상과 관계없이 한 달에 한편씩 꾸준하게 글을 썼다. 그 과정이 재해석의 훈련이 되었고 지금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독후감 어떻게 써야 할까

사실 여기서는 거창한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독후감을 여러 편 낸 적이 있지만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다. 내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고 딴짓을 하지 않아서라고 하기에는 어른들도 글쓰기는 잘 모르지 않았을까. 초등학생 때 어느 선생님이 독후감은 줄거리를 요약해서 쓰는 게 아니라고 말한 기억이 남아 있을 뿐 그것 외에는 전무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독후감을 쓰게 해 본다면 책이 참 좋았다 이외에 다른 말을 기대하기 힘든데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글 쓰는 것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독후감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마치 제품을 사용해 보고 장단점을 설명하는 것처럼 책을 읽고 나의 감상을 적으면 되지만, 이는 나의 느낌을 글로 구체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어려운 작업이다.


앞서 독후감에 대해서 설명할 때 사용한 단어가 재해석과 파편화라고 했는데 독후감을 쓰기 어렵다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는 파편(느낌)을 하나의 형태(문장)로 만드는 재해석 작업이 힘든 것일 수 있고, 두 번째는 그나마 이해한 내용이 너무 적어서 파편 자체가 너무 부족해서 문장으로 만들기가 어렵거나 안 만들어지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조금만 신경을 쓰고 나의 느낌을 재해석하는 연습을 한다면 금방 글을 쓸 수 있지만 후자는 책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책 자체가 내용이 형편없어서 독자에게 아무런 기억이 남지 않는 경우이다. 나도 읽은 책에 대해서 코멘트하고 블로그에 포스팅하려고 노력하지만 종종 분명 읽었지만 막상 아무것도 남지 않는 책을 접하고는 한다. 사실 이런 책을 두고 독후감이 써지지 않는 것은 본인 잘못이 아니다. 전적으로 저자의 책임이다.


그렇면 어떤 형편없던 책의 경우를 넘어가고 다시 전자로 돌아와서 느낌은 있지만 문장이 안 만들어진다면 전체 그림이 아닌 부분 부분 작게 쪼개는 방식을 권한다. 독후감이 책의 전체 내용을 한꺼번에 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작게 나눈다면 훨씬 수월한데, 나누는 방식은 다양하다. 목차와 챕터별로 나눌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읽다가 마음에 남는 부분만 기억이나 메모를 해두었다가 해당 부분 부분을 독후감을 써나가도 좋다. 그리고 읽을 때 이해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좋아하는 부분을 문자로 옮길 때는 또 다르게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각 부분을 독후감을 쓰고 마무리를 지으면 된다. 이런 글을 쓰는 데 있어서 형식을 엄격하게 지킬 필요는 없지만 한번 형식을 만들어 본다면


서론 : 읽게 된 동기, 저자/책 소개, 첫인상

본론 : 개수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적어도 3가지 부분의 소주제 감상, 느낌

결론 : 책의 전반적 느낀 점/ 책을 추천/비추천하는 이유 이렇게 마무리가 될 것이다.


내가 있던 군부대에서는 독후감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다. 어디까지나 형식에 자유롭게 쓰고 싶은 글만을 쓸 수는 없다. 한편 나의 글을 형식과 주제에 맞추어서 글을 다듬는 연습 역시 필요하다. 독후감과는 별개로 포상이나 특정 목적이 있다면 지침에 따른 책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단 써보자

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을 하고 있다. 업무로는 어떤 프로덕트를 계속 꾸준하게 유지보수하기보다 프로젝트 단위로 수명주기가 짧은 제품을 만드는 비중이 높다. 물론 수명이 짧다는 게 허접하고 작은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일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요청이나 프로젝트가 들어왔을 때 나는 그 대상을 공들여서 만들기보다 최대한 빠르게 동작가능한 수준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넘긴 다음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한다. 대게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요구사항과 지시사항은 문서로 정리되지만 결국 미묘한 차이나 개인의 취향까지 만족할 수 없기에 실물이 나오고 직접 사용해 보기 전에는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분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 일정 수준의 완성된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보다 약간 부족하고 허접하더라도 빠르게 필요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짧은 시간 내로 개선되는 것이 만족도가 높았다. 나 역시도 오랜 시간 공들여서 작업하는데 정작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면 서로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될 수 있기에 중간중간 방향을 같이 점검하는 편이 좋았다. 이를 소프트웨어 개발론에서 유식하게 이야기하면 애자일(Agile)하게 개발한다고 표현한다. 글쓰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오랜 시간 기획하고 어떻게 쓸까 뜸 들이기보다는 일단 뭐라도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긴 글을 쓸 때 대부분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쓰지 않는다. 여러 키워드나 문단으로 나누어 놓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부터 흩뿌리는 작업을 하였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쓸지 명확할 때는 길게 고민하고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써 내렸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무작정 땅 위에 씨앗을 뿌리면 뭐라도 자라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석 위에 철가루를 뿌리면 어떤 형태라도 나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흰색 커다란 종이 위에 페인트를 흩뿌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결국 뭐라도 나오겠지 생각하며 시작하였고 그렇게 그림이 만들어지면 흩뿌려진 조각을 다듬고 모으고 지우기를 반복하였다. 헤밍웨이의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를 생각하며 어차피 처음부터 쓰레기니 잘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처리고 편안하게 써내려 갔던 것 같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소모임의 이름도 계속해서 쓰고 다듬는다는 의미의 쓰담쓰담이다. 거창하게 한 번에 깔끔하게 잘 쓸 이유도 없고 그러지도 못하니 블로그든 브런치든 어떤 SNS에 한번 써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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