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풍요로운 독서를 위한 비평

인상, 형식, 문맥

by Daniel J

글쓰기에 이어 약간 기술적인 것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비단 글쓰기뿐 아니라 책을 가지고 토론이나 비평을 하기에도 좋으며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같은 다른 문학작품에서 까지 폭넓게 적용해 볼 수 있다.


내가 처음 글쓰기 소모임을 만들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지점은 단순하게 글을 쓰고 나누는 것에서 끝낼 것인가 아니면 모임원들이 서로의 글을 읽어보고 비평이나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질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책을 출간해 보거나 글쓰기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닌데 단순히 좋았어요 수준의 의미가 없는 의견 처럼 하느니만 못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아니면 그 과정에서 기분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저작물은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는 것은 잘 알지만 내가 공들여 만든 글이 일종의 공격을 받았다고 느껴지면 어떤 올바른 지적이었던가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감정이 나쁘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 대학생 독서모임을 하며 만났던 분과 이야기를 하며 비평에 대해서 몇 가지 유용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해당 적절한 비평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정 상하는 일도 없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마침 이전 수능 모의평가 국어 지문에 해당 비평 방식에 대해서 다룬 것이 있어 가져와 보았다.


2020년 9월 시행 /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20번~25번 문제 지문 中


(나) 예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고 비평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예술 작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작품을 비평하는 목적과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예술 작품에 대한 주요 비평 방법으로는 맥락주의 비평, 형식주의 비평, 인상주의 비평이 있다.


㉠ 맥락주의 비평은 주로 예술 작품이 창작된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갖는다. 비평가 텐은 예술 작품이 창작된 당시 예술가가 살던 시대의 환경, 정치․경제․문화적 상황, 작품이 사회에 미치는 효과 등을 예술 작품 비평의 중요한 ⓓ 근거로 삼는다. 그 이유는 예술 작품이 예술가가 속해 있는 문화의 상징과 믿음을 구체화하며, 예술가가 속한 사회의 특성들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맥락주의 비평에서는 작품이 창작된 시대적 상황 외에 작가의 심리적 상태와 이념을 포함하여 가급적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러나 객관적 자료를 중심으로 작품을 비평하려는 맥락주의는 자칫 작품 외적인 요소에 치중하여 작품의 핵심적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맥락주의 비평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형식주의 비평과 인상주의 비평이 있다.


형식주의 비평은 예술 작품의 외적 요인 대신 작품의 형식적 요소와 그 요소들 간 구조적 유기성의 분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프리드와 같은 형식주의 비평가들은 작품 속에 표현된 사물, 인간, 풍경 같은 내용보다는 선, 색, 형태 등의 조형 요소와 비례, 율동, 강조 등과 같은 조형 원리를 예술 작품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인상주의 비평은 모든 분석적 비평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 예술을 어떤 규칙이나 객관적 자료로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훌륭한 비평가는 대작들과 자기 자신의 영혼의 모험들을 관련시킨다.”라는 비평가 프랑스의 말처럼, 인상주의 비평은 비평가가 다른 저명한 비평가의 관점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대하여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비평하는 것이다. 즉, 인상주의 비평가는 작가의 의도나 그 밖의 외적인 요인들을 고려할 필요 없이 비평가의 자유 의지로 무한대의 상상력을 가지고 작품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비평에 대한 주요 방식으로 맥락주의, 형식주의, 인상주의 3가지를 꼽으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설명에 앞서 이해를 위해서 지문을 가져왔으나 우리가 시험 문제를 풀러 온 것은 아니기에 바로 맥락주의부터 살펴보자

Cap 2025-10-23 19-02-36-346.png 맥락주의에서 관심 있게 보고 싶어 하는 부분은 작품을 쓴 작가이다

문맥주의는 작품이 창작된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환경을 중시하며, 작품을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접근이다. 작품과 작가 주변의 시대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한다. 쉽게 말해서 작품은 일종의 작가의 상황이나 심리, 욕망을 투영한 결과물일 것이며 필연적으로 작가의 심리상태나 겪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가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갑충으로 변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 변신

프란츠 카프카를 예시로 살펴보자 그의 대표작 [변신]을 보면 주인공의 정체성이나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탐구하게 되는데 작품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작가를 조명해서 본다면 카프카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하의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계 유대인으로 살아갔다. 시기적으로 아직 나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유럽은 민족-인종주의, 반유대주의가 고조되며 당시 어떤 사회적 문제와 이방인의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한번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 소송, 성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로서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인간실격

[인간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 [인간실격]의 주인공이 작가의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임이 강하게 반영된 것을 고려해 본다면 책 밖에서 더 많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다자이는 1909년생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겪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절일 때 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갔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존의 가치관은 와해되며 개인은 절망하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그가 쓴 문학 작품은 세상의 모순에서 비롯된 좌절, 시대적 트라우마가 녹아 있다고 평가한다.


Cap 2025-10-23 19-26-35-905.png

형식주의는 말 그대로 작품 그 자체로 살펴보자는 것이다. 작품 자체의 어떤 형식적 요소 예를 들면 어떤 언어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구조를 설화를 이미지를 상징을 그리고 이들 간 유기적인 관계를 살펴본다. 앞에서 인상주의에서는 작품을 이해하고 살펴보기 위해서 작가가 살던 배경까지 끌어와서 보았으나 형식주의는 이를 철저하게 분리한다. 작품을 작가로부터도 완전한 독립적으로 여기며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Cap 2025-10-23 19-32-41-681.png

인상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나'다. 인상주의는 비평가 개인의 느낌과 창의성에 중심을 두는 방식으로 작가의 의도나 작품 자체의 객관적인 형태보다는 비평가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상과 인상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작가가 어떤 의도나 작품에 수려한 기법을 사용한들 비평가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기서 그만인 것이다.


이 3가지 비평 방식이 어떤 우월하거나 열등한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거나 조합을 하면 된다. 나의 경우에는 형식에 대해서는 크게 따지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기에 투박하고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계속해서 쓰고 다듬으면서 매끄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떻게 느꼈고 왜 이런 것을 썼는지 의견을 교환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먼저 인상주의처럼 개인의 생각과 느낀 점에 대해서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글 쓴 사람의 의도와 생각을 듣게 된다면 나의 감성이 거기에 끌려가거나 왜곡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였고 잘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는지 비교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감상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불일치가 나오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가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비평하는 쪽 역시 숨어 있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한다면 좀 더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과정은 분명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보았다.


어떤 모임을 염두에 두고 비평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지만 이는 당연히 혼자 해도 되는 활동이다. 내가 작품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나의 감상을 분석하고(인상주의) 작품의 구조에 대해서 탐구하고(형식주의) 작가의 생애나 어떤 삶, 가치관을 지니었는지 찾아본다면(문맥주의) 좀 더 풍요로운 독서와 글쓰기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18화나를 위한 시간 글쓰기